[에스더 최의 행복한 쉼터]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꽃이 예쁘다고 느끼는 것은 마음이 이미 꽃밭이라는 얘기처럼, 보고싶은 이가 있다는 것은 온통 그의 그리움으로 물이 든 마음이라는 것 일게 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한국행 아시아나항공에 몸을 실었다. 만남에 대한 간절함은 무서운 코로나의 공포를 뛰어 넘어 까다로운 입국절차도 넉넉한 인내심으로 통과하게 했다. 안전에 몰두해서 마스크를 두개나 겹쳐 사용한 비행시간 내내 고른 숨을 쉴 수 없었지만, 도착한 인천공항 그 특유의 시린 겨울공기는 고단한 긴장감을 깨끗이 날아가게 했다. 아~ 얼마나 그리웠던 나의 조국이던가.

오랜 고심 끝에 교통이 편리한 장소로 머물 곳을 정했다. 평상시 같으면 형제 집에 기거하면서 계획해 놓은 일정을 진행했겠지만 서로 간의 안전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이 방법을 실행해보니 나름대로 여유가 있어 마음이 편했다. 가장 신이 난 것은 매끼마다 앱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배달해 주고 있는 친척과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드디어 나를 한국에 초대해준 특별한 날을 맞이했다. 이순의 나이로 입문하는 축하카드와 함께 꽃바구니와 선물 상자가 속속 도착했다. 한번에 모두를 만날 수 없는 시국이라 몇몇이 짝을 나눠 호사스러운 이벤트를 베풀어 주는 그들의 지혜와 배려에 감격이 넘쳐서 눈물까지 난다.

'금쪽 같은 내 새끼들~ 정말 잘 컸네...' 지난 일들이 어제 찍은 영화처럼 눈 앞에 선명하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성우가 엄청 좋아하는 빗 방울이 하나 둘 뿌리기 시작한다. 어느새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성우는 참다못해 차가운 빗속으로 달려나간다. 음악을 전공하는 성우는 특별히 빗소리를 들으며 창조적인 악보를 그려낸다. 나는 이미 그에게 먹일 감기약을 손에 들고 있다. 며칠 동안 먹일 가족들 음식으로 불고기와 갖가지 밑반찬을 준비해 놓았는데 냉장고가 깔끔히 비워져 있다. 또 철이 짓이다. 혼자서 자취하는 친구가 안쓰럽다며 대식구의 양식을 통째로 들고 튀었다. 양심도 없는 놈...나는 볼멘 소리를 하며 저녁 메뉴로 부대찌개를 준비한다.

오늘도 기복이 눈이 시뻘겋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걸음걸이도 술취한 듯 비틀거린다. 밥맛이 없는지 국그릇만 휘젓고 있다. 어제도 날밤 새운 게 분명하다. "이그 정신 차려라" 등짝을 한대 후려친다. 그래도 감각이 없다. 나는 다시 머리통을 세게 쥐어박는다.그래도 멍때린다. 야동에 영혼이 뺏긴 녀석을 위해 컴퓨터 차단막을 설치해 달라며 나는 전문가에게 부탁 전화를 돌리고 있다. 우리집의 유일한 모범생 혁재가 방학기간 동안 동부로 여행을 간다며 일주일 동안의 밥값을 빼달라고 한다. 그는 공부만 잘할뿐이지 사랑의 방정식엔 무식한 낙제생인 것 같다. 이제부터 혁재가 가장 좋아하는 해물탕 식단은 완전 빼버릴 테다. 여행하는 그를 위해 두둑한 용돈을 준비 둔 걸 사회성이 없는 녀석이 알 턱이 없다.

세월이 꽤 흘렀다. 그들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군복무 후 결혼을 해서 하나 둘 아이들까지 낳아 행복하게 산다는 소식에 마음이 훈훈하다. 더구나 먼 타국 땅에서도 캘리포니아 주 우리집에서 만나 쌓은 서로 간의 돈독한 우정과 나를 향한 효심에 감격이 더해진다. 평소 존경하는 나태주 시인의 글이 떠오른다.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시간에 도돌이표가 주어진다면 나는 다시 밥집 엄마가 되고 싶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잘 익은 김치 한가닥을 따끈한 밥 위에 올려주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굴비살을 발라 입안에 넣어주면 엄지척을 들어 올렸던 그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이 한마디는 살짝 귀뜸하고 싶다.
'사랑 참 힘들더라'

에스더 최(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