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나의 몫

언제나 나쁜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는 나의 몫이라 먼저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하고 풀어나가면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힘들어하지 않을 것 같아 미리 주문을 걸어 놓는 것이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과 주위의 환경과 품고 있는 생각이 다르듯, 같은 문제를 앞에 놓고 그것에 적응하며 지나가는 길이도 순서도 모두 제각각이다. 품고 있는 문제들과 힘든 마음을 마치 없었던 거처럼 숨겨 놓지만, 결국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같은 문제 앞에 서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마치 꼭 읽어야 하는 두껍고 어려운 책을 끝낸 후 마지막 책장을 덮는 후련함처럼, 삶의 숙제를 끝내고 덮어야 하는 것이다. 어릴 적 노는 것에 팔려 방학 일기 숙제를 제날짜에 맞춰 쓰지 않고 있다, 방학이 끝나가는 마지막 주일이면 한꺼번에 몰아 쓰곤 하였다. 오늘의 날씨는 흐림과 맑음과 비를 마음대로 만들었고 그날에 했던 일들도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마치 소설을 쓰듯 하루하루 지어낸 이야기를 만들어 일기장 한 권을 끝낸 후의 후련하고 우스꽝스러운 당당함을 기억한다.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미루고 억지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 밀쳐 두었기에, 애꿎은 마음만 한동안 불편하게 보냈던 것이다. 살면서 스스로 풀 수 없는 일이 생기거나 사람과의 관계에 휘둘리거나 진심이 통하지 않는 막막함에 휩싸이면 또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하는 몫이고 끝내야 하는 숙제라고. 늘 평안하기를 그리고 넓은 마음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또 다른 언덕을 넘어간다. 그렇게 소소하니 다독이며 지나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이제 다시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고 1부터 되돌아간다. 12 숫자가 마지막이지만 언제나 맨 앞에는 1이 함께 앞서며 걸어간다. 처음 시작하면서 먹었든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작년 한 해 다가온 좋지 않은 것들을 바람에 펼쳐놓은 이불의 먼지를 세차게 두드려 날려 보내듯 툴툴 털어 버리련다. 그리고 살면서 부딪히는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순순한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처음 먹은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