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결실

늘 이맘때면 올 한해는 무슨 결실을 보고 어떤 열매를 거두었는지 되돌아보며, 다시 새로운 결심과 단단한 목표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후회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칭찬하며 다독거려주고 용기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 커다랗게 벽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이만큼이라도 "잘했다, 괜찮다." 하며 살아도 크게 나무라는 이 없었을 터인데 왜 그리도 인색하게 굴었는지, 미안하다. 많은 것이 변하고 낯선 달라진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큰 탈 없이 늘상 하고있는 그대로 - 힘든 상황과 혼란의 새로운 급격한 변화에도 잘 지키며 살고 있다. 식구들을 위해 시장에 가고 음식을 만들고 집 청소하며 마당에 물주고 또 대추 따서 말리고 점점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감을 거두어, 좋아하는 이들과 나눌 생각으로 나름 행복하다.

올해는 정말 많은 종류의 요리를 열심히 만들었고 배웠다. 곁의 모두가 그대로 있기를 소원하는 절실함이 배여 있었고, 만드는 과정 안에서 더욱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새로이 찾았고, 감사했다. 훌륭하지는 않지만, 사랑이 더해진 음식의 종류와 숫자만큼 서로에게 가까워 졌으며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더이상의 외로움을 버리고, 서로에게 기대며 눈 맞추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며 글썽인다. 사는 것에 휘둘러 모르고 지나왔든 시간도 있지만, 지나가 버린 것은 그대로 흘려 보내고, 지금 바로 앞의 모든 것을 즐기며 사랑하려 한다. 잊고 있었든 오래된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지내온 세월을 소중히 간직하는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지독히 나쁜 상황이 꼭 그렇게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다시금 배웠다.

무엇을 하였고 또 어떻게 살았냐고 굳이 되묻지 않아도, 크게 잘한거 없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어도, 꿋꿋이 살아있다는 큰 결실을 보았다. 이렇게 한해의 마지막 가까이에 무사히 와있고, 지금은 더욱 더 가까운 이들과 속마음을 전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11월이 되기를 준비하면서, 올해의 결실은 더없이 단단하다고 말하련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