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가 들려주는 미국 여행 L.A에서 샌프란시스코 중(5편)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You're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잊지 말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꺼에요

팬마음이 포근한 사람을 만나러 “ 샌프란시스코”로 Go, Go!

San Francisco는 2020년 기준 인구89만6천명으로 캘리포니아 도시 중 L.A(405만5천) 샌디에고(154만) 산호세(103만)에 이어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면적은 서울의 약1/5 정도로 주변도시로는 오클랜드, 산 라파이엘, 콩코드등 위성도시 전원도시가 샌프란시코를 둘러싸고 있다.

미국의 다른 시는 여러 개가 모여 카운티(County)를 이루지만 특이하게 샌프란시스코는 시 하나가 독립된 카운티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명칭도 The city and County of San Francisco.로 부른다. 약칭은 SF. 줄여서 샌프란 지명은 가톨릭의 성인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한자명으로는 “상항” 일본 말 가타 가나로 'サンフラン シスコ(산후란시스코)'라고 표기한다. 또 “금산”이라고도 불리는데 1949년 골든 러쉬 때 중국인들은 금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해서 불린다. 호주 멜버른도 금광 개발이 시작되면서 마찬가지 금산이라 했고 그래서 중국인과 일본인은 두 금산을 샌프란은 “구 금산” 멜버른은 “신 금산”으로 칭한다.

미국이지만 미국 속에 이국적인 분위기와 다른 도시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곳이다. 낭만의 도시로 표현되는 샌프란은 현대 자유주의의 본 고장으로 가파른 언덕위에 빅토리아 풍의 주택, 짙 푸른 바다의 경치가 환상이기에 일년 내내 도시는 관광객이 북적인다. 미국속에 유럽의 지중해 같은 분위기랄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몰려 살아 뉴욕 다음으로 미국에서 2번째의 인구밀도의 다 민족이 어울려 사는 도시다. 유명한 세계 여행 잡지(Conde Nast Traveler)에서 20년 동안 미국 도시중 가장 가고 싶은 도시1위가 바로“샌프란시스코” 아닌가.

역사를 보면 1579년 스페인 정복자인 프랜시스 드레이크 함대가 해안 지도를 만들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가 그 후 본격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이주하여 정착했고 1776년 이후 이들 만에 요새와 미션을 만들었다, 스페인 식민지후에 멕시코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한 후 멕시코의 도시가 되였다가 멕- 미 전쟁으로 미국의 승리로 1850년 결국 미국의 도시가 되였다. 1948년 이전에는 인구가 불과1000명이던 작은 도시가 골든 러쉬(1949)로 1년 사이에 2만5천명으로 무려25배나 인구가 늘어났다. Gift Shop에 가면 49라는 숫자가 쓴 기념품이 많다. 그 것은 그 당시 서부로 서부로 금을 찾으러 온 “샌프란시스코 49ers”를 상징하는 명칭의 숫자이다. 샌프란은 수심이 깊고 주변에 바위가 적어 천혜의 항구 발전 되였고 이 금문항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인과 노예 해방 후 정착한 흑인들, 골든 러쉬 때 중국인과 일본인등이 이주하여 전 세계 다양한 A racial melting pot(인종의 도가니) 도시로 발전 되였다. 두 번에 걸쳐 큰 지진으로 도시가 많이 파손 되였지만 현재의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재정과 금융의 도시, 관광의 도시로 더욱 발전한 곳이다. 샌프란, 갈 곳이 너무 많지만 꼭 가보고 싶은 곳만 골라 골라서 소개하고자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자랑 아니, 미국의 자랑 “Golden Gate Bridge” 금문교를 걸어보지 않았다면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말하지 말라.

미국 하면 딱 떠오른 것이 뉴욕의 자유여신상과 금문교 아닐까 본다.

필자는 샌프란시코를 왔다면 무조건 금문교를 걸어보라고 추천한다. 물론 여름에도 추우니까 완전 무장해야 되겠지요. 금문교 위에 싸늘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안개 속에 금문교는 평생 추억에 남으리라 본다. 아마도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섬과 멀리 오클랜드 전경, SF 타운의 경치를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금문교를 걷는 약40분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리라 본다. 차가운 바람속에 본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할 것이고 지난 과거의 희로애락과 현재, 미래를 설계하는 기회도 될 것이라 장담한다.

왜 다리이름을 금문교(金門橋)라 지었을까?

골든 게이트(Golden Gate)는, 골드러시 시대 샌프란시스코 만(灣)을 부르던 별칭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렇지만 1937년 건설비용이 무려 3천5백만불로 어마어마 한 돈으로 만들어졌기에 금으로 도배했다는 과장으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라고도 불린다. 다리의 길이가 2,737M 폭은 27M 6차선의 다리 두 교각의 높이가 227M 교각 간의 거리가 1.28Km 다리의 총 무게는 88만7천톤으로 그 당시 서스펜션(현수교)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다.

Suspension Bridge(현수교)란 케이블을 위쪽에서 아래로 늘어뜨려 하중을 적절히 분산하여 도로 상판을 지탱하는 공법으로 이 다리를 설계한 조셉 슈트라우스의 획기적인 공법으로 시공된 다리다. 그 이유는 태평양의 거센 바람, 지진, 조수 간만의 차로 여러 교각을 설치하는 것이 어렵기에 이 공법을 이용했고 지진 8도에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두 교각 중 북쪽은 물 속에 약 6M단단한 바위에 만들어 졌다. 남쪽 교각은 바다속으로 약 30.5M 파서 댐을 만들어서 수 백만톤의 콘크리트 넣어 세워지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만든다고 해도 대단 할 텐데. 한국도 멋있는 다리가 많다. 인천대교, 거가대교, 광안대교등 한국의 토목 기술은 세계 최고가 아닌가!

193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1937년 5월 28일 완공했지만 약 4년의 공사하는 동안 11명이나 희생되어 만든 결실이기도 하다. 다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셉 스트라우스는 평생 다리만 설계하다가 사망 1년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다리색은 빨간색처럼 보이지만 짙은 오렌지색 (International Orange)으로 먼 태평양에서도 안개 속의 금문교의 식별을 위해 특이한 색으로 칠해졌다.

이 다리 공사를 시작할 때는 미국의 대 공항이었고 다리 건설 자금을 위해 채권을 발행했지만 그 당시 부정적인 시각으로 선뜻 다리 건설 채권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설계자 조셉 스트라우스는 초기 채권을 팔기 위해 직접 Bank of America의 책임자 Giannini와 만나게 된다. 둘의 미팅 대화 내용을 들어보자.

“If Bank of America does not buy these bonds, this bridge will not be built,” Strauss said.
“How long will this bridge last?” Giannini asked.
Strauss replied, “Forever.”
Giannini said, “California needs that bridge. We'll buy the bonds.”
약간 의역하면
“Bank of America가 이 채권을 사지 않으면 이 다리는 건설이 시작도 안될 것입니다. 라고 Strauss는 말 했고
"이 다리는 만들어 지면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Giannini의 물음에 Strauss는“영원할 겁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Giannini는“캘리포니아 발전을 위해 이 다리가 꼭 필요하기에. 우리는 주저없이 채권을 살 것이다

이 역사적인 만남으로 Bank of America가 600백만 달러의 초기 채권을 매입함으로 금문교 건설이 비로서 시작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짧은 몇 마디가 없었으면 금문교라는 현수교 다리는 수면속의 다리가 되지 않았을까! 이 장면을 재연한 사진 동판은 금문교 사우스 포인트 다리 건너기전에 있으니까 금문교 사진도 좋지만 이건 무조건 사진 하나 찍고 가도록.

B.O.A의 은행장처럼 용기 있는 투자만이 시대적 발전이 지속되리라 본다. 질문도, 답변도. 멋있다. 뭐든지 “Forever”

매력적인 예술인 촌 “소살리토(Sausalito)”

Sausalito는 스페인어 Sauzalito에서 유래된 말로 작은 버드나무 숲이란 뜻이다. 금문교 북쪽에 자리잡은 곳으로 제 2차 세계 대전 때 선박을 건조하던 조선소 자리였다. 지금은 예술인 들이 많이 몰려 살게되어 서부의 리비에라로 불리는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다. 소살리토는 인구가 7,500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로서 고급 주택은 해안선 갯벌 위와 가파른 숲이 우거진 언덕에 누가 더 산꼭대기에 사나 경쟁하는 듯하다. 알다시피 미국은 산 꼭대기 전망 좋은 집이 더 비싸죠. 한국은 산동네로 집값이 떨어지지만 타운에는 바다 산책길과 어울러진 조망에 레스토랑, 미술관 및 일년 내내 축제가 열리기에 더욱 매력이다. 예술로 가득 찬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번잡 함에서 벗어나 방문객들에게 약간 차가운 날씨에서 금문교 다리를 건너 태양을 흠뻑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선착장에는 수많은 다양한 요트가 많이 정박해 있어 비록 요트는 못 타더라도 기념 사진이래도 하나 찍고 가자구요. 약1.6마일의 거리에는 화랑, 선물가게, 레스토랑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해 샌프란의 기념품을 구입하기엔 적소이다. 기회가 된다면 건너편 샌프란 피어 43에서 노을지는 시간에 페리를 타고 오면 소샬리토의 아름다운 야경이 더욱 끝내 준다.

Pier 43가면 Peets 커피와 Clam Chowder는 꼭 먹자구요!

“Fisherman's Wharf” 샌프란시스코에는 모두 45개의 부두가 있는데 그중 39번,41번 43번 부두는 항상 대형 관광버스 때문에 주차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조금 한산하지만… 그 중 43번1/2에 위치한 Fisherman Wharf(어부들의 선착장)는 볼거리, 쇼핑거리,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처음에는 중국인들이 바다 낚시하던 곳에 이탈리아 어부들이 해변을 따라 가판대를 세워놓고 게, 새우, 굴 및 해산물을 팔던 우리 부산 자갈치 시장 같은곳이었다. 그 후 작은 낚시 배와 관광 유람선 등이 자리 잡으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43번 피어 앞 2층집에 큰 빵 그림이 보인다.

바로 샌프란의 먹거리 Clam Chowder 와 Peet커피를 먹을 수 있는 Boldin Bakery다.

이 Boldin 빵집은 1849년 프랑스 부르고뉴 출신의 마스터 제빵사 가족의 아들 인 Isidore Boudin 에 처음 선 보였고 Gold Rush의 광부 들 사이 에서 널리 퍼진 사워 도우 를 프랑스 빵과 혼합 하여 만든 빵이다. 빵 안에 넣어주는 따스한 크램 차우더는 샌프란시스코 날씨에 딱 어울리는 먹거리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조금 짜다고 하는데 빵을 잘라 찍어 먹으면 OK. 또 커피를 조금 아는 분은 스타벅스의 대중 적인 커피보다 이 빵집에서 판매하는 Peet는 커피를 더 선호한다. 미국 커피 미식가의 대부로 알려진 Peets커피는 사실 스타벅스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스타벅스가 시작할 때 Peets 커피를 원두를 공급받아 판매했기에 오늘날 스타벅스의 룰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엔 인기가 좋은 지 마켓 커피 판매 코너에 가면 맨 앞에 진열해 놓았다.

지그재그의 언덕길 “롬바트”와 샌프란의 명물 “케이블 카”

경사 27도의 8개의 지그재그의 길을 산 꼭대기에 만든 롬바트 거리는 샌프란의 또 하나의 명소이다. 약 400M 언덕에 1922년 이 지역의 땅 주인 칼 헨리가 안전을 위해 길을 언덕에 꼬불꼬불한 길을 만들었다가 개인 땅을 시에 기증하게 되었고 시에서는 아름답게 화단까지 조성하여 또 하나의 볼 거리를 만들었다. 매년 봄에 피는 큰 수국화는 더 롬바트 길을 흥미 롭게 만든다. 샌프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꼭 이 꽃 길이 등장한다. 롬바트 길위에는 천천히 달리는 또 하나의 명물이 보인다. 바로 ”Cable Car”

언덕위를 많은 사람들이 전차에 매달리며 재미있고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 찍는 모습. 남산 Cable Car처럼 공중을 나르는 것이 아니고 케이블로 움직이는 일종의 철도 차량이다. 도로 바닥 밑에 철도레일이 깔려 있어 케이블의 동력을 받아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안전 하고 쉽게 운행하는 Railroad이라 보면 된다. 처음에는 말 이끄는 전차로 높은 언덕을 오가가다가 젖은 자갈 위에 끄는 전차가 뒤로 미끄러져 말이 죽는 것을 보고 Andrew Smith Halidledl이라는젊은 발명가가 Cable 시스템으로 만들게 되였다. 1873년 처음 시작하여 현재 샌프란에는 3개 노선에 25Km 구간을 운행 하고 있다. 세 노선 중 Hide & Beach 노선으로 타 야지 최고의 경치 감상. 샌프란의 매력을 느끼려면 꼭 한번 타보고(편도 $7) 이국적인 타운의 모습을 심취하면 좋겠다.

다운 타운에서 Hide & Beach 노선을 타고 조금 가자면 오른쪽에 광장과 탑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Union Square. 한국의 명동 같은 분위기로 일년내내 많은 관광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링컨 대통령이 당선된 후 남부의11주는 연방 정부에서 탈퇴하자 연방 주의자인 Union들이 반대 시위를 벌인 장소이다. 남북 전쟁 당시 북부 연합군을 지지 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던 이름으로 유니온 스퀘어로 불린다. SF다운 타운 중앙에 있기에 주위에는 명품 백화점, 브랜드 매장들로 쇼핑의 천국이다. 매년 8월에는 이 장소에서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려 한국의 전통 문화와 음식 시식등 K Pop행사도 열린다.

바로 옆 북쪽으로 가면 붉은 색 한자 간판과 금색의 용이 보이는 기와집 Chinatown입구가 눈에 띈다.

“차이나 타운” 옛날 노래가 생각나는 미국속에 중국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 거리
란탄 등불 밤은 깊어 바람에 깜박깜박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차이나 타운 입구 간판에 “천하위공(天下爲公)” 이란 말이 보인다

천하위공을 풀이하면 세상은 모든 이의 것이다. 그래 맞아.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인이지 뭐. 이 문을 통과하면 미국속의 중국이 있다. 현재 코로나 때문에 미국과 소홀한 관계가 되고 있지만 미국을 발전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한 중국인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차이나 타운. 최근 중국 본토는 너무 급변하게 발전 하다보니 많은 무리수를 쓰기에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많은가 싶다. 샌프란의 차이나 타운은 1840년부터 형성되어 중국계 커뮤니티가 발전되다가 1960년 홍콩과 대만에서 들어오면서 차이나 타운이 발전된다. 온통 빨간색의 등과 간판이 있는 건물 위에는 오성기와 대만 국기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여기는 광동어와 만다린 언어가 공히 통용되고 있고 대만계와 홍콩계 본토 중국계가 서로 호의적인 관계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제일 큰 규모의 차이나 타운은 거주자는 약4만정도로 하루 유동인구까지 약 7만명이 바쁘게 다니며 마치 예전 한국의 전통 시장에 온 느낌이다. 미국 속에 중국적인 것을 고수하며 전통적인 문화을 알리는 문화센터, 역사 박물관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특히 중국 잡화점, 레스토랑, 식료품과 과일가게등은 마치 한국에 시골 시장 느낌이라 재미있다.

차이나 타운 하면 역시 생각나는 Dim Sum. 만두와 중식을 판매하는 식당도 나름대로 남방식 북방식으로 나누어 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가 좋아하는 자장면과 짬뽕을 파는 집은 못 본 것 같다.

소방 호수 분사기 모양의 Coit Tower와 악명 높은 “알카트라즈”

산 정상엔 하얀 전망대 같은 Tower가 보인다 이 타워는 Telegraph Hill에 Coit Memorial Tower로 210 피트(64M)인 Coit Tower는 Hitchcock Coit 는 1933년 도시 미화를 위해 유산의 3분의1(12만 5천불)을 도시에 기부 하여 만들어졌다. 타워의 조형물은 마치 소방호수 분사기처럼 설계 되였는데 그 이유는 히치콕이 자원 봉사한 소방서와의 인연으로 샌프란시시코 지진 때 활약한 소방관을 고마움으로 세워지게 되였다.

타워 안에는 벽화와 미술 작품이 있어 언덕위에 있어 올라가기 약간 힘들어도 한번쯤 올라가 보도록 추천한다. 코익 타워에서 내려다 보면 바다 가운데 그 유명한 형무소 알카트라즈 섬이 보인다. 그 악명 높은 형무소가 있는 알카트라즈도 꼭 가봐야 지. 알카트라즈에 가려면 Pier41으로 내려와 유람선을 타고 가야 한다. Fisherman's Wharf 41pier로 와서 유람선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 가면 악명 높은 Alcatraz라는 형무소로 떠나자. 스페인어로 펠리컨이라는 이형무소는 1924년 육군 형무소로 개장되다가 1934년부터 1963년까지 약 29년동안 주 연방 형무소로 사용하였다.

“알 카포네” “로버트 스트라우”등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복역 한 곳으로 현재는 유람선을 이용해 들어가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 감옥소의 구조를 관광할 수 있다. 3층 건물 4개 주요 감방 블록으로 되여 있고, A- 블록에서 D- 블록, 소장실, 방문실, 도서관 , 이발소가 있었고. 감옥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9 피트 (2.7m) x 5 피트(1.5m) 및 7 피트 (2.1m)의 독방의 구조다. 감방 시설은 그리 깨끗치 않았고 OPEN되여 있는 침대, 책상, 세면대, 뒷벽에 화장실이 있고 담요를 제외한 가구가 거의 없어 보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인종 학대 로 인해 다른 수감자들과 격리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D-Block은 악질의 수감자들을 수용했고, 그 끝에 6 개의 감방이 "The Hole"로 지정되어 더욱 험악한 방이다. 식당 및 주방본관에서 식사를 하였고 자체 병원 자리도 보인다. 1963년폐쇄 될 때 약 1545명의 죄수들이 복역을 했다고 한다. Sean Connery 주연영화 “the Rock”과 Lee Marvin주연의 영화 “Killer”그리고 “Alcatraz에서 탈주”등 영화의 소재지가 바로 여기다.

1963년 폐쇄되기 전까지 몇 명의 탈옥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단 한 명도 탈옥자가 없었던 곳이다. 아마도 형무소 주변에 많은 상어들과 빠른 조류와 차가운 수온으로 탈출이 불가능 하기에 죄수들에게는 공포의 형무소라 알려졌다.

“종문 리”의 자랑스러운 아시안 아트 뮤지움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분의 이름의 이 종문 미술관을 꼭 소개하고 싶다. 시청 뒤에 3층 규모의 미술관은 미국 내 최대 아시안 아트 뮤지움으로 이 종문회장이 1천5백만불을 기부하여 세워진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들어가는 입구에 이 종문회장의 흉상이 세워져 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일본, 중국뿐아니라 한국의 유물도 1만3천여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이 종문회장은 우리 교민 사이에 가장 존경받는 교포 1세중 한 분이 아닌가 싶다. 이 분은 종근당 제약의 이종근 회장의 동생으로 1970년 도미하여 1982년 컴퓨터 그래픽회사를 설립 55세에 암벡스 벤처 그룹 회장으로 성공하였고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하여 전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주는 멋진 경영인이다.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는 이런 분이 우리 교민중에도 많았으면 좋겠다. 큰돈을 벌어 멋진 건물, 좋은 골프장 매입도 좋지만 한국을 알리고 여유 있을 때 주위에 힘든 분한테도 배 프는 마음 속에 인생의 보람을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샌프란을 돌아보며 숨어있는 감성을 깨우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곳. 한번 방문해도 평생 잊지 못하는 곳. 샌프란시스코을 끝으로 5편에 걸쳐 LA에서 샌프란시스코를 둘러보았다.

다음 편 부터는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관광지와 전 세계에 여행하기 좋은 곳만 골라 떠나 보기로 한다.

약 상자 속에 없는 치료제가 여행이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이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천연 코로나 백신은 바로 자연 속에 있다.

(삼호관광 전무이사 스티브 조)

글 쓴이 : 스티브 조(steve cho)
독일 Marburg 대학 수학
경제학 석사
현 삼호 관광 전무이사 재직(1998년 입사)
chobaksa2001@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