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최의 행복한 쉼터 - 유쾌한 5인방

계획에 없던 종합검진을 받았다. 달포 전 왼쪽 새끼발가락을 부딪친 이후 통증이 잦아들지 않아 병원을 찾은 것이 계기였다. 1년 반만에 마주한 주치의는 친절하게도 이참에 총체적 건강검진을 받을 것을 권유했고 나는 이에 따랐다. 검진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양호했다. 오장육부는 물론 신체의 어떤 작은 질병조차 없으나 단 한가지 비타민 D가 조금 부족할 뿐이라고 한다.

아니, 햇볕 좋은 이곳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비타민 D가 모자라다니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래서 그까짓거쯤이야 라고 무시하면서 사람들과의 대화중에는 은근슬쩍 나의 건재함을 꺼내어 자랑을 일삼았다. 몸을 위해 특별히 건강식을 챙겨 먹은 것도 아니며 운동이라고는 고작 숨쉬기운동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신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자랑할 만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몰랐던 자부심 높은 콧대는 몇 날이 못되어 납짝코가 되고 말았다. 내 나이때에 접종받아야 하는 Shingles(대상포진) 주사를 맞고는 말 그대로 뻗어버렸다. 두 주가 다 되도록 바늘로 찌르는듯한 괴로움은 도대체 가실 줄을 모른다. 몸의 통증만큼 더 아프것은 마음이다. 새로운 인생의 2막을 계획해 놓고 한국행 항공기 티켓을 사놓았건만 보류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 한국을 그리워 하던 중 TV프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를 애청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나는 학창시절의 청바지와 통기타로 우정을 다지던 그때의 친구들을 어렵사리 찾게 되었고 이후 우린 속내를 털어놓는 깊은 소통으로 그리움을 쌓아갔다. 우리 다섯명의 주무대는 춘천의 강변로였고 모였다하면 새벽 이슬에 옷이 촉촉히 젖을 때까지 밤하늘의 별들을 세면서 기타 반주에 가요를 부르곤 했다. 인생 통털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음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다.

수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한국에 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과 뜻은 하나요 생각과 정신도 일치함을 확인하면서 나이들어 가면 우리 모두 함께 살자는 제안에 만장일치로 합의를 했다. 그러니까 새롭게 뭉쳐진 '시니어 5인방'이 된 셈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고 자식 잘 키워냈으니 홀로 남아 쓸쓸해질 노후를 서로 돌보아 주면서 유괘하게 살자는 다짐이다.

오르기보다는 내려가기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접어 들면서 나는 생각한다. 오늘 밤 평안히 잠자리에 들었다가 내일 아침에도 어제처럼 다시 심장이 뛸수 있다는 것은 전적인 하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을. 예방 접종조차 이겨내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는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한지붕 5인방 친구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들과의 합류를 떠올리면 설렘과 기대와 낭만으로 가슴이 콩당거린다.

에스더 최(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중앙일보 Reporter 역임
현 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