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지붕위의 가을

가을은 소리로 제일 먼저 다가온다. 여전히 낮이 뜨거워 꼭꼭 닫아 두었던 창문을 열고 어둠이 내리는 저녁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려 나서면, 귀뚜라미의 귀뚤귀뚤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아직도 간간이 덥고 따가운 햇살을 온종일 받은 작은 꽃들과 나무들은 목말라 하지만, 가을은 어김없이 올 것이며 곧 차가워질 것이다. 봄은 왠지 모르게 서두르고 여름은 기운 넘치게 달려가며, 가을은 다독이며 조금이지만 이제는 여유를 부려도 된다고 넌지시 말해준다. 비록 겨울의 차가운 멈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

7년 전 오랫동안 꿈꾸던 나만의 화실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을 주인없이 비워두었던 집인데, 축복처럼 와주었다. 제일 끝에 위치한 널찍한 침실 바로 위 지붕에는 옆집에서 넘어온 아주 오래되고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걸려있다. 가을이 오고 도토리와 다람쥐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소리로 시작한다. 낮의 길이는 짧아지고 대신 길어진 밤이 일찍 찾아와 어둠이 내리면, 열매를 떨어트려 세상에 퍼트려야 살아남는 도토리와 그 열매로 긴 겨울을 지내야 하는 다람쥐들이 연출하는 열렬한 생존의 치열한 무대가 펼쳐진다. 또르르 떨어지는 소리와 그것을 잡으려 달리는 다람쥐들은, 매일밤 지붕 위에서 가을 영화 한 편을 찍고 있다.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잠시 비를 피해 주인공 다람쥐는 쉬고 있지만, 바람의 흔들림으로 또 다른 주인공 도토리는 더 세차게 힘껏 소리 내 떨어지고, 빗소리에 잠 못 드는 나도 하얗게 더불어 밤을 새우고 있다. 가을은 예전처럼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새 곁에 와있고, 삶은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정직하게 달려간다. 그러므로 모두가 살고 있고 또 살아야 한다.

갇혀진 듯한 세월 속에서 계절 이름들이 .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하며 - 7번을 다르게 불리고 바뀌어 간다. 여전히 아름다운 날들을 떠올리며, 자책보다는 더 찬란한 희망으로 꼭 다시 올 거라 마음 서두른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