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역사

1929년 10월24일 주가 대폭락과 대공황의 시작

'암흑의 목요일' 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속에 기록된 1929년 10월24일 목요일 세계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듯 뉴욕의 월 가에 있는 주식 시장에서 주가가 사상 유례없이 폭락했다. 바로 전날까지 치솟기만 하던 주가가 별안간 폭락하면서 사람들은 주식을 팔기 위해 주식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주식을 살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 오후에 은행가의 큰 손들이 방어에 나서며 주가가 회복되기도 했지만 5일 후주가는 다시 폭락했고 몇 시간 만에 주식시장에는 무려 1,650만주가 쏟아져 나왔다. 또 하루 동안 다우존스 평균지수가 40포인트나 떨어졌으며 100억달러가 휴지조각이 됐다.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이었던 당시 미국은 표면상의 번영 이었을 뿐 막다른 골목을 향하고 있었다. 승용차, 주택 건설도 모두 감소했으며 공업 생산 및 가격의 하락은 눈에 띄게 진행되었다. 반면 소수 상류계급의 부의 집중은 심화되었고 돈을 가진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주식을 사며 주가를 올렸지만 결국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1796년 9월 10일 수원 화성이 완공되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다. 조선의 왕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정치를 펼쳐 나갔는데 수원 화성 건축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수원 화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려고 했다. 심지어는 수원으로 천도를 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서 세운이 화성은 동양에서 가장 정교한 성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정조가 이 성을 만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의 이장이었다. 화성 건설에 중추적인 맡은 인물은 정약용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고 정약용은 거중기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그 총애에 답했다. 화성이 이채로운 점 중 하나는 군사적인 기능이 매우 잘 적용되어 있다는 것. 실제로 화성의 영어명칭에는 요새라는 포트리스가 들어가 있다. 공식명칭은 Hwaseong Fortress다. 먼거리에서 성벽의 작은 간이 출입구가 잘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는 점 등에서 군사적인 목적이 잘 드러난다. 이렇게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서 지어진 화성은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과 북한군 등의 공습으로 파괴되었다. 그 이전에도 일본에 의해 반 해체된 상태였다. 하지만 화성성역의 궤가 온전히 남아있어 완벽하게 복원이 가능했다. 완벽한 복원을 했기 때문에 세계유산 으로도 지정될 수 있었다.

10월 3일, 1990년 서독과 동독의 통일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계대전 재발 방지라는 명목으로 승전국 중 공산진영을 주도하는 소비에트 연방은 동쪽을 자유진영인 미국, 프랑스 영국이 서쪽을 각각 나눠 점령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앙 유럽의 나라 대부분이 공산주의 체제다 보니 독일의 통일은 먼 희망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의 정책이 바뀌었다. 개혁과 개방적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소련의 지도자가 되면서 중앙유럽 나라들의 개혁과 개방을 허용했다.1989년 8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의 제한을 풀자 1만명이 넘는 동독인들이 같은 공산국가였던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다. 1990년 5월 18일 양쪽 독일은 경제, 통화, 사회의 통합을 협상하여 7월 1일에 실시했다. 8월 23일 동독 의회는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흡수통일에 동의해 1990년초 부터 경제 부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통일 작업에 착수 했다.이후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다섯 개 주가 서독으로 편입되면서 마침내 통일을 이뤘다.독일 통일 후 한동안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가 발단이 됐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실상은 다르다. 1989년 11월 9일 동독의 샤보프스키 정치국원은 외국 여행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확한 내용 확인 없이 서독을 포함한 외국 여행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들은 기자들이 시행 시기를 묻자, “지금부터 당장”이라는 실언을한 것이 통일로 가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방송을 본 동독과 서독의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가 국경 개방을 요구했고 무장한 경비병들도 이를 제지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결국 동독 관리의 말실수가 있던 그날 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그후 11개월만에 실제 통일로 이어질수 있게 됐다.

1867년 10월 알래스카가 공식 미국 땅이 되다.

북아메리카의 북서부에 있는 알래스카는 1741년 덴마크의 탐험가 '비투스 조나센 베링' 이 발견한 이후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후 크림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당시 미국 국무 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가 불과 720만달러의 헐값으로 러시아로 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시켰다. 당시 미국의 일부 국민들은 슈어드의 냉장고, 슈어드의 바보짓이라며 맹비난했지만1880년대~1890년대 사이에 금이 발견되자 미국인의 정착이 크게 촉진되었고 1912년 의회의 인준을 받으면서 알래스카 준주가 설치되게 되었다. 이후 알래스카는 미국의 보물창고로 급부상하게 된다. 금, 은, 석유등의 자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당시 채굴된 철광석은 720만 달러의 몇배나 되는 4천만 달러어치나 발견되기도 했다. 알래스카는 1959년 1월3일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고 오늘날 석유와관광 수입으로 잘 사는 주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