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역사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취임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이자 조선과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대한민국의 제 1,2,3대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1919년부터 192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역임했고, 1945년 해방 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추대되기도 했지만 귀국후 거절했다. 1960년에 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의해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미국하와이로 망명해서 그곳에서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한 140개의 신생 독립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139위로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였다. 당시 국민 평균 수명은 40세. 문맹률은 80% 였던 나라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가 세워질 때 농지는 농민이 소유한다는 원칙울 헌법으로 정하며 토지개혁을 단행하며 지주의 지배를 받는 억압적 구조에서 벗어나 백성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초석을 다졌다. 또 공산주위의 위협에서 시달리던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이 조약으로 10만명에 불과했던 국군이 70만 대군으로 성장하며 미국의 군사적 보호막 아래 발전을 추구했다. 남녀 차별이 남아있던 당시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를 세우고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하는 등의 업적이 있다.

1955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디즈니 랜드를 개장하다

1955년 7월1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나하임에 디즈니랜드가 개장했다. 7월17일 언론 매체에 예비로 공개하였으며 다음날 공식적으로 개장하였다. 월트 디즈니는 개장 당시 유일한 테마파크였다 디즈니랜드가 고유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건물들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다. 디즈니랜드에 대한 발상은 어느 일요일, 월트 디즈니가 그의 어린 딸 다이앤, 샤론과 함께 그리피스 공원에 방문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그는 딸들이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보면서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디즈니랜드는 하나의 공원과 호텔체제에서 점차 확장을 시도하였고, 기존 디즈니랜드 공원과 호텔, 대규모 주차장 그리고 새로 매입한 주변 부지를 포괄한 더 큰 규모의 종합 관광 리조트가 되었고 현재 애나하임의 디즈니랜드는 월트 디즈니 월드의 매직 킹덤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은 공원이 되었다.

1996년 7월17일 TWA 보잉 747 여객기 공중폭발

미국 TWA 항공사 소속 보잉 747 여객기가 1996년 7월 17일 오후 8시 40분 뉴욕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 직후 대서양 상공에서 공중 폭발했다. 여객기에는 승객 2백10명과 승무원 18명 등 2백28명이 타고 있었으며 폭발로 인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TWA 800편은 오후 8시 15분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지 25분만에 뉴욕주 롱 아일랜드 남동쪽 상공에서 폭발했는데 불길에 휩싸인 채 산산조각이 나면서 해상으로 추락했다. 해안 경비대는 헬리콥터와 보트 40여척, 잠수부등을 동원해 밤새 생존자 구조 작업에 나섰지만 생존자는 없었고 불에 심하게 그을린 1백여구의 사체를 인양했다. 사체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아무 경고 없이 무방비 상태로 폭발이 일어났음을 보여줬다. TWA 는 1946년 뉴욕 파리 노선을 처음으로 취항한 미국의 중견 항공사로 사고율이 낮아 안전도 점수가 높았다. 사고 당시 백악관은 이를 이란에 의한 테러일 가능성으로 보고 원인과 증거를 찾았지만 끝내 테러 증거나 사고 원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1785년 7월 달러가 미국의 통화 단위로 채택되다.

1785년 7월 6일 미국의 화폐로 지정된 이후, 미국 달러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화폐가 되었다. 몇몇 국가들은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사용하기도 하며, 어떤 국가들은 사실상 통화로서 유통되기도 했다. 이후 500달러, 1000달러, 5천달러, 10000달러, 100000달러 등 고액권도 있었다. 1946년 부터 공식적 유통이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으나 사용하는 이가 없고, 전자 거래의 확산으로 인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용을 불완전 중단 시켰다.

7월 8일, 1889년 / 월 스트리트 저널 초판 발행하다.

창간 이래 퓰리처 상을 무려 34회나 수상한 명실공히 미국 내 일등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이하 월지)은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일간지 중 하나이다. 경제와 비즈니스 뉴스에 무게를 두어 발행하는 조간으로 '다우 존스& 컴퍼니'사에서 발행한다. 세계증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우존스산업평균주가지수'를 산정 발표하고 있다. 1882년 뉴욕에서 3인의 젊은 기자 찰스 다우, 에드워드 존스, 찰스 버그스트레서가 지하의 작은 사무실에 모여 직접 손으로 '오후의 편지(Afternoon Letter)'라는 정보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월지의 역사가 시작되며 1889년 7월 8일에 공식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 월지는 네쪽짜리 석간이었으며, 사진 없이 흑백 기사로만 구성되었다. 증권중개회사 등의 유료광고가 있었으며, 기사형식을 고려치 않은 단순 정보지 형식이었다. 서부지역 철도요금 인하 단행, 밀 풍작 소식, 석탄 파업 뉴스 등 경제사회상을 보여주는 글이 주를 이뤘고 신시내티에서 열린 헤비급 권투 챔피언전 소식도 있다. 당시 주식시장 흐름을 잘보여주는 '주식가격 변화표'가 1면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표가 발전해 '다우존스 산업평균주가지수'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지수에 이름을 올렸던 12개 종목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종목은 GE 하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