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동백꽃

아직 차가운 2월의 날씨이다. 붉은색과 하얀색 동백꽃이 서로 친구하며 어우러진 동그란 모습으로, 미처 새로운 잎을 띄우지 못한 채 봄을 기다리고 있는 앙상한 가지의 다른 나무들을 다독이며 위로하듯 환하게 피어있다. 꽃말이 진실한 사랑이란다. 수더분하고 청아하며 마치 세상의 복들이 겹겹의 꽃잎 하나하나에 다 붙어 있을 것 같은 둥근 모습으로, 유난히 초록빛이 반짝이는 이파리와 함께 서로 다정히 기대며 잘 자라고 있다. 시간이 지나 대개의 꽃은 꽃잎 하나하나 떨어져 지는 것과 달리 동백꽃은 꽃잎이 전부 붙은 채 한 송이 그대로 떨어져, 바라보는 마음이 짠하다.

아주 옛날, 결혼식을 끝내고 떠난 신혼여행이 거제도 해금강이었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차가운 눈이 오는 초봄의 꽃샘추위와 몇 시간을 터덜거리는 시골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바닷가 절벽 위의 낡은 호텔로 밤늦게 지쳐 들어선 순간, 갑자기 터진 왠지 모를 서러움으로 밤새 울고 뒤척이다, 아주 늦은 아침을 맞았다. 호텔의 투숙객은 단지 우리뿐이었고 어젯밤의 지독한 바람과 추위와 눈발은 완전히 사라진,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날씨와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환한, 아름다운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들고 내려온 호텔 앞마당과 주변에 피어있는 붉고 하얀 동백꽃들은 경이로웠고 축복이었으며 감탄이었다. 정말 어젯밤까지 픔었든 모든 불평과 불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뭔가를 작별한 막연한 서러움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어쩌면 이 결혼은 정말 멋질 거라는 예감과 그것을 믿었다. 온종일 섬을 돌아다니며 동백꽃을 따다 실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매 식사때마다 호텔 식구들과 웃고 떠들며 지낸 삼박사일의 짧은 신혼여행은 끝났고, 어느날 문득 커다란 비행기를 보상이라도 하듯 반나절을 지겹게 타고서는 먼 나라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유독 추운 겨울에만, 다른 나무들은 아직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동안, 서둘러 꿋꿋히 크고 복스럽고 단단한 꽃을 피우며 여전히 동백나무와 나는 잘 자라고 있다. 향기가 아름답고 화려하고 귀하며 우아한 다른 어떤 꽃들보다 더 씩씩하게 자신에게 순응하며 함께 어우러져 피어있는 동백꽃을 바라보며, 후회와 원망의 지나가버린 과거보다 현재의 여전히 진행 중인 긴 결혼생활을 뒤돌아보며 그때의 예감과 축복을 떠올린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