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역사

1789년 2월4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턴이 선출되다

조지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1775년부터 1783 년까지 벌어진 미국독립전쟁에서는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미국의 건국과 혁명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 라고 불렸다. 워싱턴은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미국 독립전쟁부터 파리조약으로 독립을 승인받을때까지 총사령관으로 복무하며 미국의 독립을 성취했다. 이후 1789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연방정부가 수립된 후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정부 각 부서의 관례와 임무에 대한 기초를 세웠다. 워싱턴은 1799년에 향년 67세로 사망하였다. 전쟁에서도 으뜸, 평화에서도 으뜸, 그리고 국민들 마음속에서도 으뜸이라 칭송받았던 워싱턴은 지금까지도 미국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미국의 1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1927년 2월 16일 국내 첫 라디오 방송 송출

"여기는 경성방송국 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처음으로 송출되었다. 전파 발사는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 학교 자리였고 호출 부호는 JODK, 호출 명칭은 경성방송국, 주파수 690kHz 였다. 방송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총 17시간 이었지만 장비부족, 인력 문제로 인해 방송은 늘 불규칙하게 송출되었다. 개국 초기에는 한일 양국어로 방송되었는데 한국어 30%, 일본어 70% 의 비율로 방송되다가 1933년 조선어 방송인 연희방송소가 개소된 후 일본어 방송을 제1방송, 한국어 방송을 제2방송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한국인 직원이 3명 포함돼 있었는데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이 프로듀서 1호였고 그의 부인 마현경이 아나운서1호였다. 정규 라디오 방송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이뤄진 일이었지만 국권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의미 없는 기록으로 남겨졌다. 당시 라디오 청취료는 월 2원이었는데 쌀 한 가마니 가격이 5원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꽤 고가의 청취료였다. 사실 일본 정부가 조선인의 집단 행동을 통제하고 민족의 정신 개조를 통한 황국신민화를 목적으로 개국한 것으로 조선 민중을 위한 방송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총독부의 불허로 이뤄지지 않았다.

1953년 2월 15일 화폐개혁 단행

6.25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정부가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통화 개혁은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 비율은 100원에 대하여 1환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화폐 개혁 발표가 이뤄진 2월15일 이후 2월 17일부터 9일간 국민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통화를 금융기관에 예입해야 했다. 또 이 기간에 금융 기관에 대한 채권 채무액도 신고해야 했다. 전쟁 중에도 신권을 사용하는 화폐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1947년 미국 군정청에서 화폐 개혁을 준비하며 미리 화폐를 인쇄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화폐는 1환, 5환, 10환, 100환, 1000환 총 5가지였으며 서울의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다행이 전쟁중에 북한군이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중이던 신권을 건드리지 않아 화폐개혁에 맞추어 사용이 가능했다. 통화개혁은 경기침체와 전쟁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이 컸는데 실제 신고 금액이 60% 선에 불과해 한동안 경제가 마비되고 물가가 폭등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우리가 원 단위의 화폐를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은 1962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와 함께 단행된 화폐 개혁부터 였다.

1958년 2월 16일 대한민국 최초 여객기 KNA '창랑호' 피납

대한민국 최초의 여객기 창랑호는 대한국민항공사의 여객기다.
1958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창랑호는 부산 수영비행장을 이륙 여의도 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창랑호는 도착을 눈앞에 두고 12시 40분경 평택 항공에서 기수를 돌려 북으로 강제 납북되었다. 이 사건은 5명의 남파 공작원과 2명의 월북 동행자가 합작하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항공기 공중 납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강제 착륙한 창랑호에는 승무원 3명 승객 28명 납치범 7명등 총 38명이 타고 있었으며 기장과 부기장 모두 미국인이었고 독일인 부부 등 외국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1885년 2월29일 최초 서양식 병원, 광혜원 설립

1885년 2월 29일 고종이 알렌의 서양식 병원 건립 건의를 받아들여 지금의 헌법 재판소 자리에 광혜원을 설립했다.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2주 뒤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제중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으로 진료활동을 벌였다. 이후 1894년 행정 관제 개혁을 맞아 종두 및 의약, 전염병 예방 업무등을 맡으면서 내무아문으로 폐합되었다. 제중원은 이후에도 선교 사업 기관으로 분리되어 의료 업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병원 운영을 맡은 관리들의 부정 부패로 인해 고종이 모든 권리를 에비슨에게 맡겨 설립한 지 9년만에 경영권이 모두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하게 되었다. 1904년에는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의 재정 지원으로 남대문 밖 복숭아골에현대식 병원이 지어졌고 세브란스 병원이라 불리어지면서 제중원이라는 이름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