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밥상너머

오늘도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콩나물을 다듬어 국을 끓이며 반찬을 만든다. 다른 의식들과 생각들은 환경과 교육에 의해 달라지며 세월 따라 변해가지만, 오래전 부모에 의해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입맛과 혀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진해지고 생생해진다.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며 솜씨도 늘고 또 시간과 삶의 방식도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변했겠지만, 여전히 밥솥에 손을 넣어 물을 가늠하고 좋아하는 밥을 맞춘다. 작은 일인 거 같지만 내 몸을 빌려 태어난 나의 아이도 그 정성으로 생존을 위한 진한 영양소와 사랑으로 뿌리내리며, 먼 타국에서 세대를 넘어 살아갈 것이다. 오래전 막냇동생이 살고있는 중국 베이징을 갔었다. 이른 아침 공원에 많은 사람이 모여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들른 오래되고 낡은 동네 시장 안에서, 수없이 많은 종류의 김치를 팔고 있는 조선인들을 보고선 깜짝 놀랐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수십 가지의 김치와 반찬 종류들 그리고 세월은 따로 많이 지나갔지만, 그 맛과 모양이 똑같은 것에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돌아왔었다. 이제 그들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떠나온 조국은 비록 기억나지 않더라도, 부모가 먹여주며 키워주었던 음식들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든 것이다. 그리고 수 없는 추억 속의 맛을 떠올리고 만들면서 다시 전통과 세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밥 한 그릇과 반찬 하나가 얼마나 질기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럽고, 그 어떤 약속도 맹세도 혀가 느꼈든 기억과 추억을 담은 음식만큼 질기게 본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가끔 예전 엄마가 해주셨든 고춧가루 듬뿍 넣은 빨간 소고기 무우국을 그리움과 함께 끓인다. 먼 훗날, 많은 것들은 잊혀질 것이고 또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영원히 기억하는 엄마가 만들어 주며 키워주었든 음식들의 그리움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도 저녁 시간 식구들과 함께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그 안에는 차마 부끄러워다 말하지 못한 사랑과 미안하다 하지 못한 부족함과 세상 더없이 소중합니다라는 마음 한가득 담아, 밥상 너머의 미래를 바라본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