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수필과 작품 감상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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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져 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발자욱, 꿈을 위해 가고 있는 날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랍니다. 작은 것이지만 모아지고 합쳐져서 끝내 크게 될 거라는 그런 희망인 거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엄마의 책상 위 글귀는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였습니다. 남자 같은 필체로 커다랗게 매년 새로이 써여지는 그 글은, 너무도 뚜렷이 내 안에 박혀 있어 도저히 빼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꼭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리셨는지, 기억 속의 엄마는 노란 임신복의 한여름의 더위에서도 기다란 땀을 흘리며 책상 위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계셨거든요. 엄마로서의 삶보다 자신을 위한 희망이 너무도 강해, 부러져 버릴까 어린 마음에도 내내 두려웠던 엄마였는데, 지금은 바로 내가 불현듯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책상 앞에 엎드려 글을 쓰든 엄마가 꿈을 이루어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아직도 책상 앞 컴퓨터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글들을 저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녁 때의 밥상을 기다리고 있든 저희들보다 더 소중했었느냐고 차마 물어보지도 못한 체입니다만, 어느새 저도 감히 희망을 아니 꿈을 품고서 그 사과나무를 심고자 빨간 태양의 치열한 뜨거움도 파란 한밤의 바늘같은 냉철함도 예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 밖의 일에 서툴러 수 없는 실수와 부끄러움과 턱없이 모자라는 능력에 낯 뜨거워, 기둥 속의 기둥 뒤에 숨어서 그냥 있든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나을지 후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밤의 나약한 나를 뻔뻔한 낮의 강함으로 숨겨주곤 합니다. 굳이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무어 그리 기운 쏟고 있느냐는 철없던 시절의 저의 의문도, 이제는 스스로가 답을 찾을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마지막이 온다고 하더라도 비록 세월의 흉터가 움푹 파여진 땅일지라도, 희망을 심으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어진 것들을 허비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하루가 쌓이고 모아져서 크게 사람다워질 거라고 믿을 겁니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Santa Clara county Art Fair에서 2년 대상과 장려상 수상
개인전 개최 2009년 "Butterfly - 나비 그 흔적들" - Aegis Gallery, Saratoga
현재 Aegis Gallery of Fine Art Gallery 회원으로 작품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