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김의 한 잔의 커피 향 - 인생의 굴레

요즘 방송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인기 프로로 뜨기 시작한다. 아마도 바쁜 도시 생활 속의 거듭되는 스트레스와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에 지쳐 마음만이라도 함께 하며 심신을 쉬고 싶은 대리 만족일 것이라 생각된다. 출연하는 자연인 대부분은 중년 남자들인데 간혹 중년 여성이 등장해 주목했는데 그녀가 자연인으로 들어서게된 말 한마디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24시간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 너무 행복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집안에 가장으로써도 힘겨운 인생들이었겠지만 이 여성의 말 한마디는 한국 여성의 고단한 인생이 다 그려지는듯 했다. 이기적이지 못하고 층층 시부모, 시어른에 시동생,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겨우 육십 넘어 찾아온 자유를 그 자연인은 만끽하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깊은 산골은 아니었지만, 시골 마을에 자신만을 위한 텃밭과 과일나무를 가꾸며 여유로이 취미를 즐기고 사는 그녀를 보며 나를 위한 삶처럼 가슴이 뛰었던 순간이었다. 나는 과일을 먹고 나면 남은 씨를 버리지 않고 언제든 화분이나 조금의 흙이 있으면 심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싹이 나오면 숨 쉬는 땅의 생명력에 대한 경이로움과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흙과 시골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고 저곳으로 돌아가 나도 자연인이 되리라고 희망하며 이 프로를 즐기고 있는데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요 몇년동안 나는 너무 자유로왔다. 전원을 즐기는 중년의 여자처럼 아이들이 대학까지 다 마치고 각자 사회인으로 들어 섰을때 이제야 부모의 임무는 끝이다 라고 자유롭게 외치며 이제부터 내 인생을 살아보자고 그동안 못했던 공부, 글쓰기, 악기 연주, 여행 등…하고 싶은 여러것에 생각만도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분주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진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달려왔는데 이젠 나를 위해 뛰어보고 즐겨보자. 너무 신나고 행복했다..... 에구! 그런데 이게 인생인가! 마땅히 해야할 부모의 역활은 다 끝난줄 알았는데 … 더 큰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십을 넘기신 부모님들께서 교대로 아프신 거였다.
며칠째 음식을 못드시는 어머니를 위해 병원으로 이검사 저검사 받으며 이리저리 모시고 다니느라 서로가 지친탓에 누가 아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머니가 조금 회복이 되어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이젠 시집간 딸이 큰 임무를 던져 준다.
"엄마! 앞으로 아기를 낳게되면 엄마가 제 아이 돌보아 주는 것 괜찮아요? 24개월이 지나야 데이케어에 보낼 수 있는데 직장을 그만둘 수 도 없고 어쩌죠?"한다.
아줌마로 이제 적응되어 살아가는데 느닷없이 할머니 준비도 안된 나에게 또 커다란 임무가 주어지는구나. 부모님 구세대들이 자신은 잊은채 한없는 희생만 하고 그렇게 살아오셨듯 우리 자녀 신세대들은 합리적인 사고로 과감히 자신의 이익과 존재감을 찾으며 당차게 자신의 삶을 멋지게 세워 가고들 있는데 내 나이의 중년들은 그야말로 낀 세대인 것 같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결국은 해야 되고 투덜거리며 갈등을 겪고 가는 낀세대. '피할 수 없음 차라리 즐기라 했다.' 도움 받는이 보다 도움 주는이가 된게 감사하라 했다.
이 땅에서 세상을 일구시고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 지는 해의 노을은 깊고 그득하다. 그 노을에 부모님들의 인생이 있듯이 시들어가는 남은 인생에 평안을 건네고, 또 이제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세상에 첫발을 디딜 손주를 맞이할 설레임이 교차된다. 우주의 순리대로 나의 두손을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또 한번 뛰어 보리라. 자유로운 삶으로 자연인을 향하던 나는 결국 피할 수 없이 낀세대로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또 하나 삶의 연출자가 된다.

수잔 김
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