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골동품

오래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세월만큼 간직해온 자랑스러움이다.
어릴 때, 늘 동네 고물장수와 엿장수 아저씨들은 하루해가 저무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우리집으로 모여들었다. 온종일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고물 삽니다"를 외치다, 구멍 숭숭한 하얀 엿으로 바꾼 온갖 잡동 사니와 낡은 가구들과 항아리들을 주루룩 우리 마당에 펄쳐놓고, 엄마의 간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이상한 모임이 끝나고 어느새 어두워진 어둠 속에서, 한가득 마당에 쌓여있던 것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더럽고 낡고 괴상하고 오래된 물건들 가운데에서, 유난히도 아름답고 젊디젊고 생기에 찬 엄마의 야릇한 미소와 더없이 반짝이는 눈빛도 기억한다. 날씨가 추워도 더워도 엄마는 손수 물호스를 들고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닦고 또 닦으며 제대로 된 가치를 찾고 있었다. 벼룩 옮는다는 아버지의 성화에도, 학교 앞 야바위꾼 아저씨가 내게 아는 척하는 것이 싫다고 아무리 보채고 울어도, 늘 해질 무렵이면 우리집 앞은 어김없이 몇 대의 고물장수 손수레들이 서 있었다. 고물을 예술품으로 진즉에 알아본 안목으로 수집하며 아껴온 엄마의 물건들은, 이제 골동품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변신하여 긴 태평양 건너 내가 살고있는 집으로 옮겨와, 돌아가신 엄마 대신 주인을 바꾸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오래된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면 언제나 존경심과 허무한 생각이 든다. 실제의 주인들은 이미 사라져 없어지고 생명 없는 물체만이 덩그러니 남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나 역시 사라질 거라는 걸 상기시켜준다. 처음 생겨나 자신을 품어준 이들의 긴 세월을 다 보고 또 보내며 간직해온 묵묵한 침묵은, 낡았다는 감정보다 존경과 경이로움과 자랑스러움이다. 가치를 알아보는 이 없던 시절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며 참고 기다리다, 이제는 더없는 소중함으로 세월을 견뎌낸 골동품 속에서 예술을 배우고 또 삶도 배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