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김의 한 잔의 커피 향 - 눈높이

미국이민 초기에 겪었던 아들과의 힘겨웠던 갈등을 회상해 본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세대와 문화 차이로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색깔과 무게를 달리한 상흔들이 얼룩져 먼 이국땅에서 가슴이 저밀고 갈증처럼 관계가 메어옴을 어찌 나만의 독백으로 그치겠는가.

눈만 뜨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보와 인터넷등 매개체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현란한 연예인들의 옷차림과 춤, 어리버리한 나 같은 주부한테는 보기만도 벅차다. 또한 변해가는 은어에 한국말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점을 교묘하게 정당화시키는 매스컴의 대사들이 난무하는 시기에 아이를 공부시키겠다고 뒤늦게 미국행을 탄 내가 영어까지 보태졌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이들과의 견해차는 이 넓은 땅에서 철저히 외롭고 사면이 막힌 암담함을 느꼈었다.

맞벌이를 해야 살아가는 미국 생활이고 늦게까지 일하는 통에 여느 부모들이 그랬듯이 미처 아들과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다. 아들은 가정에서는 한국식 교육과 학교에서의 미국식 교육, 집에서 허용이 안 되는 것이 친구집에선 무난하게 지나갈 일들에 대해 많은 혼란을 빚더니 급기야 너무나 낯설은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공부도 잘하던 아들이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성적은 바닥이고, 모양새는 번쩍번쩍 귀걸이에 온 바닥의 먼지는 다 쓸듯 한 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정녕 내 아들인가 싶었다.

너무나 변해버린 아들을 놓고 우리 부부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작전을 세우며 얼려도 보고 혼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무섭게 달려드는 아들은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멀리 가 있었다. 한창 친구가 좋은 나이에 부모의 선택으로 헤어진 한국 친구들과 낯선 이국땅에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적응이 힘들었던 힘겨움과 외로움이 반항으로 표현이 된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그저 일하느라 만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안아주고 위로하기보다 숙제 검사와 학교 공부를 다그치는 통에 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날 아들과 여행을 하며 깊은 대화를 가졌다. 아들의 외치는 소리가 그동안은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았었다. 아니 듣지 않았던 것이 옳을 게다. 아들의 마음을 읽고 난 후 가슴으로 크게 안아주자 그간에 아들이 외로워하는 소리, 공부가 힘겨워 피하고 싶어하는 소리, 친구들과의 갈등 소리 등 가슴속 내면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화를 참아보니 나와 이제껏 부딪혔던 많은 이들을 포용하지 못함도 후회가 되었고, 내려놓음과 마음 다스리며 반성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그제야 아들의 눈높이로 깊은 대화를 나눔으로 우리는 더욱 친해졌고 훈훈한 가족사랑 속으로 성큼 큰 모습을 하고 아들은 넉넉하게 돌아왔다.

지난 시절 그렇게 한바탕 흘러가고, 신세대로 자라나는 아들의 눈높이가 못되어 준 것만큼 쉰세대인 우리에게 아들은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줄까?

성큼 청년으로 변한 아들과 서로의 눈높이를 갈망하며 오늘도 한걸음 성큼 그러나 조심스레 대화해 본다.

수잔 김
피아노 반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