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김의 한 잔의 커피 향 - 시멘트 위의 들국화

"무슨 꽃을 좋아해요?" 누가 내게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길가의 코스모스나 들국화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왠지 그 꽃들은 아무 보호도 없이 잘 자라 언제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지나가는 길에 쉼터를 안겨주기 때문일 게다.

작년 이맘때 나는 하얀 들국화를 앞마당에 심었다. 하얗게 수놓을 앞마당을 상상하며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시들시들 죽더니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인연이 아닌가 싶어 포기한 들국화가 일년 만에 놀랍고 깊은 감동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씨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는지 약간 금이 간 시멘트 바닥 사이로 빼꼼이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들국화야! 대견하다." 연거푸 칭찬해주며 조심스레 좋은 땅으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들국화는 하얗게 앞마당 가득 채워져 갔다.

나는 앞마당을 보면서 행복했고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삐집고 올라온 강한 생명력을 보며 문득 우리나라를 생각해 본다.

위아래 외국들의 침략에 늘 시달리며 제대로 다리 펴고 살아보지 못한 우리나라는 들국화 못지않은 강한 생명력을 지닌 민족 아닌가. 그 엄청난 시련을 겪고도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 교육에 혼신을 다하는 우리 부모님 세대- 벼농사를 함께 도와가는 품앗이와 애경사에 두 팔 걷고 나서는 상부상조. 정겨운 그 세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나라 밖 어디서나 은근과 끈기의 자랑스러운 민족이며 우수한 두뇌로 잘 적응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이 자신은 강하고 모질게 살아오신 반면에 자식에겐 미처 가르치지 못한 게 있다. 어둠 속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정신력보다 자신들의 열등감에 지나친 교육열과 물질 만능주의 우선의 결과로 인해 현실은 불균형으로 절룩거리고 있다. 머리는 꽉 차고 눈은 높아가는데 가슴은 너무나 나약하다. 몇 해 전 아는 젊은 후배가 지병으로 남편을 잃었음에도 슬픔을 딛고 남편 몫까지 두 배로 일을 하며 힘들 때면 '나는 엄마다'라는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면 자신의 마음도 맥없이 무너지면서 차라리 휘청거리고 싶어질때도 있지만 그 후배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일어섰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로 행여 상처될까 조심하며 남편에게만 맡겼던 집안 수리와 전기, 못질, 자동차 오일 체인지 등을 하며 그동안 남편에게 얼마나 고마웠던지 실감하며 하루하루 삶을 열심히 적응해 간다고 한다.

또 한 지인은 부동산으로 꽤 재산을 불려 늘 부러워했는데 새로운 비지니스의 실패로 엄청난 부도를 맞았다. 다 죽어갈 거라고 생각한 그 지인을 만났을 때 뜻밖에도 "난 망해도 싸요. 웬만했을때 손을 놔야 하는데 욕심을 부렸어. 다 내가 뿌린 씨앗이고 너무 과했어. 그동안 잘 누렸으니 그것으로 됐어. 그동안 재산 모으느라 가족이 보이질 않았고 도와 달라는 손길들도 외면 한게 후회가 많네. 지금이라도 눈이 있어도 안보였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것들이 다 보이고 들려오니 다행이라 여겨져. 남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미가 이제서야 생기네."라고 여유를 보였다.

두 사람은 시멘트 사이로 삐집고 올라온 삶의 향기까지 담은 생명력 강한 들국화였다.

과연 우리는, 나는 저런 넉넉하고 큰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누렸던 것을 생각하기보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며 원통해 하는 게 우리 아닌가. 삶과 힘든 역경을 지내온 우리 조상들과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새로운 시작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그들을 보며 앞마당의 시멘트 사이로 올라와 여유롭게 바람에 흔들리는 강인한 들국화는 바로 이들의 모습이었다.

수잔 김
피아노 반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