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역사

1860년 11월 6일 링컨 대통령으로 당선

1860년 11월 6일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링컨은 현재도 가장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꼽히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롤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2012년 링컨 이라는 영화로 그의 리더십이 부각되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는 링컨 열풍에 휩싸였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파란 만장 했다. 그는 우체국장, 뱃사공, 측량 기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그 후 일리노이주 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고, 간신히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주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링컨의 고난은 계속됐다. 주의원 의장에 낙선, 하원 의원 공천 탈락, 상원 의원 낙선,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 낙선등 그의 정치 경력에는 낙선한 사례가 많다. 1858년에는 대통령이 되기 직전에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출마 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1860년의 링컨은 민주당이 남부와 북부 민주당으로 갈라지면서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미국 선거 역사상 유일하게 당선자의 득표율이 40%가 넘지 않은 선거였다. 하지만 그 후 링컨의 업적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눈부신 것이었다. 그는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노예를 해방 시켜서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 고 있다. 여러 번의 도전과 낙선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미국의 역사를 바꾸며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록 되었다.

1943년 11월 28일 테헤란 회담

1943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회담이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 고 있을 무렵 연합군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가 모인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 영국의 수상 처칠, 소련의 수상 스탈린이 모인 첫 회담이었다. 테헤란회담의 의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합국 상륙작전에 대한 것 이었다. 스탈린이 주장하는 북 프랑스 상륙작전과 처칠이 주장하는 지중해 작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고 결국 북 프랑스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총 사령관으 로는 아이젠하워가 임명 되었다. 이외에도 이란의 독립과 주권의 보전, 소련의 대 일전 참가 등이 결정되었다. 이 회담으로 3국의 전쟁 수행 협력이 한층 강화 되었으 며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정세에 대해서 그려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역 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테헤란 회담의 이전에는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총통의 세 연합국 수뇌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모여 회의를 했고 이런 결과가 카이로 선언으로 이어졌다.

1968년 울진과 삼척에 무장공비 1백여명 침투

1968년 11월2일 무장공비 1백여명이 울진과 삼척 지구에 침투 했다. 이들은 북한 민족 보위성 정찰국 예하의 124군 부대 소속으로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서울로 침투했던 김신조 사건을 만회하고 남한에서 반정부 민중 봉기를 일으킬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무장공비들은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들고 10월 30일부터 11월 2일 사이에 15명씩 8개조로 나뉘어 총 120명이 침투했고 울지, 삼척, 봉화, 명주, 정선 등의 주민들을 집합시킨 다음 북한 책자를 나누어 주면서 북한 발전상을 선전하는 한편 인민유격대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11월 3일 울진 북면 고수동 주민이 울진 경찰서에 무장 공비 출현을 신고하였고 상황을 파악한 당국은 11월 3일 오후 2시 30분을 기하여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대 간첩 대책본부의 지휘 아래 군과 향토 예비군을 출동시켜 소탕 작전을 벌였다. 이 전투로 인해 침투한 무장공비 중 7명이 생포 되고 113명이 사살되었으며 남한 측도 민간인을 포함하여 40여명 이 사망하고 30명이 넘게 부상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1980년 11월 14일 언론통폐합 단행

1980년 11월 14일 언론 통폐합이 단행됐다. 언론사 구조개선의 일환으로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의 난립을 정리하고 공영 방송 체제를 도입한다는 취지였으나 실상은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언론을 탄압하고 저항적인 언론인을 해직 시키는 등 '언론길들이기'를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국내 신문 사상 처음으로 상업 신문을 표방 했던 신아일보가 폐간되고 경향신문으로 통폐합 당했으며 서울경제는 한국일보로 흡수당했다. 중앙일간지 외에도 지방지 또한 폐간 당하고 흡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방송사의 경우는 KBS가 다른 방송을 흡수하는 형태를 보였다. TBC가 KBS에 흡수통합당해 KBS 2TV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건설된 TBC의 여의도 사옥은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뺏겼으며 현재는 KBS의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TBC의 마지막 고별방송에서 이은하가 눈물을 흘리자 3개월 동안 방송출연을 정지 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동양통신, 합동통신 등의 통신사는 모두 연합 통신으로 통합되었다. 언론사 통폐합에 앞서 기자들이 무더기로 해임되는 80년 봄 언론검열철폐와 자유언론실천 운동을 주도한 기자협회 간부들을 대량으로 검거하는 한편 7월 중순부터 언론인에 대한 대대적인 해직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8월 9일에 이르면서 반정부적 언론인 711명이 해직되었다. 때맞춰 문화공보부는 172개의 정기간행물의 등록을 취소하여 씨알의 소리, 창작과 비평, 뿌리깊은 나무 등 유력 월간지를 폐간 조처 했다.

2000년 11월29일 경주 역사유적 지구와 고인돌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록

경주 역사유적 지구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경주 유적이 신라시대 천년의 문화적 업적과 불교 및 세속 건축의 발달을 보여주는 뛰어난 유적이며,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2-3천년 전의 장례 및 의식 유적으로 선사시대의 기술과 발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등록된 경주 역사 유적지구는 경주 남산지구, 우러성지구, 대농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로 칠불암 마애석불과 첨성대, 분황사석탑, 황료사지, 명활산성등의 문화재가 위치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은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일람표에 등록하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