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천국 나그네의 윤리 (2)

지난호에 이어...
나그네 사명, 이스라엘에서 지금도 이어지는 이 부르심을 떠올리는 것은 지난 달 있었던 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들의 총회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교단은 차치하더라도, 나고 자란 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 총회는 결코 나그네들 답지 못했다. 일단, 그 구성원들부터 그러했다. 전국 각지에서 1,500명이나 되는 대표들이 모였다는데, 그 중 여성 총대는 고작 26명에 불과했다. 2%도 안되는 여성 대표들, 거기에 총대들의 평균 나이는 예순을 훌쩍 넘어섰다. 1,500명중 98%가 6, 70대 남자로 구성된 결의체, 극도로 기울어진 성 비율과 연령대로 모인 획일적 집단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마이너리티에 속한 사람들, 다양한 의견에 열린 마음이 가능하지 못한 집단이 어떻게 개혁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는 건강한 전승을 이어갈 수 있을런지, 차마 어디 가서 개혁교단이란 말도 꺼내기 부끄러운 모습이다. 어린아이, 여인, 사마리아 사람들과 병자들을 거침없이 만나고 회복시키셨던 예수의 존재 자체가 나그네요 마이너리티였음을 이 거대 집단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 구성에서부터 말이다.

나그네로 산다는 건, 슬픔, 서글픔, 한 맺힘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공의롭고 정의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선언한다. 하나님의 나그네는 내가 예전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억울 했는지, 힘들었는지 늘어놓는 한풀이 무용담에서 그 정체성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그네는 지금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통해 평가를 받는다. 천국 나그네의 윤리는 한풀이가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다. 이 점에서 이민교회 역시 고민거리가 많아야 한다. 왜냐면 이민교회는 온통 나그네 설움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나름 나그네의 스토리는 있기 마련…하지만, 하나님이 전해온 나그네 윤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잘 사는 것'이다. 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를 관통해 온 우리는 늘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를 마음 깊이 간직하며 나그네 설움을 이겨내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잘살아 보세의 끝이 단지 이민자로서의 설움과 한풀이, 고생 끝에 이만큼 이루었다는 자전적 성공 스토리에 그친다면, 실은 하나님이 뜻하신 나그네 사정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나그네 사정은 그런 잘살아 보세가 아님을 우린 이미 그 오랜 삼천년 전 텍스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의 나그네 설움이 어떻게 나그네 윤리로 바뀌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이 전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이 울었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땐 당신 혼자 미소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 김수환 추기경.

이재근 목사 (iChurch of Silic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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