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집

집을 좋아한다. 어쩌다 밖에 나와 있다 해가 지며 날이 어두워지면 얼른 돌아가고 싶어 서둔다. 집이라는 의미는 지붕과 벽이 있어 바깥의 위험과 날씨 변화에 보호해주며, 힘들고 지칠 때 안전하게 머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살면서, 지붕 하나 없이 세차게 내리는 비를 차마 피하지 못한 채로 서로를 사랑할 여유를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바람 하나 막아주는 벽 하나 없이 정신적인 안정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집에서만 지내다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얼굴에 이쁘게 화장을 하며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선다. 진짜의 나는 잠깐 내려놓고, 분장하고 무대 의상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세상 밖의 일에 서툴고 부족하며 가벼운 두려움까지 가지고 있고, 감정적인 성격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미소로 숨긴 체 산다. 어쩌다, 있는 본 모습 그대로 드러내어 마음의 상처로 되돌려 받으면 후회하며 아파한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 혼란스레 돌아온 그 날 밤은, 불도 켜지 않은 체 어둠 속에 앉아 부끄럼 없이 맥주 한잔 들이킨다. 이런 나를 온전히 내어놓고, 힘들고 지칠 때 아무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위로받는 곳이 집이다. 그러듯 하루가 지나가고, 한밤중 느닷없이 켜지는 마당의 물주는 소리에 깨어 깜깜한 어둠 속에 무서워하지만, 다시 다독거리며 기억하여 도로 잠드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동네, 어떤 크기, 얼마의 값으로 매겨지는 건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편안해지는 곳으로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지나온 수많은 순간과, 잘못한 후회투성이의 아픈 이야기와 사랑하는 곁의 누군가가 떠나는 슬픔이 다 녹아있는 곳이 세상에 있기에 삶은 그리 퍽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나누며 살아가며 이루어가는 오래된 세월과 구석구석 배어있는 밥 냄새처럼 익숙하며 텁텁한 숱한 시간을 함께 나누며 보낸, 묵은 사랑과 추억이 담겨있는 집을 좋아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