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역사

2009년 7월 19일 독일 아우토반 259중 추돌사고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인 독일 아우토반에서 259대의 자동차가 연쇄추돌하는 사상 최대의 사고가 발생했다. 2009년 7월 19일 오후에 발생한 이 사고는 독일 북부 브라운슈바이크 인근 하노버에서 페이테 구간의 아우토반에서 일어났으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빗길에 미끄러진 뒤 석양때문에 시야가 나빠진 운전자들이 앞의 사고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연쇄 추돌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259중 추돌 사고 직후 현장에는 300여대의 구급차와 소방차, 경찰차 등이 출동해 밤새 인명구조와 사고 수습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 사고로 인해 10명이 중상을 입고 66명이 다쳤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전쟁 이후 독일을 대표하는 고속도로로 새롭게 탈바꿈 되었으며 12,000km의 길이에 직선 도로 뿐 아니라 완만한 커브 라인이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세계 많은 고속도로의 본보기가 되었다. 특히 아우토반에는 속도 무제한 구간과 속도 제한 구간이 정해져 있는데 속도 무제한 구간에서는 130km/h 의 속도를 권장하고 있으며 트럭의 경우에는 80km/h의 제한 속도가 정해져 있다.

1996년 7월 27일 집중호우로 강원도 군부대 매몰

1996년 7월 27일 경기, 강원 북부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강원도 전방 군부대 막사들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원도 철원 전방 산악지대 군부대에는 이날 새벽 최고 5백 77mm의 폭우가 쏟아 졌는데 이로 인해 막사들이 산사태로 매몰되는 사고가 속출했다. 강원도 철원 전방에서 피해를 입은 부대는 육군 7개 부대와 공군 1개 부대로 2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되었으며 27명이 중상을 입는 큰 인명 피해였다. 또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위치했던 육군 승리부대 공병 부대 막사도 주변 산사태로 인해 대대 막사 2채가 매몰되면서 8명이 사망, 4명 실종,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강원도 화천 지역에서는 공군 레이더 기지가 집중 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되면서 장병 15명이 매몰되었고, 2명 사망 1명 실종, 12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중 호우가 쏟아졌던 27일 전날인 26일에도 강원도 철원군 소재 군부대 막사가 매몰되면서 20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갔다. 1987년 태풍 셀마호 이후 최악의 물난리로 기록된 이날 집중 호우는 군부대 뿐 아니라 경기도 연천과 문산읍 일대가 물에 잠기게 했으며 주변 민가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1956년 7월 25일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 침몰

1956년 7월 25일 스웨덴의 대양 정기선 스톡홀름호가 난터키트 앞 바다 안개속을 항해하던 중 이탈리아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SS Andrea Doria) 와 충돌했다. 이로인해 2천9백만 달러의 이탈리아 호화선 도리아호가 충돌 12시간 후 수심 2백25피트의 대서양에 침몰했다. 도리아호의 침몰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1912년 타이타닉침몰 사고보다 더욱 큰 사고로 공해상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형 선박들의 충돌 사고이자 세계 5대 해상 재난 사건으로 꼽힌다. 역사상 최악의 해상 재난 사고는 1945년 2차 대전 당시 9000명 이상이 죽은 빌헬름 구스틀로프(Wilhelm Guseloff)호 침몰 사건이다.
이탈리아의 거대 호와 여객선인 안드레아 도리아호는 사고당일 밤 낸터킷섬 남쪽에서 안개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고 많은 승객들은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밤 11시10분경 스웨덴의 스톡홀름호가 일직선으로 도리아호의 측면을 들이 받았다. 여객선 안의 승객들은 큰 진동을 느꼈고, 충돌로 인해 배 측면에 구멍이 생기면서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선체가 걷잡을 수 없이 기울기 시작하며 침몰하는 동안 밤새 승객들의 탈출이 지속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 스톡홀름호의 5명의 승무원은 사망했으며 도리아호는 1660명의 승객 중 46명의 승객이 사망하고 나머지 인원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는데 이는 세계 해양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해난 구조 사건으로 꼽힐 만큼 인명 피해가 적었던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2002년 7월 29일 법륜스님, 막사이사이상 평화부문 선정

'막사이사이상' 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인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제정된 국제적 상으로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1958년 3월 1일 록펠러 재단이 공여한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설립된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해마다 정부 공무원, 공공사업, 국제협조 증진, 지역사회 지도, 언론문화 등 6개 부문에 걸쳐 각각 5만달러의 상금과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의 법륜스님은 2002년 7월 29일 정치적 정파에 개의치 않고 탈북자 지원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평화 및 국제이해 부문의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법륜스님은 수상 소감을 통해 이 상은 지난 수년간 남북화해와 인도적 지원을 한 모든 민간단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얘기하며 이 상을 받는 것을 계기로 국제 사회가 이들의 고통이 하루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대북 인도적 지원의 확대와 난민 보호에 적극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이 지구상 곳곳에서 전쟁과 재난, 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서 하루 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법륜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사회 운동가로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 를 통해 수행 지도와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또 통일 연구, 교육기관인 평화재단, 국제 기아, 문맹퇴치 민간기구인 한국 JTS, 국제 평화 인권 난민지원 센터 좋은 벗들, 환경단체인 에코 붓다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