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 남기기

그리스 신화 속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닌다. 한 면은 과거, 다른 한 면은 미래를 향하면서 '오늘'이란 시간 속에 내포된 어제와 내일의 양면을 잘 표현해준다. 한편, 오늘은 또한 살아있음과 죽어감이란 두 얼굴을 지니는데,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삶과 죽음은 늘 붙어다니는 단짝 친구처럼 그렇게 오늘 안에 공존해 있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반드시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귀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자칭 지식소매상 작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역시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에서 무엇이 바른 삶인가에 천착해 번민과 투쟁으로 일관됐던 젊은 날을 소회하고 성찰하던 유시민 작가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죽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소개한다. 그 중 두 가지 꼭지를 끄집어 내본다면, 우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관해 유작가는 연암 박지원의 죽음을 소개한다. 노환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된 연암은 약을 물리치고 오히려 술상을 차리게 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함께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한다. 보통은 슬픔, 절망, 비통함으로 여기는 죽음일텐데, 오히려 흥겨운 잔치인양 생전에 사랑과 정을 나누고, 시련과 고통을 함께 견디던 이들과 어느때 보다 찬란한 마지막 순간을 간직하며 죽어간 연암 박지원…그의 마지막을 유시민은 매우 높게 평가해준다.

두 번째 유작가의 죽음 관련 통찰은 소위 사람들의 이름 남기기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오랜 가르침을 유작가는 정말 그답게 되짚어 보는데… 그는 말한다. 이름을 남기려는 노력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목표를 향한 성취동기가 될 순 있지만, 혹시나 이름 남기기 그 자체를 인생 목표로 삼을 경우 되려 삶을 뒤틀고 파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예로 민홍규라는 어느 국새제조 사기꾼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 2010년, 자신을 전통방식 국새제조의 달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대한민국 국새 제작 단장이 되었고, 정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국새를 제작한다. 하지만, 엉터리로 제작된 국새와 함께 사기행각은 금세 들통나고 말았는데, 더 황당했던건 국새에 새겨진 대한민국이란 글자 속에 아주 자그맣게 자기 이름을 새겨넣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정부 공식문서에 국새를 찍을 때마다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그의 놀라운 시도는 웃지 못할 희극으로 끝나버렸다는…

그렇다면 이름을 남긴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유작가는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을 불러내 온다. 그에 따르면 선한 사마리아인이야 말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의 본질을 보여준다. 사실 우린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그가 보여준 행동,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던 깊은 연민, 긍휼, 사랑의 마음을 말이다. 사실 북녘땅의 누군가처럼 커다란 바위에 이름을 새긴들 그의 삶이 훌륭하다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임을 기억하자. 훌륭하게 살면 이름이 남는 것임을. 그리고, 길이 남을 이름을 남기지 못하면 또 어떠랴. 우리 삶의 행복은 남겨야 할 내 이름 석자가 아닌 오늘의 삶 속에 나눠질 풍성한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것임을…

사족: 이 글을 쓸 무렵 작가 유시민은 그의 어머니 서동필 님을 떠나 보냈다. 그가 말한대로 정말 담담히,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이재근
iChurch of Silicon Valley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