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신앙

어릴 적 읽은 동화책 속에, 할머니가 해가 너웃너웃 넘어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넘어갈 때마다, 무서운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으며 떡 하나 주면 무사히 보내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도 높은 산을 넘어 가야 할 때가 있고 그 앞에는 알지 못하는 두려운 호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서있어, 그곳을 지나가기 위해 나도 광주리 속 못난 떡 하나 쥐여주며 지나간다. 내가 가진 떡은 신앙이다. 살아가다 불현듯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지날 적마다, 숨 한번 크게 쉬며 부족한 신앙에 매달린다.

갑작스러운 극심한 배의 통증으로 미련하게 버티며 고생하다 결국 응급실을 찾았고, 급히 수술을 하고 깨어나니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좀 심하게 늦은 맹장 수술을 한 것이다. 독한 진통제에 홀려있었지만 그나마 식구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혼자 남은 병실의 밤은 오롯한 아픔이었다. 온 밤을 아파하며 어스러미 새벽이 밝아오는 걸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이, 또 다른 인생의 산을 무사히 넘어가고 있구나 안심하며, 두려웠다. 얼마나 더 많은, 삶의 산과 언덕과 골짜기를 넘어가야 하는지,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내 신앙 - 떡이 담긴 광주리는 이젠 낡아 부서지고, 그 속의 떡은 볼품없이 못나고 맛없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부끄럽고 민망하다. 비록 그런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 힘들고 어렵고 무거워도 - 꼭 붙잡고 지탱하며 넘어질 듯 불안하지만, 용케 긴 길을 걸어가야 한다. 며칠 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울음 터트리며 감사하면서, 어쩌면 이 못나고 보잘 것 없는 신앙일지라도, 끝까지 간직할 거라 뜨거운 약속 드린다.

살아지며 살아가는 오늘도, 크게 기대고 원하고 투정부려도 되는 알파요 오메가이신 분에 향한 믿음 - 신앙으로, 남겨져 있는 인생의 산과 언덕과 골짜기를 헤매며, 선선히 지나갈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