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김, 미 연방 하원 의원, 36세 차세대 유망주

앤디 김 Andrew Kim
미 연방 하원 의원, 36세 차세대 유망주
미 역사상 2번째/20년만에 당선된 한국인 연방 하원의원
로즈 장학생, 트루먼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학위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앤디 김 미 연방 하원의원을 팔로알토 한 가정집에서 만났다. 처음 만난 그의 모습에 젊음과 열정, 솔직 담백하며, 사람들과 친근한 대화를 이끄는 능력이 느껴졌다. 김 의원은 미국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1982년생이다, 2018년 뉴저지주에서 공화당 현직 하원의원인 톰 맥아더 후보를 마지막으로 아슬아슬하게 역전해 1.1%표차이로 제치고 미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9년 김 창준(Jay Kim, 공화당,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이후 한인으로는 역사상 2번째로 미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전미 한인사회에 큰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다.

김 의원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동 전문 국가 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친 오바마' 인사다. 한국에서 뉴저지로 이민온 부모 사이에 태어난 이민 2세다. 어릴때 소아마비를 겪고, 고아원에서 살았고, 미국에 이민와 학업을 계속해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훌륭한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누릴 보편적 권리를 지지해 왔다. 시카고대 졸업했으며, 로즈 와 트루먼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 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다. 20년 만에 미 역사상 2번째로 탄생한 한인 하원의 원인 앤디 김의원에게 미주의 모든 한인들이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더욱 많은 한인 인재들이 미 주류 정치사회에 폭넓게 활동하고 다방면에 큰 기여하길 기원한다.

2018년 선거 당시 역전 상황

한국 이민자부모를 둔 앤디 김의원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교외에 위치한 뉴저지주 말튼에서 자랐다. 델라웨어강부터 대서양 해변까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인 뉴저지의 제3 선거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중도파로 선거운동을 벌였으며 트럼프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았다.

백인이 85프로정도로 절대 대다수인 이 지역에서 그는 그 지역이 자신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뜨내기 후보로 표현하는 광고를 내보내는 현직 하원의원이었던 강력한 경쟁자를 상대해야 했다. 상대측은 얼음 위에 놓인 생선 사진에 그의 이름을 '찹수이' 폰트(중국계 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글씨체)로 써서 얹은 메일을 지역 주민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경쟁후보는 보험회사 이사 출신인 백만장자 톰 맥아더의원이었는데 뉴저지 북부에서 이주했고, 2014년에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스 선수 출신인 존 러년이 포기한 하원 의석을 차지했던 현직 의원이었다.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인 맥아더의원은 2017년에 상원에서 아슬아슬하게 좌절된 오바마케어 폐지를 위한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움직임에 앞장섰다. 또한 그는 뉴저지 공화당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트럼프의 감세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뉴저지의 높은 부동산세가 주택 소유자들에게 타격을 주기 때문이었다.

투표 마감 후 개표시 부재자 및 임시투표 7000여표에 대한 개표가 지연되면서 선거 당일에 당선자가 바로 결정되지 않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부재자 개표가 계속되던 가운데 상대 후보를 앞서기 시작하자 그는 곧바로 승리를 선언했다. 상대후보는 은퇴자 커뮤니티들이 있는 공화당 성향 오션 카운티에서 주로 표를 얻으며 3만 100표 가량을 먼저 앞서가기 시작했다. 김 의원은 필라델피아 교외 중 가장 민주당 성향이 강한 벌링턴 카운티에서 3만 3600표를 더 얻었다. 선거당일인 2018년 11월 6일 개표에서 맥아더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가, 선거 후 일주일이 넘은11월 14일 오후에 이르러서야 선거 결과가 확정되는 접전이 었다. 앤디 김의원의 최종 득표율은 49.9%, 경쟁자였던 톰 맥아더 현직 의원 후보는 48.8%였고, 김 의원이 1.1%포인트 차 로 불굴의 역전 승리를 이끌어냈다.

특히, 그가 출마한 선거구는 유권자 65만 명 중 백인이 85%, 한인은 300여 명에 불과한 곳이어서 그의 승리는 더욱 놀라운 감격을 안겨줬다.

김 의원은 어린이부터 노인들에 이르는 다양한 수백명의 많은 발룬티어 선거 운동원들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비옷들을 입고 가가호호 지역구를 방문하는 열정적인 모습에 감탄했고 더욱 도전받아 끝까지 바르게 선전할 수 있었다고 도와주신 모든분들께 깊은 감사함을 전했다.

앤디 김 의원의 주요 경력 사항

김의원은 명문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트루먼 장학생' 으로 발탁되었고 또한, 영국의 특별장학생인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 돼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고, 2009년 9월부터 미 국무부에서 이라크 전문가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2011년에는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전략참모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프간에서 주둔해 근무했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부터 2015년 초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중동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이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의 전략 참모로도 일했다.

특히 2013년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전문가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IS에 대한 폭격과 인도주의 지원을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하며 미 국방 최전선에서 전략 전문가로 폭넓고 큰 활동을 했다.

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2018년 8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앤디 김의 선거 캠프를 직접 방문해 공식 지지를 선언할 만큼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앤디 김 의원의 가정환경

앤디 김의원은 1982년 뉴저지주 남부의 말튼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김정한(69)씨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불우 소년으로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장애를 딛고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유전공학 박사가 된 모범적이며 불굴의 정신력을 지닌 훌륭한 한국인이다. 김의원의 어머니 역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미국에 건너온 후 학업을 지속해 뉴저지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일구고 생업을 지속하면서도 가정에 최선을 다해 정성껏 자녀들을 훌륭히 키웠다.

이렇듯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앤디 김은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힘입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며 학업과 경력모두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미국의 우수한 외교·안보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는 현재 아내와 어린 두 아들과 뉴저지주에 거주 하고 있다. 2018년 한해동안 치열한 선거로 가정에 소홀할수 밖에 없었던 김 의원은 선거 승리후 한달 여 동안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모처럼만에 행복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인 최초 미 연방 하원을 지낸, 김창준 (Jay Kim) 의원 이야기

미국으로 이민온 한국인들에게 있어 미 연방의원이 된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완벽한 실현을 의미한다. 그 꿈을 처음 실현한 사람이 김창준의원이다. 김창준의원은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도 아니고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이민온 교포 1.5세대도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온 후 단돈 5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접시를 닦으며 남가주대를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했던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1990년에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바 시에서 시의원과 시장을 역임하고, 1992년에 캘리포니아주 제41지구에 출마해 꿈에 그리던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999년까지 3선을 기록했다. 김창준 의원의 역사적 성공담은 수많은 한인 청년들과 미주 한인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이번 앤디 김의원의 당선으로 김창준의원 이후 20년 만에 한인들은 감격스럽게 한인 연방의원의 탄생을 지켜볼수 있었다.

앤디 김 의원의 성공에 더욱 희망 넘치는 한국과 미주 한인 사회

미국사회 곳곳에 한인들이 살고 있으며, 정계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 2018년 10여 명의 한인들이 연방하원에 도전했는데, 이들 중 본선까지 올라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가 뉴저지 민주당 후보 앤디 김의원과 캘리포니아 공화당 후보였던 여성 후보 영 김이었다. 영 김은 현장 선거에서 완전히 우세했으나, 우편투표에서 추월당해 결국 3,500표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하원 입성에 실패했고 유일하게 앤디 김 의원만 연방 하원에 입성하게 되었다. 김 의원의 지역구가 뉴저지 주 이지만, 그는 연방의원으로 미 전체의 국방관련 커미티로 활약하며, 국방 정책, 안보, 기술분야 뿐 아니라, 개인 사업자들의 사업 향상을 위한 스몰 비지니스 커미티활동도 활발히 참여하며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에게 한인들의 젊은 차세대 주자 학생들을 위해 줄수 있는 조언이 있는지 묻자,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나은 미래의 희망을 품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독특한 점을 잘 인식하고, 장점을 가능한 발전시켜서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도전하고 개척해 나갈것을 독려했다.

한인이 전세계 최강국이자 아직도 무궁한 기회의 나라인 미국의 시민으로 연방 의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앤디 김의원은 당선 직후 밝힌 소감에서 "나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조국 미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동시에 한국계 이민자의 아들로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 한국 국민들과 미주 한인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김 의원의 대 활약을 성원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과 모국인 한국을 잇는 훌륭한 가교역할을 하며 양국의 지속적인 우호 관계향상과 경제 협력으로 양국의 정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 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