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역사

1933년 1월 5일 샌프란시스코에 골든 게이트 브리지 공사가 시작되다.

골든게이트 브릿지는 1928년에 설립되어 설계, 공사, 재정에 관한 업무로 시작되었다. 다리의 설계는 조지프 스트라우스가 맡았고, 채색은 건축가 어빙머로우가 맡았고, 이 밖에도 안전을 위한 모든 것들은 유명 공학자들이 담당했다. 건설 사업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와 매린카운티 외에 나파, 소노마, 맨도시노, 델 노르테 카운티가 포함되었고, 각 카운티의 대표가 이사회를 구성하여,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총 3천9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통행 요금을 통해 1971년 채권을 모두 회수하였다. 골든게이트 브릿지는 1937년 4월 완공, 5월에 보행자에게 개방하는 행사를 가졌고, 5월28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전신으로 개통 신호를 보냄으로써 차량 통행을 시작했다. 골든 게이트 브릿지는 빨간색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짙은 오렌지색이다. 골든 게이트 브릿지 해역이 바다로 통하는 샌프란시스코 만의 입구이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 점을 고려해 안전을 위해 눈에 잘 띄는 색인 인터내셔널 오렌지로 했다. 시속 100km를 넘는 바람과 안개, 빠른 물살로 인해 당시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했던 다리가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로 꼽히며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되었다.

1930년 1월 24일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암살되다.

청산리 독립전쟁의 영웅, 대한 독립군의 총 사령관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암살되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은 좌, 우가 아닌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는 민족주의에 입각해 일생을 바쳤다. 17세에 만석 지기의 가산을 노비들에게 나눠주며 해방을 시켰고, 99 칸에 이르는 집에 학교를 세우고, 북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했다. 독립운동으로 일본군과 싸우면서도 주둔하는 곳마다 독립군의 후손들을 위해 20여개의 학교를 세우기도 했으며, 그 중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에 있는 조선족 실험소 학교는 지금도 그 역사를 유지하는 우수한 학교다.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독립전쟁에서 모든 상황이 열악하고 구식 무기 밖에 갖추지 못한 독립군 1500명에게 불굴의 투지를 일깨워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 2개사단 5 만명을 상대로 전쟁을 치뤘으며 3300명의 사상자를 낸 세계 전사 상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승을 거둔 탁월한 명장이며 전략가였다. 이후에도 항일무장투쟁으로 일관하며,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직접 군사교육도 하고 독립군들과 농사도 지으며 강력한 독립군의 양성으로 국내에 진공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일에 몰두했다. 국가와 민족이 부강해야 어느 위기에서도 당당하게 대처하고 굴욕적인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달려온 업적들이다. 하지만 북만주 중동선 산시역 부근의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이 쏜 흉탄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김좌진 장군의 장례식은 전례없이 성대한 사회장으로 거행되었으며 동포뿐 아니라 중국인들까지도 장군의 죽음을 애도했다.

1863년 1월10일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 런던 지하철의 개통은 이후 전세계 철도망의 근간이 되었다. 런던 지하철은 역이 270개이며, 선로의 길이는 약 250마일,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이다. 역 당 수송하는 승객도 가장 많아, 2007년에는 10억명이 넘는 탑승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철도 건설은 18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850 년경에 이르러 여섯개의 독립된 철도 종점역이 런던 중심가 바로 밖에 설치 되었다. 당시 기차를 타고 온 승객들이도로 중심가로 가는 것 때문에 런던의 교통체증이 증가하면서 1830 년대에 처음 계획되었던 지하철 도망이 1850년에 들어서 서야 교통 체증의 문제 해결책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갖게 되었다. 초기 런던 지하철의 열차는 증기 기관차로 지상에 효율적인 환기장치 설치를 위해 도로 위에 많은 통풍구를 만들어야 했다. 통풍구 설계는 도로의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집의 앞모습을 닮은 모습으로 하였고, 증기기관차는 훗날 전기동차 차량으로 대치되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키고 있는 런던 지하철은 오래된 만큼 비좁고 불편함이 있지만 그 반면에 따뜻한 느낌의 로망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길거리 악사들의 연주가 들려오고, 현재 공공 아트월 에서 설치된 유니크하고 아트적인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오며, 색색의 모자이크 타일로 이루어진 공간은 이용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거움을 주고 있어 세계의 낭만 지하철이라 불리고 있다

1915년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전화 첫 개통

1915년 1월25일 미국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 간 4,700km를 잇는 대륙횡단 전화가 처음 개통되어 통화가 이뤄졌다. 1914년 6월14일 동서를 이어줄 대륙 횡단 전화선의 마지막 전봇대가 네바다 주와 유타 주 경계선에 설치되었다. 이는 북아메리카대륙 철도 건설과 맞물려 이어졌다. 첫 통화자는 전화를 처음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그의 조수 토마스 왓슨으로 둘은 감회에 젖어 23분간을 통화했다. 대륙횡단 전화선이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증폭기를 사용하여 전화 음질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1927년 1월7일에는 뉴욕과 런던을 잇는 상업무선 전화가 개통됨으로써 바야흐로 세계가 하나되는 신시대가 열렸다.

1984년 1월 24일 '매킨토시(Macintosh)' 출시

On January 24th. Apple Computer will introduce Machintosh.
And you'll see why 1984 Won't be like "1984"
1984년 1월 24일 애플사의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가 출시되었다. 원래 명칭은 애플 매킨토시(Apple Macintosh)였으나 후속작으로 메모리 용량을 확장한 매킨토시 512K 가 출시되면서 기존의 매킨토시는 매킨토시 128K 라고 불렸다. 당시 개인용 컴퓨터는 검은 바탕에 명령 줄 인터페이스였는데, 애플은 그 대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채용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였다. 매킨토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용 방법이 간단하고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어서 보급하고 싶었던 애플의 직원 제프 라스킨의 아이디어와 구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제프 라스킨이 잡스와 견해 차이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떠나며 매킨토시의 디자인은 스티브 잡스의 요구대로 완성되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