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범죄와 질병 사이에서

# 1978년,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었던 댄 화이트는 동료의원인 하비 밀크와 조지 모스콘 시장을 시청안에서 살해했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본인이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식품을 과다 섭취해서 그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본인이 '호스테스 트윙키' 를 많이 먹은 탓에 정신 능력의 감퇴를 가져왔다는 살인자의 진술에, 관대한 배심원들은 1급살인이 아닌 충동살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인물로도 유명한 하비 밀크의 죽음으로 당시 미 전국의 동성애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기도 했다.

# 2018년 10월, 본국 서울의 한 PC방에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32차례나 찔러 살해한 끔직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20세의 성실한 청년이 대낮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과 경찰의 안이한 대응에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더구나 범인이 우울증약을 복용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심신미약으로 인한 형량이 감형되는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백만명을 넘어섰다. 형법 10조에는 심신장애로 인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는 조항이 있다. 본래 무기징역이 합당했지만 심신미약으로 12년 형을 받은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에 대한 국민의 비판정서가 이번 사건으로 표출된 것이다.

오늘날 몇몇 국가에서는 가장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단순히 정신적, 감정적 무질서와 혼란에 책임을 돌리면 되는 것이다. 또한 범행을 저지른 술꾼과 마약 중독자들은 '약물의존'이라는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면 된다. 한국 등 일부국가 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지르면 '정상참작'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줄여주기도 한다.
술에 취하여 아무 기억도 안 난다고 진술을 하면 이를 법정이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해준 판례가 많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모든 잘못을 질병으로 설명하고 있다. 온갖 부도덕하고 악한 행동을 이런저런 심리적 증후군으로 정의를 내린다. 이런 사회적 현상때문인지 정신과 치료를 포함한 상담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조금만 불안해 하거나 신경질을 부려도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보라고 권한다. 전문치료사들은 하나같이 강조한다. '당신은 죄가 없으니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라'고...

요즘은 교회에서도 '죄' 나 '회개'에 관련된 설교는 듣기 힘들다. 교인들이 그런 설교를 듣기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재미있는 설교자가 인기있는 이유다.
사회정의(社會正義)라는 것은 단순하다. 죄(罪)는 죄고,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면 된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