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쓰임 받는 행복

어느 집에 송아지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은 아침만 되면 송아지와 당나귀를 들판에 끌고 나가 일을 시켰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아지가 꾀가 났습니다. 그래서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송아지를 우리에 넣고는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해 주었습니다. 송아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송아지는 다리를 저는 척을 합니다. 역시 주인은 송아지를 들판에 끌고 가지 않고 편히 먹고 쉬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아지는 주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 당나귀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주인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안 하더냐?" 그러자 당나귀가 말합니다.
"아니 뭐 별로 없었어! 그런데 오늘 도살장 주인과 말하는 걸 얼핏 들으니까, "'며칠만 더 잘 먹이면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서 잡아먹기 좋을 거다!' 그러는 것 같더라!"

여러분 당연한 결과 아닙니까? 일을 하지 않는 송아지가 잡아 먹히는것 밖에 다른 무슨 길이 있겠습니까? 이 우화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하면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러 써주시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은 혼자서도 충분히 일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누구의 도움이 더 필요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쓰시려면 더 번잡스럽구요. 더 복잡하고 불편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므로 당신의 위대함과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하나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장이기적일 때가 사실은 가장 이타적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하게 영광받으시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우리를 향한 가장 이타적인 사랑의 모습이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에게 당신의 능력과 권능을 나타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그렇게 할때 사람 또한 가장 큰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땅가운데 펼치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쓰임 받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최승환 담임목사
뉴네이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