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최의 행복한 쉼터 - BUDDY에게 띄우는 편지

나는 이 친구를 열렬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의 사정거리에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 가까이 마주하고 있으면 함께 있는 것에 무덤덤하고 간혹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달이 날만큼 무지하게 보고 싶어지는 그런 친구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 생긴 것도 아니요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딱히 예뻐할 구석도 없는데 18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난 요즘 이 친구에게 약간의 권태감을 느끼고 있다
도대체 감정이란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한 집에 살면서 뭔가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줘야 하는데 이 친구는 나를 완전 무시한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밥을 차려 줘도 고마워하지 않으며 사랑한다고 쓰담 해줘도 미동도 없이 눈만 내리깔고 있다.
슬프다 못해 화가 나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얼마 전 한달 간 여행을 다녀 올 일이 있었다. 그래서 부득불 그를 돌봐주는 기관에 맡겨야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라 걱정이 되어 평소 내가 입고 있던 셔츠 한 장을 함께 싸서 보냈다.
여행 후 돌아와 보니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응급 치료를 받아야 만 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거식증까지 겹쳐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혹시 모를 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까 싶어 넣어 두었던 셔츠 한 장은 아예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 했으랴. 곁에 있어도 더욱 그립기만 했던 우리의 옛날을 돌아보며 시월의 마지막 밤에 네게 편지를 띄워본다.

친구야 너도 그 날을 기억하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5월5일이었어. 윤기 나는 까만 털에 콧잔등과 눈 가는 흰색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모유를 충분히 먹고 자랐다는 너는 아기 곰처럼 뒤뚱거렸지. 네 아빠는 유능한 사냥꾼이었고 네 엄마는 양치는 일을 멋지게 해냈다고 들었는데 넌 어쩐지 어리 버리 해보였어. 그래서 지어준 이름이 버리란다.

유년시절에도 너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쳐서 늘 말썽을 피우며 쏘다니길 좋아했지. 세 번씩이나 담장 밑 땅을 파고 가출을 해서 애를 먹였지. 고민하던 나는 할 수없이 네게 중성화 수술을 해 줄 수 밖에 없었어. 그 일이 지금까지도 너무 미안하기만 해. 네가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너의 주인으로 군림한 나는 너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기뻐했어. 너의 기분과 상관없이 최대한 나를 즐겁게 해주길 바랬지. 그것도 사실은 많이 미안해.
버리야 이젠 내가 너의 기쁨이 될 거야. 나의 남은 사랑을 다 네게 줄께 . 권태감이란 힘이 빠져 아무런 감정표현을 못하는 있는 너에 대한 나의 투정이었어. 지금은 너의 눈이 흐리고 이도 다 빠졌으며 다리도 절고 뼈마디가 온통 쑤시지? 지금 이 대로의 네 모습을 나는 여전히 아끼고 사랑한단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버리 엄마' 로부터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