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와 주의 종을 향한 변명…

대표적 뉴스 앵커인 손석희는 방송 중 늘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왜 “감사합니다”는 사용하지 않는가라는 괜한 트집을 마주 대하곤 한다. 하지만, 어법상 두 말은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감사(感謝)라는 한자어 사용이 고맙다라는 순수 우리말보다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는 구시대, 심지어 봉건주의의 잔재라 지적한다. 대통령 호칭으로 당연시됐던 ‘각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잘못된 언어사용의 한 예라 하겠는데…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러한 언어적 오용은 발견하기 쉬운 편이다. 예를 들어 믿는이들이 애용하는 “하나님 우리를 축복하소서”라는 말은 사실 잘못된 말이다. ‘복을 빌다’는 뜻의 ‘축복’(祝福)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사용할 말이 아니라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할 말이다.
하나님은 우릴 위해 또다른 누군가에게 복을 비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복의 주체로 복을 내리는 분, 즉 ‘축복’(祝福)이 아니라 ‘강복’(降福) 하시는 분이시다. 도대체 하나님이 또 누구에게 우릴 위해 복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말인지…하지만, 목회전문가 집단인 목사들 역시 축복이란 단어를 오용, 심지어 남용하는 현실에 종종 놀라곤 하는데 …
‘축복’의 오용과 함께, 교회 공동체가 다시 생각할 단어가 있다면, ‘목자’ 와 ‘주의 종’ 혹은 ‘성직자’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의 이해 속에는 목사는 교우들의 목자이고, 교우들은 목사의 양떼라는 메타포가 여전하다. 때론 상징을 넘어 현실보다 무서운 왜곡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말들… 양떼는 결국 목자의 말을 듣고 따르며 오직 순종해야 한다는…주의 종의 말을 듣지 않으면 뭔가 두려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소위 성직자 집단과 일반 교우 간의 이분법적 사고는 결코 개신교 적이지 않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있어 캐톨릭에 대한 95개 반박문보다 더 큰 영향력으로 독일 사람들을 일깨웠던 것은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이란 소논문이었는데, 1520년 출판 당시 초판 4천부가 몇일만에 완판된 이 글에서 루터는 교회 안의 모든 직무는 계급이 아닌 “기능적 분화” (functional differentiation)임을 일갈했다. 성경해석과 목회자 임명권 등이 오직 교황과 사제들의 권한으로 성직자의 계급화를 유지했던 캐톨릭은 바로 이런 루터의 평등사상을 심지어 마귀라 칭하기도 했었는데…21 세기 개신교(개혁교회)안에서 혹여 목사만을 목자와 주의 종, 성직으로 부름받은 특정 집단으로 여기는 통념이 여전하다는 것은 5백년전 목숨 걸어 개혁했던 믿음의 선조들을 민망하게 하는 것은 아닐런지…
사랑하는 나의 교우들에게 늘 힘주어 말한다. 목사는 목자가 아니며, 여러분은 나의 양떼가 아니라고… 우리의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목자적 리더십은 목사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며, 3-40년 신앙생활 했어도 고작 미련하고 연약한 양떼에 자신을 머물게 하는 것은 오히려 복음에 반하는 일이라고…나아가, 개신교 전통에서 성직이란, 목회로 부름받은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부르심이라고…목회가 성직이라면, 자녀와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성실히 일하는 이들의 삶의 자리 역시 성직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이재근 목사 약력

- 새물결 교회 (구 아이교회) 담임목사
- 장로회 신학대학교 (M.div., Th.M.), Boston University (Ph.D. ABD, 전도와 문화 전공)
- KBS 1 Radio 보스톤 통신원 (2008-2015): 주간 리포트 & KBS TV 다큐 현지진행
Email: jgbrandon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