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여름은 떠났고

여름은 떠났고

올여름의 낮은 유난스레 뜨거웠고 또 해가 진 후의 밤은 묘한 차가움에 오돌오돌 추웠었다. 그 변덕 부리던 계절이, 천천히 보이지 않게 떠나며 시간의 다리를 건넜다.

어젯밤, 누군가가 하늘의 보름달을 꼭 대문을 열고서 보라고 했다. 새삼 문밖으로 나와 본 달은 환하게 더 가까이에 떠 있었으며, 그 달빛 탓인지 대나무들은 그림자와 더하여 훌쩍 더 길어진 모습으로, 얕은 바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해도 나무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어느새 잠결에 따라 나와 유난히 비벼대며 사랑을 원하는 고양이도 벌써 다 자라 버렸고, 나도 그사이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주제가 아닐 진데도, 어리석게 그냥 모른 척 해버리면 변하지 않은 체 있어 줄줄 알았었나 보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건 썩는 것이라는데 그래도 달라져 떠난다는 건 아프다.

거울 속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도, 곁에 마냥 있을 것 같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무서움도, 되돌리지 못하는 많은 해야 하는 일들도. 그런 무심함에 억지로 갇혀있는 나에게, 어릴 때 고향으로 성묘 가던 이야기와 보름달을 보라든 작은 글귀 하나가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적셔왔다. 어쩌면 이제는 그 무심함의 게으름도 충분하고 미적거리는 겸손도 그만하고서, 마음 창고 건너편 속에 자물쇠 걸어뒀든 또 다른 욕심과 용기를 꺼내야만 할 거 같다.

그렇지, 또 다른 여름은 다시 올 것이며, 늘어져 있는 허리춤 추겨 올리면서, 산다는 것의 남아있는 몫의 판, 신명 나게 즐기며 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