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역사

1988년 9월 서울에서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개막하다.

서울 올림픽은 9월17일부터 10월2일까지 16일동안 열렸으며 IOC 회원국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었다. 당시 개최 후보국은 한국과 일본이었고 투표결과 52대27로 우리나라 서울이 개최국이 되었다. 88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12개 동메달 10개 은메달 11개 총 33개의 메달을 따며 종합 4위의 성적을 올렸다.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처음으로 시범 종목이 되었고, 그동안 대한민국과 교류가 없던 공산 국가와의 관계가 이 대회로 인해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은 경제 발전은 일본보다 높이 평가되었다. 투자뿐 아니라 수출 또한 올랐으며 유럽 내 한국의 가전 제품이 80% 이상 현지 생산을 하게 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에게 가난에 찌들고 위험한 나라라는 오해를 받고 있던 한국은 올림픽을 통해 동유럽 국가들에게 한국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동유럽 국가들과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발전했다.

1920년 9월 유관순 열사의 사망

유관순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이다. 천안에서 3.1 운동으로 시작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1920 년 9월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류관순은 1916 년 미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하고 1919년 고등부에 진학했다.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었던 유관순은 만세시위에 참가하였고 3월5일 서울에서 열린 만세시위에도 참가하였다.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서울에서의 독립 시위 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천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고 각 종교들을 규합하여 음력3월1일 아우내 장날을 기해 맹렬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4월1일 수천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시위가 시작되자 유관순은 시위대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고 만세 시위 주동자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서대문 형무소 복역중 협력자와 시위 가담자를 발설하지 않아 모진 고문을 받았고 옥중에서도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그때마다 모진 구타를 당해 형기를 3개월 남기고 옥사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충청남도와 천안군의 협력으로 병천면에 유관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건립되었고 1946년부터는 이화여고 교장과 이화학당 출신 인사들에 의해 기념 사업회가 조직되었다.

2003년9월 '태풍 매미' 한반도 강타

2003년 9월6일 괌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열대저기압이 14호 태풍 매미가 되었다. 열대 저기압에서 느리게 발달했기 때문에 기상청에서도 태풍으로 인정하는데 시간이걸렸고, 그 사이 태풍 매미는 중심기압 910hPa 최대풍속 55m/s에 달하는 최강 급의 태풍으로 성장했다. 1분 평균 최대 풍속이 75m/s 의 태풍은 진로를 서서히 북쪽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9월11일 새벽 일본 오키나 현 미야코 섬을 통과해 동중국해로 들어선 후 방향을 전환해 한반도를 향해 북상, 제주 여수 통영 대구를 거쳐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태풍 매미로 인해 한반도는 해일 폭우 강풍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국적으로 145만 가구가 정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고층 건물에서는 유리창이 바람에 의해 파손되고 도심은 간판과 뽑힌 가로수 깨진 유리창이 굴러다녀 전쟁터와 같은 모습이 되기도 했다. 특히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는 2002년 태풍 루사때의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태풍 매미에 의한 폭우가 쏟아져 심각한 피해가 되었다. 태풍 매미의 피해 사항은 사망 및 실종이 132명 이재민만 6만1천여명이었고 재산피해가 4조 7천억여원으로 집계되었다.


1977년 9월 한국인 최초 고상돈 대원 에베레스트 정복

고상돈은 제주도에서 태어난 산악인이다. 청주대학교 시절 산악반에서 전문적 등반 훈련을 받았다. 1970년부터 대한 산악 연맹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고1974년부터 1977년까지 에베레스트 산 원정대 훈련에 참가했다. 당시 에베레스트 산 원정대 훈련대는 1971년 네팔 정부에 입산 허가서를 제출한지 6년만인 1977년에 허가를 받았고 9월15일 낮 12 시50분 에베레스트 산을 한국인 최초로 등정하였다.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상의 눈을 파헤친 뒤 성경 한권과 사진 석장을 묻음으로써 먼저 간 동료들을 추모했다.고상돈은 1979년 알래스카산맥의 데날리산 원정대에 참가하여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 1,000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에 그의 묘소가 있으며 그가 죽은 후 고상돈 대원 기념 사업회가 조직되어 해마다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1955년 9월 미국의 배우 제임스 딘 사망

제임스 바이런 딘은 미국의 배우이다. 제임스딘은 '에덴의 동쪽' '이유없는 반항' '자이언트' 이렇게 3개의 작품을 했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보조 출연을 했다.1956년 13회 골든 그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겨우 세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했지만 195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계의 보석과 같은 인물이었다. 어린시절 일찍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고스란히 겪으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고 단역 시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무명생활을 이겨냈다. 영화 에덴의 동쪽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그는 스타덤에 올라섰고 많은 청춘들이 제임스딘에 열광했다. 제임스 딘에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그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물체를 겨우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1955년 9월 30일 그는 자신의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고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제임스딘의 나이는 24세였다. 20대 청춘의 고독과 방황을 연기하며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던 그는 고향 인디애나 주 페어마운트에 잠들었고 그의 죽음은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