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Healing Home

단풍구경을 갔습니다.
평소 출퇴근 길에 갓길 너머로 눈 여겨 봐두었던 오솔길입니다. 산길 입구에서부터 빛깔 고운 단풍이 수북하게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 합니다. 발 밑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묵상하는 일이 즐거워 밟았던 낙엽 길을 뒤돌아 다시 걸어봅니다. 오랜만에 하늘도 올려다 보았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구름이 명랑합니다. 두 팔을 벌리고 심장 깊숙이 가을을 들이 마십니다. 눈을 감고 하늘을 크게 호흡합니다. 아!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옵니다. 그러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생각나게 하는 그 일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꼭 이맘때였습니다. 오늘처럼 가을햇살이 눈부시던 날이었습니다. 인생이 영화처럼 예고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인생의 맛을 가르치기 위해 신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도 알 수 없게 만드셨나봐요. 그러니까 그 날은 잘 나가고 있던 나의 인생이 뒤죽박죽 되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직장에서 하루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즐거움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프리 웨이에 진입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자동차 뒷 부분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자동차는 급속히 방향을 잃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자동차가 받치는 순간 3차선에서 1차선의 방어벽 쪽으로 튕겨져 나간 것만을 느꼈을 뿐 이후 내가 눈을 뜬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어디가 어떻게 다친 줄 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비워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막말로 깡그리 털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장만했던 그림 같은 예쁜 집은 가차없이 은행으로 넘겨졌고 안전을 자랑하던 동네에선 의리도 없이 내 등을 밀어내 총성이 빈번한 다민족 빈민가 촌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물론 직장도 잃었고 그 많던 친구도 제 발로 떨어져 나가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내가 살게 된 곳은 차고를 개조한 부엌도 없는 창고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이방인의 땅에서 그나마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라도 확보했다는 능력에 최면을 걸어 감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얘기하는 대로 끌려가 죽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번 추락한 인생은 계속적으로 가속이 붙는가 봅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으시시한 가을 밤이었습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둔탁한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빗물이 내 몸 위로 덮쳤습니다. 이럴 수가!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썩은 합판 지붕이 반쯤 무너져 내린 거예요. 위태로운 지붕 밑으로는 구멍이 뚫려 빗물이 줄줄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황급한 와중에 나는 참으로 기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천정에서 떨어지고 있는 세찬 빗줄기가 낙찰하면서 창출해 내고 있는 절묘한 화음에 온 마음이 쏠려 버린 겁니다.

힘있게 아래로 내려 꽂히고 있는 빗물의 양과 폭, 밑에서 물을 받치고 있는 양재기와 나무로 된 그릇과 플라스틱으로 떨어지고 있는 마찰음은 기기묘묘한 하모니를 이뤄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연주를 어떻게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뽑혀 특혜를 누리는지 신기했습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어 비가 갰습니다. 뚫려 있는 지붕 사이로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습니다. 아하! 바로 그거였습니다. 인생에 있어 앞 문이 닫히고 뒤 문도 닫히고 옆 문마저 모두 닫혀버리면 이처럼 하늘문이 열린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던 겁니다. 어떻게든 더 좀 잘 살아 보겠다고 죽기 살기로 달려온 인생도 결국 비움과 채움의 반복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삶에 구멍이 날 때도 있음을 생각하는 동안 뜬 구름 없이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떠올랐습니다. 바둥거리고 살아온 내 인생은 경기에 진 토끼였습니다. 툭 하고 건들면 안개처럼 사라질 세상의 안목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달려왔던 거예요. 거북이처럼 융통성 없이 언덕 위의 결승지점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인생이란 내게 있어 지루하고 재미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한방에 빵하고 터지는 대박을 흠모하며 사람들과 견주어 그들이 쳐 주는 칭찬과 박수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삶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환경이 유혹하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에는 아무리 귀를 열어도 듣지 못했던 주위의 아픔과 신음소리에 마음이 녹아 내리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달팽이 같은 저희 집을 완전 오픈 하게 되었습니다. 이달 24일이면 이곳으로 이사한 지 2년이 됩니다. 두 해 동안 저희 집을 다녀간 분들은 지금까지 일흔세 명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사십 년을 닭살부부처럼 살다가 황혼기에 접어 들어 별거 상태에 들어간 노부부를 초대했습니다. 밥 한끼를 대접하는 일은 정성과 사랑을 먹이는 일이기에 나는 밥상을 아주 잘 차립니다. 초대받은 모든 분들이 꿀맛 같은 밥을 맛있게 먹고 구겨져 있는 꿈과 사랑이 회복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언제나 식탁 옆에 있는 빨간 메일 박스 속에서 깜짝 선물이 '까 꿍'하고 튀어 나오는 이벤트가 있는데 오늘 선물은 무엇인지 비밀입니다.

어느 사이 몇 주 후면 2014년 올 한 해도 영원히 문 닫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막이 내리기 전 나는 참말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나의 식탁에 올라 올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한 겁니다. 내게 불이익을 끼친 원수 같은 이웃에게 Healing Home 을 선물하지 못한 것을 이제서야 겨우 미안해 합니다. 경기에 진 토끼의 다음 얘기나 더 할까요? 화가 잔뜩 난 토끼는 억울하고 분해서 집에 콕 박혀 칩거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웃에 살고 있는 달팽이가 토끼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 보게 친구, 문 좀 열어 보게나" 열 받아 있는 토끼는 문을 열자마자 냅다 달팽이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누군가가 토끼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토끼가 문을 여는 동시에 3년이라는 시간을 걸어온 달팽이가 크게 소리쳤습니다 "너 왜 그 때 날 발로 찬 거냐구 "아! 그렇습니다. 나는 오늘 밤 황혼이 지기 전에 내게 상처를 준 이웃에게 속히 말해야겠습니다. '친구야, 내가 미안했어. 그 때 일 우리 용서하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