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끝맺음

책을 읽다 어느새 끝의 얇은 부피로 남아 있으면,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는 것이 왠지 서운해 적당한 자리에서 멈춘다. 어쩔 수 없이 며칠 남지 않은 북클럽 날이 다가오면 멀찍이 두었던 책 페이지를 다시 열어 되돌아 가 읽지만, 억지로라도 끝으로 멀리하려 뒷걸음질 친다. 그러고 보니 몇 개의 유명한 드라마도 세상사는 감동의 이야기라는 시사프로도 마지막 결론에 마주치는 것이 싫어, 끝까지 미처 다 보지 않은 채로 남겨두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그만하자고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다른 새로움으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늘 맨 끝자락에서 어정어정하며 머뭇거린다. 혼자 만들어 놓은 견딜 수 있는 최선의 선을 그어놓고서는 괜찮을 거야 그냥 실수일 거야 하며 핑계를 더 하면서 서성거리지만, 결국 상처받으며 끝맺음을 짓는다. 쌓아놓은 시간 속 감정과 지나가 버리는 흐름이 아까워 아니 게으른 마음으로 미처 다 읽지 않은 책을 찾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진심 후련하고 개운하다. 모든 것을 진즉에 더 빨리 마무리하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도 버릇처럼 남겨놓는다.
이번 달 책을 읽고 작가가 진심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 스스로가 느꼈던 감정을 글로 마무리한 후 책을 덮었고, 또 새로운 책을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읽고 나서 한번 나의 손에서 떠나버린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참으로 드물다.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도 책처럼 멀찌감치 툭 던져버리고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파하고 그 아픔이 진심이었다는 결론을 찾으면 조용히 보내주고 새로이 시작한다. 세상에는 내게 맞는 좋은 사람이 어딘가에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러하기에 살만한 것이며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가며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다. 어쩌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가 변화되듯이, 끝맺음의 아픔으로 정리된 세상의 관계도 편안해지면서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