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칼럼] 균형과 조화의 미학
한의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철학은 균형의 의미를 지닌 중용(中庸)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운이 잘 어우러져 균형을 이루며 운용될 때를 건강한 상태로, 그 유기적 균형이 깨진 것을 병의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강조되는 또 하나의 덕목은 바로 '조화(調和)'입니다.
'조화'는 한약을 지을 때, 약재들 간에서도 지켜져야 할 방칙 중 하나입니다. 제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여러 약재들이 한데 모여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뚜렷한 치료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들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약재가 있어야합니다. 이 '조화제약(調和諸藥)' 약재의 대표로 감초를 꼽아볼 수 있습니다.
감초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평(平)한 성질과 단맛을 지닌 약재로, 들어가지 않는 처방이 드물 정도로 널리 사용됩니다. 때문에 모든 일에 빠짐없이 끼어드는 사람이나 꼭 있어야할 물건을 비유적으로 '약방의 감초'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문헌에 이르기를 감초는 성질이 뜨거운 약이든 찬 약이든 그 맹렬한 기운을 완화시켜 우리 몸에서 큰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성질을 지닌 약재든, 넘치는 것을 깎아내는 성질을 지닌 약재든 모두 그 기질이 급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완충제의 역할을 합니다. 이 외에도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등의 다른 독립적인 효능도 있지만, 말 그대로 '감초 역할'로 더욱 쓰임이 많은 약재입니다.
감초 못지않게 조화제약의 역할로 두루 쓰이는 또 다른 약재는 생강 세 쪽과 대추 두 알의 조합인 '강삼조이(薑三棗二)'입니다. 생강과 대추는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갖는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모난 부분을 보완해주는 조합이 됩니다.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 있는 생강의 매운 맛을 대추의 단맛이 보완해주고, 또 반대로 대추가 너무 찐득하게 약의 점도를 높이지 않도록 생강이 가볍게 흩어주고 약성이 잘 퍼질 수 있게 해줍니다. 현대에 와서는 무게수로 각각 3g 또는 4g 정도로 치환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없을 것만 같은 이 약재들도 주의해서 복용해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종이 심하거나 속이 자주 메슥거리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 등입니다. 또한 증상에 맞더라도 과하게 사용하면 역시 부작용이 생기거나 전체 처방의 효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합니다. 균형과 조화를 위해 사용되는 약재 또한 적재적소에 적정량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의학의 정수와도 같은 중용의 미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일한의원 이윤선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