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역사

10월 3일, 1990년 서독과 동독의 통일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계대전 재발 방지라는 명목으로 승전국 중 공산진영을 주도하는 소비에트 연방은 동쪽을 자유진영인 미국, 프랑스 영국이 서쪽을 각각 나눠 점령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앙 유럽의 나라 대부분이 공산주의 체제다 보니 독일의 통일은 먼 희망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의 정책이 바뀌었다. 개혁과 개방적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소련의 지도자가 되면서 중앙유럽 나라들의 개혁과 개방을 허용했다.1989년 8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의 제한을 풀자 1만명이 넘는 동독인들이 같은 공산국가였던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다.
1990년 5월 18일 양쪽 독일은 경제, 통화, 사회의 통합을 협상하여 7월 1일에 실시했다. 8월 23일 동독 의회는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흡수 통일에 동의해 1990년초 부터 경제 부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통일 작업에 착수 했다. 이후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다섯 개 주가 서독으로 편입되면서 마침내 통일을 이뤘다.독일 통일 후 한동안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가 발단이 됐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실상은 다르다. 1989년 11월 9일 동독의 샤보프스키 정치국원은 외국 여행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확한 내용확인 없이 “서독을 포함한 외국 여행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들은 기자들이 시행 시기를 묻자, “지금부터 당장”이라는 실언을 한것이 통일로 가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방송을 본 동독과 서독의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가 국경 개방을 요구했고 무장한 경비병들도 이를 제지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결국 동독 관리의 말실수가 있던 그날 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그후 11개월만에 실제 통일로 이어질수 있게 됐다.

10월 8일,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시카고가 정식 시로 탄생된 해는 1837년으로 당시의 인구는 4200명 수준이었다.이후 발전을 거듭하던 시카고는 34년이 지난 1871년 10월8일부터 사흘간 19세기 최악의 피해를 끼친 재해 중 하나인 시카고 화재가 일어났다. 이 화재의 불길은 그날 따라 극도로 건조했던 날씨와 시카고 명물인 거센 바람에 휘말려 무려 27시간동안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통에 다운타운과 북쪽의 전 지역을 잿더미로 폐허화 시켰다. 단 하룻밤의 화재로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던 빌딩 중 1만8천호가 소실되어 당시 시카고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0만명이 집을 잃었다.이 화재로 인해 300명이 사망하고 당시 화폐가치로 2억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재산피해도 났다.
그러나 시카고는 이 대화재 사건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오히려 잿더미에서 기적을 일으키며 힘차게 일어섰다. 시카고의 자랑인 다운타운의 유명한 건축물들이 이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했다.

10월 5일, 2011년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사망

1955년 2월 24일 생인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IT기업인 애플을 공동 창립하고 사망 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5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 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해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2007년에는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영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만든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 CEO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는 74억 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으로 이 회사를 매입했다. 2006년 6월 이 거래가 완료돼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디즈니 이사회의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그는 2004년 무렵부터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하여 2011년 8월 24일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운영책임자 (COO)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시키기로 했으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돼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 10월 5일 향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시해되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이라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다. 명성황후 민씨는 경복궁에서 조선 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아래 일본군 경성수비대에 암살되었다. 당일 흉도들은 명성황후의 처소를 찾기 위해 궁녀들을 폭행하고 윽박질렀지만 궁녀들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고, 건청궁 동쪽 곤녕합에서 황후를 찾아냈을 때 궁내부 대신이 황후를 가로 막고 나서다가 권총과 칼에 무참하게 살해된다. 그리고 궁녀와 상궁들 사이에서 변복한 황후를 찾아내어 처참하게 시해했다. 또 궁내부 대신들과 궁녀들을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사건직후 미우라는 황후 시해 사건을 조선인의 반란으로 호도하는 공작을 폈으며 외부에 공문을 보내고 조선 외부와 군부의 입을 통해 일본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거짓 증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후 황후는 폐위까지 되지만 황후의 복위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고 복수를 외치는 의병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고, 일본 공사가 조선의 국모 시해사건의 주모자였음이 밝혀 졌다.명성황후는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독특했던 왕비로 전해진다. 권력에 적극적인 참여로 고종이 국정을 의논하는 가장 가까운 상대였고, 외국의 세력들또한 고종보다 더 주시했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온갖 풍파속에서 목숨마저 위협받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황후는 권력에 더 지나치게 집착했고 궁궐에서 굿을 하거나 국고를 낭비하는 비이성적인 모습도 보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개인사를 떠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우리의 국격이 훼손된 끔찍한 역사속의 일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