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고유의 색상

세상의 모든 것은 고유의 색을 지니고 있다. 눈으로 보여지는 똑같은 검정색 하나하나도 채도가 다르고 명도가 다르다.

어느덧 2년 반을 넘겨버린 시간을 스스로의 의지와 목적이 아닌, 강하고 이상한 억지의 떠밀림으로 - 다른 곳은 바라보지 못한 채 오로지 생존만 지키고서 사는 상황 안에서 버티고 있다. 오랜 세월 만들어온 살가운 인간적인 연결과는 동떨어져 마치 무인도에 남겨진 사람처럼, 혼자만의 장소와 시야와 마음으로, 바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버렸다. 다른 풍경도 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무언가를 부딪쳐야만 반사적으로 튕겨져 나오는 파닥거리는 생생한 본능도 살아날 것인데, 그냥 지나가는 시간 따라 무덤덤한 모양으로 남겨져있는 것이다.

어느 하루 그림을 그리려 텅 빈 하얗고 네모진 캔버스를 앞에 놓고 앉으면, 막막하면서 두렵고 순간 무섭다. 무엇을 그리며 무슨 색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체, 사각의 나무로 만든 판 위에 던지듯 나를 내려놓는다. 감정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은 막막함으로, 잘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제법 괜찮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욕망도 끄집어 놓는다. 세상 밖으로 나가 각 생물체의 부딪힘으로 보여지는 생명의 불꽃 송이도 바라보고 또 내 안에 숨어있는 감성과 열정을 밖으로 내보내야 할 것 같은데도, 감정은 미끄러지고 의욕은 힘이 빠지고 생각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우두커니 앉아 있다. 그러나 문득 이것은 여전히 나만의 색상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요일 성당 안 미사 중에 떠올랐다. 겸손의 무릎을 꿇고 원하고 소원하는 마음에 고스란히 집중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깊은 마음 하나로 기대고 올리는 하나하나의 기도가, 바로 각자 본연의 색상인 채도와 명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고 여전히 잘못하고 자주 화를 내며, 모자라는 모든 것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력함보다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편안함으로 적응하며 지켜가는 넉넉한 삶의 방식을 배워가는 사람이기를 또 희망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밀쳐지고 어느 방향으로 전환점을 돌아가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내가 지닌 나만의 고유 색상을 지키며 그려지는 괜찮은 작품이었으면 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