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역사

7월 4일, 1776년 / 미국,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다.

1765년 영국의 인지조례에 반발 미국 독립운동 촉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저항운동 조직화! 1776년 7월 4일 제3회 대륙회의에서 독립 선언! 1620년 12월 21일 102명의 영국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지금의 메사추세츠 연안에 도착하면서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다. 이후 18세기 초까지 영국은 영토를 확장해 13개 주를 확정한다. ‘7년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난 영국정부는 식민지 수탈정책을 펴게 되고 설탕법, 타운센드법 등 온갖 형태의 세금을 거둬들인다. 1965년 발동된 인지조례는 각종 문서에 세금 부과하는 조례안이다. 이는 각종 공문서나 신문 등의 발급/발행 활동, 수출입 활동에까지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식민지의 자치권을 박탈하겠다는 의미이다. 지식인들과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왔으며, 영국상품 불매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인지조례는 폐지됐지만 저항운동의 시발점이 된다. 차조례 제정이 저항운동의 불씨에 기름을 부으면서 독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보스턴 차 사건’ 발생한다. 영국 동인도회사에 주어진 차의 전매권을 반대해 상인 및 시민들이 저항운동을 조직화 하던 중 보스턴에서 동인도회사의 선박에 적재된 차의 하역작업을 거부하는 집회가 벌어진다. 허치슨 총독은 이를 무시하고 하역을 강행하게 되고 급진파인 ‘자유의 아들’의 일부 150여 명이 인디언으로 가장해 3척의 배를 습격해 324상자, 1만 5천 파운드의 차를 바닷속에 내던져 버린다. 영국은 즉각 강력한 보복에 나선다. 보스턴 항을 봉쇄하고 메사추세츠 주의 자치선거를 금지한다.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대륙회의가 열리게 되고 민병이 구성되어 급기야 1775년에는 렉싱턴, 콘코드에서 영국군과 식민지군의 무력충돌이 발생한다. 이는 1776년 독립선언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미국의 독립을 다룬 책을 소개한다. 밀수꾼의 나라 미국’, 저자 브라운대 정치학과 피터 안드레아스 교수는 미국은 “밀수꾼이 세우고 밀수로 성장해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불법무역과 엮인 나라”라고 평한다. 영국이 매긴 높은 관세와 무역 장벽 등으로 밀수꾼들의 돈벌이가 힘들어지자 이들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이것이 곧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보스턴 차 사건은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밀수품보다 싸게 차를 팔자 쫄딱 망하게 된 밀수꾼들이 일으킨 사건이었음을 책을 통해 폭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재직 중인 브라운대는 미국 건국 초기의 대표적 밀수꾼 존 브라운이 세운 학교이다.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 사망.

한국전쟁, 전쟁범죄의 장본인이고 반정부 인사 및 정적 숙청 인권탄압 등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는 김일성은 1994년 초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기도 했고, 심근경색 및 목뒤의 물혹이 심해져서 입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김영삼과의 회담이 1994년 초 예정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병세로 무기한 연기되었고7월8일 새벽2시 평양 집무실에서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1979년 7월 1일 소니가 최초의 워크맨을 출시하다

전세계 음악사와 기술사를 완벽하게 바꾸어놓은 워크맨이 처음 출시되었다. 일본의 가전제품 메이커 소니에서 발매된 이 제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LP에 밀리면서 자리를 못잡고 있던 카세트 테이프라는 기술표준이 단번에 앞서나가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워크맨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로키 야스오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부하 연구원 중 하나가 자사 소형녹음기를 개조해서 음악을 듣는 걸 보고 개발을 했다고 한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 워크맨은 39만엔 이라는 엄청난 고가였다. 하지만 이후에 다양한 경쟁제품이 등장했고 이후에 값이 싸지면서 대중화 되었다. 많은 유사상품이 전세계에서 쏟아졌음에도 워크맨의 위상은 굳건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형기기가 워크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았다. 소니는 이후 CD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재생하는 기기들에 모두 워크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판매했고 현재는 스마트폰 기기에도 워크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워크맨이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워크맨이 ‘도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랑은 많지 않다. 독일 출신 발명가 안드레아스 파벨은 1976년 워크맨과 비슷한 기기를 만들어 소니에게 판매하려고 시도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파벨은 1차 승소를 하기도 했지만 소니가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하고 파벨의 증거물들이 도난 당하면서 패소를 했다. 하지만 이후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파벨을 도우면서 패소로 인한 빚을 갚았고 결국 2004년 소니는 8000만 달러라는 거금과 앞으로 워크맨으로 생기는 수익에 대한 일부 양도를 합의했다. 파산한 파벨을 도운 것은 소니의경쟁업체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취임.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이자 조선과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대한민국의 제 1,2,3대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1919 년부터 192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역임했고, 1945년 해방 후 조선인민공 화국의 주석에 추대되기도 했지만 귀국후 거절했다. 1960년에 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의해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미국하와이로 망명해서 그곳에서 사망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한 140개의 신생 독립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139위로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였다. 당시 국민 평균 수명은 40세. 문맹률은 80% 였던 나라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가 세워질 때 농지는 농민이 소유한다는 원칙울 헌법으로 정하며 토지개혁을 단행하며 지주의 지배를 받는 억압적 구조에서 벗어나 백성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초석을 다졌다. 또 공산주위의 위협에서 시달리던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이 조약으로 10만명에 불과했던 국군이 70만 대군으로 성장하며 미국의 군사적 보호막 아래 발전을 추구했다. 남녀 차별이 남아있던 당시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를 세우고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하는 등의 업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