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정애 - 숙명여자 대학교 제 19대 총장

르네상스 숙명으로 재도약 하기 위한
지덕체를 갖춘 이시대의 진솔한 리더
파리 제 1 대학 팡테옹 소르본 인적자원 경제학 박사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강 정애 숙명여자 대학교 총장 과 이형진 대외협력 처장, 숙명여대 북가주 동문회 손명화회장을 본사 사옥에서 함께 만나 다양한 분야에 대해 뜻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강 총장은 숙명여대 19대 총장으로 2016년 9월 1일 취임했는데, 취임식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고자하는 강 총장의 의지에 따 축하 화환 대신 쌀을 기부 받아 용산구청에 전달해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토록 해 지역사회에 훈훈한 귀감이 되었는데 강 총장의 성품이 가감없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강 총장은 숙명여대 경영학과 졸업후 석사과정을 마친뒤, 프랑스 파리 1 대학교 팡테옹 소르본에서 인적자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에 취업경력개발원장으로 재직하며 국내 대학에선 처음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정식 교과목으로 개설시켰다. 특히 사회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멘토프로그램은 이후 대학가의 대표적인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며 타대학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라 학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주 숙명여대 총동문회는 1999년 시카고에서 결성된 후 2년에 한 번씩 주를 돌아가며 총회를 하면서 1,500여명의 동문들이 지역별로 또 함께 다 모여 친목을 돈독히 하고 모교발전 후원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번 강 총장의 실리콘 벨리 방문을 계기로 북가주 숙명 동문회원들이 강총장의 숙원 사업인 '르네상스 숙명'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직접 강 총장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정감어린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숙명여대의 창학이념인 국가와 민족,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여성지도자의 배출을 위해 교육·학생·교수의 질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하는 숙명 르네상스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밝히는 강 정애 총장은 아담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속에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깊이 품고 있는 외유내강의 진솔한 교육자이며, 또한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아끼는 덕을 지닌 지도자임을 느낄수 있었다.

강 정애 총장의 진심어린 노력으로 숙명여자 대학교가 더욱 혁신과 발전을 거듭해 르네상스의 신기원을 이루어 나갈것을 기원한다.

Q. 본인소개
A. 저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6년 숙명여대 경영학과 입학했고, 80년 숙대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마치고, 프랑스 파리 제 1대학교팡테옹 소르본 (UNIVERSITE PANTHEON SORBONNE) 에 인적자원 경제학 박사학위룰 1988년 받았다. 귀국해서 투자 자문사 에 근무했었고, 시간강사를 하다가 1998년 한국이 IMF를 맞고 힘든 시기에 모교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을 시작했다. 경영학부 에서 중점적으로 인사조직 전문분야를 연구했다. 당시 평교수로 재직하면서 학교 취업 경력 개발원에서 학생들의 진로를 도와 주는 취업 경력 개발원 원장을 하면서, 학생들의 앞길을 더 펼쳐 줄 방법을 고민하면서 대학교 멘토링을 교과로 도입하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줄 수 있고, 직접적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 저명인사나 분야별 전문가등을 모셔서 전문 멘토링 교과 과정을 개발하고 도입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한국 장학재단에서 멘토링프로그램으로 넓게 확산되었고, 국가 인사 혁신처에서 국가차원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다각도로 통합시키는 활동을 지속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이 분야를 교수로 가르치고, 한국 인사관리 학회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해 29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한국 인사관리 학회에서는 첫 여성 회장으로 기록되었다.
정부 관련해서 공무원들의 인사 관련하는 자문, 학교, 학회, 정부, 기업관련 돕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있다. 저서로는 '멘토링 리더쉽' 그리고 '팔로우어 쉽' 이 있는데 두권 모두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상을 모두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Q. 기억나는 가정생활의 추억 이나 에피소드.
A. 평범한 가정 부모님 슬하에 형제 자매가 총 7명이 있었다. 이중에 딸이 5명이었다. 온가족이 전부 그림 그리는것을 좋아했고, 어릴때 자매들과 공기놀이를 하며 오손도손 즐겁게 보냈었다. 형제자매중 미술 전공이 둘이나 되었다. 부모님 두분모두 헌신적으로 자녀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딸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커리어를 잘 길러야 한다고 항상 말씀 하셨었다.

부모님은 굉장히 근면 성실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하고 성실히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사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부모님께서는 한 방향으로 자녀들을 몰아세우지 않으시고 한자녀 한자녀 각자 원하는 방향대로 최선을 다해 모든것을 다 지원해주시려 노력하셨었다. 어머니 께서는 아무리 힘들때에도 "선하게 살아라" 어떤 상황에서도 "선하게 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라"라고 다독여 주셨었다. 아버지께서는 "가는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실수했거나 하면 어느 순간이라도 포기 하지 말고 다시 바로 잡아 더 열심히 해나가면 된다" 고 늘 격려해 주셨었다.

딸이 둘이 있는데 프랑스 유학시절 태어나 둘다 미술을 전공했다. 특이 하게도 11명의 조카들이 있는데 그중 8명이 미술을 전공했다. 남편은 현재 컴퓨터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강 총장과 함께 유학시절 여러가지로 힘든시절 서로 격려하며 의지하며 또 소소하고 풋풋한 즐거운 유학생활을 했는데 언제나 가장 큰 조력자로 긍정적인 눈으로 봐주고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저는 어릴때부터 한가지에 집중하는 성격이었다. 무언가 한가지에만 집중하고 몰입했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감사와 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Q. 교수가 된 계기, 주요멘토 나 에피소드.
A. 어릴때 부터 선생님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저학년 때부터 선생님 놀이도 하고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주는것을 많이좋아했다. 대학교 정경계열에 입학후 보니까 , 상업학교 상업 부기가 인기가 많았었다. 그렇지만 강총장은 인사조직 분야에 큰 관심이 있었고 교직을 이수했다.
멘토라고 꼽는다면, 숙대 재학중 교수님중 한분께서 "너무 힘들때 혹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때 지금 눈앞만을 생각하지 말고 공부를 마치는 종착역인 시점에서 어떨 것인지를 바라보면서 살아라"라고 말씀 해주셨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성당에 신부님께서 "양심에서 내리는 결정을 내리라"고 하시는 말씀이 깊이 가슴을 울렸었다.
언제나 자신이 떳떳하고 학생들이나 자녀들앞에서나, 혹은 훗날 스스로 돌아봤을 때 떳떳할 만한 의사결정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어머님께서 항상 말씀 하시길 "정애는 참 착하다. 사람은 착해야 한다.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최선을 다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항상 선한 끝은 있다" 라고 격려 하셨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항상 머리에 남아있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저 스스로는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남편은 언제나 저보고 주변사람을 잘 챙겨주고 아낀다고 선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운 마음이다.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기에 잘 지내고 있는것이 감사해서 저도 우리 학생들을 더욱 아끼고 돌보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학생들이 잘되면 정말 기쁘고 학생들을 보며 항상 새 기운을 얻는다 .

Q. 총장으로서 어려운 점 과 좋은점
A. 총장으로서 좋은 점을 꼽는다면 미국 동문회원들을 만날수 있고, 그들을 만나면 모교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교에 대한 사랑이 너무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숙명여대는 111년 전에 대한제국 황실에서 시작 되었다. 대한제국 황실로 부터 내려온 뿌리가 있는 숙명의 역사가 보다 새롭게 다가왔다. 학생일때나 평교사 일때는 간과했던 숙명의 역사나 미래, 그리고 현실을 총장으로서 더 깊이 가슴으로 느낄수 있고 정말 깊은 사명감을 느낄수 있다는것을 참 기쁘게 생각한다.
창학 이념인 구국애족, 즉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에 기여하는 여성 지도자 배출이라는 이념을 잘 달성하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총장으로서 어려운점이 있다면, 여러가지 학교 내부의 행정뿐아니라 각종 외부와 숙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도 어떻게 하든지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념과 비젼도 이끌어나가면서 실제 학생들의 발전을 위해 프로그램을 발전 시켜 나가야 하고, 또한 각종 외부와의 소통에서도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숙명인으로 함께 단합해 노력하며 하나씩 풀어나갈수 있고, 오히려 어려운 일들이 향후 더 좋은 기반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될것으로 믿는다.

Q. 인생에 소중한 것.
A.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공부도 계속 해야하고 교수가 되고자 노력하고 또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등 각종 고민과 마음에 걱정 근심으로 인해 30대 중반에 몸이 급격히 약해지고 아팠었다. 그때시부모님께서도 편찮으셨었다. 애기도 어리고 몸도 아프고 강의도 나가야 했기에 당시 시부모님을 잘 못챙겨 드렸었다. 당시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하고자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 몸의 건강 상태가 안좋으면 마음에 평화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동을 열심히 해나가면서 몸의 건강이 크게 회복되어갔고, 또한 신앙을 가지며 정신적으로도 보다 밝고 강해짐을 느끼게 됬고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족과 살고 있었을때, 한 존경하는 미술가선생께서 한국에서 살던 것 처럼 자녀에게 몰두하거나 자녀를 부모의 틀안에 가두어서 키우지 말고, 아이들한테 스스로 인생을 살도록, 자신이 선택하고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키우라고 조언을 종종 해주셨었다. 그 선생의 영향으로 미술 전공으로 유학 온 한국 사람들이 자녀들을 키울때 과외를 하나도 안시키고 그냥 자유 방임형으로 자유롭게 키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자녀가 있는경우 자녀을 돌보며 가정과 일 두가지를 완벽히 다 병행하는것은 쉽지 않을것임 분명하다. 이런 영향으로 당시 아이들을 세심히 돌보지 않고 자유롭게 스스로 자립심을 키우도록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더 많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엄마역할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니는 각종 과외도 안시키고, 스포츠 센터에 운동하러 데리고 다녔었다. 어떻게 보면 좀더 잘 해 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또한, 젊은 시절 몸이 많이 아팠을 당시 시부모님도 편찮으셨었는데, 그때 어떻게든 잘 챙겨드렸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많이든다.
인생의 고비 고비에 남편의 지원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저는 또한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이공계의 시각에서 많은 보완을 해주었다. 공부를 중단해야 할까, 그만할까, 시간강사를 관둘까 각종 고비에서 고민하던 제게 남편의 적극 적인 배려와 따뜻한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남편 가족들 하나하나 모두 믿어주고 결정적으로 힘들때는 쉬었다가 다시 잘 생각해서 갈수 있도록 여유를 갖추고 있어, 제게나 아이들에게도 큰 결정력과 힘이 되어주었다.

Q. 취미 혹은 여가시간에 하는 것.
A. 매일 1시간정도 묵상기도를 하여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 스포츠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교내를 여기 저기 돌아본다. 경영학의 기본 사상에 비추어 보면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고 한다. 그래서 교내를 하루는 이곳 하루는 저곳을 돌아보며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교정에서 일을 시작한다 . 항상 아주 규칙적으로 생활해 왔다. 지덕체를 골고루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슨 일을 하든 체력을 먼저 튼튼하게 단련하는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꿈은? 그 꿈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A. 현재는 사실 가족 보다도 숙명을 더 생각하며 총장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주어진 상황을 선 순환으로 잘 운영되어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숙명의 르네상스를 구현하기 위해 다가오는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중이다. 학생들이 숙명인으로 행복하도록, 숙명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두 발전해 나가고 행복하도록 하는 것이 현재 몰두하고 있는 나의 희망이자 꿈이다. 숙명여대가 더욱 튼튼한 재정력을 구축할수 있도록, 각종 연관 기관과의 원활한 연계, 숙명의 가족들, 숙명의 동문들이 숙명을 더욱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더욱 가깝게 지낼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불철주야 숙명만 생각 하고 있다. 매일 매일 이른 새벽부터 숙명과 숙명인의 가치를 생각한다. 또 한번의 재 도약을 이루어 숙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싶다. 진솔하게 노력하며 살려고 한다. 제 이름대로 곧을 정 사랑 애, 곧게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평교수로서 해야할 역할도 꾸준히 하면서, 숙명여대의 기관장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도 숙명의 인재들을 아끼고 그들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Q. 학자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A. 교수가 되고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지금 필요한 연구, 지금 하고 싶은것을 연구하고 공부하는것이 아니라 통찰력있는 미래를 먼저 잘 생각해야 한다. 미래 지향적이면서 실질적으로 글로벌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학문과 트렌드를 읽고 현실적으로 몰입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노력하는 자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그런데, 꿈을 이루려면 반드시 심신이 건강해야 한다. 마음과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 심신을 건강히 하는것은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실히 노력해야 하는것이다. 아주 똑똑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기꺼이 선택을 해서 헌신 하고 몰입하고 위기가 오면 극복해 나가는것이 학자의 삶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는것이 좋겠지만, 이것이 학문으로 어떻게 도움을 주게 되는지 알아보게 된다. 꿈이 있다는것은 이미 반은 이룬것이라 생각한다.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모습은 곁에서 보기만 해도 도전이 되고 흐뭇하고 기쁘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 라도 꿈을 잃지 말고 성실히 노력해 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