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상 - 패션 모델같은 외모와 강철 멘탈 소유자

콜롬비아 대 석사, 인텔 팀장
프리미엄 데이팅 서비스 '퍼스트 클래스' 창업자
만난사람 이미란 기자

[간단한 소개]

1994년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왔다. Tenafly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Carnegie Mellon University 에서 기계공학으로 학사를 받고 Columbia University 에서 전자/컴퓨터 공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Johnson & Johnson, Xerium Technologies, eBay, Pion Labs, Intel 등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계신 한인 남성들과 한국 여성들의 인연을 맺어주는 프리미엄 데이팅 서비스 '퍼스트 클래스' 를 출시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춘기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에 처음 온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초기까지가 가장 예민했던 시기였던것 같다. 한국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것을 요구하는 학교, 사회적 분위기에 강압당하다 미국을 오니 오후 3시면 학교가 끝나고 공부 안한다고 때리는 선생님들도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차타고 20분만 가면 뉴욕 맨해튼에 갈수 있는 환경에 있어서 그당시 학교친구들과 어울리며 꽤 방황을 했었다. 학교내에서 물의를 일으켜 정학도 받는등 그다지 모범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부모님의 기대와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나를 잡아주었다. 결국 마음 다잡고 공부를 해서 대학원까지 마쳤고 뉴욕, 뉴져지, 워싱턴 DC, 버지니아, 펜실베니아등 동부에 계속 거주를 하다 엔지니어로서 보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2011년 실리콘밸리로 이사를 왔다. 여기서 회사도 2년 다녀보고 창업도 4년간 해보면서 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낄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프트웨어 분야 입문]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교때는 단순히 '열심히 하자' 라는 생각만 있었을뿐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커리어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내가 대학교 다닐때는 인터넷 붐이 일어나서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시스코 같은 회사들이 최고의 주가를 올릴때였다. 이미 학교내 상당수의 학생들이 컴퓨터공학 등으로 전공을 바꾸기 시작 했는데 나는 그때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그냥 하던거 하지, 뭐...' 라는 생각으로 일관했었다. 그러다가 졸업할때가 되니 내가 하고싶은 혁신, 사업등의 일은 컴퓨터/ 정보 산업에 훨씬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과 면접을 하던중 결국 첫 직장이 된 Xerium Technologies 라는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할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만 한다면 회사내에서 그쪽 부서로 옮겨주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나는 입사하자마자 낮에는 기계관련일을 하고, 밤에는 독학으로 소프트웨어를 배워서 입사후 약 2년후에는 업무를 완전히 소프트웨어/전자쪽으로 바꿀수 있었고 몇년 후에는 4명으로 구성된 팀내 소프트웨어부서를 이끄는 매니저까지 승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업적을 인정받아 내가 이끌고 있는 부서는 당시 CEO 가 1년에 1명 (혹은 1팀) 만이 받게 되는 Chairman's Innovation Award 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이 꼭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는 문화가 꽤 보수적인 동부의 오래된 회사에서 당시 내 생각에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종종 의견충돌을 보이고 때로는 격한 논쟁으로 이어지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내 자신의 업무방식에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회사에서 낙오된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의 신념대로 밀고 나갔을때 그것들은 종종 훌륭한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겪은 이런 충돌속에서의 승리는 그후에 내가 사회생활을 할때 왠만하면 나의 믿음대로 소신있게 행동할수 있게 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사회에서 배운 첫번째 큰 교훈이 이것이었다. 회사의 크기 혹은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이 이렇게 책임있는 위치에서 하나하나 얻은 작고 큰 승리들은 나중에 그 사람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준다. 나는 그래서 후배들에게 회사의 크기, 보수, 이름보다도 젊으면 젊을수록 어느 조직이던 자신이 리더의 위치에서 팀을 이끌수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말을 하고는 한다.

[실리콘벨리로 이주 & 스타트업 창업]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던중 애플의 아이폰이 발표가 되었고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져서 퇴근후에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로 일하면서 게임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업 아이템들도 구체적으로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일단 보다 큰 물에서 놀아야겠다고 결심을 한 나는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실리콘밸리로 이사를 와서 eBay 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창업에 관한 계획과 실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여 뒤에 곧바로 다시 퇴사를 해서 실리콘밸리에 와서 알게된 지인 한분과 창업을 하고 그 후에 4년여에 걸친,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그 험난한 여정이 시작됬다.

사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주위에서 하도 많은 얘기를 들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일의 양이나 강도, 혹은 회사의 매출등이 아니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게 참으로 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밀려오는 스트레스. 중요한 딜이 마지막 순간에 깨지면 어떡할까라며 보낸 몇달간의 초조함. 제품출시후에 냉정한 시장의 반응에 밀려오는 우울함. 그리고 이런 나약한 나의 모습을 보며 무너지는 자존감과 자존심. 이런 심리상태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여전히 웃고 강한척해야하는 상황들. 점점 예민해지는 성격에 불안해 하는 주위사람들. 점점 사람들 만나는 것을 기피하였고 소셜활동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외주/컨설팅 위주로 바뀌었고 나는 그 안에서 과장된 proposal 을 쓰며 클라이언트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가치의 제공보다는 거래의 기술등이나 익히는 것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혼자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것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나는 사업을 통해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고 또 이 과정을 통해서 배운 유무형의 기술들과 가치들은 지금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분명히 큰 기여를 할것이라고 믿는다. 반드시 해봐야지 알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텔에서 팀장으로 근무]

그후에 Intel 의 웨어러블 사업부분에서 4명으로 구성된 software application 팀을 이끌고 있다. 가끔씩 사람들이 묻는다. 큰회사에서 다시 일하니 어떠냐고. 다른건 모르겠고 창업하면서 다져온 내공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그냥 평소대로 일한다고 일하는데 몇몇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는 한것 같다. 오죽했으면 직속상관이 다른건 모르겠고 나를 'Man with steely determination', 즉 강철같은 멘탈을 소유한 사람, 이라고 불렀을까.

['퍼스트클래스' 앱 개발 및 창업]

역시 한번 창업한 사람은 어쩔수 없나보다. 유난히 숨가쁘게 일하고 있던 어느날, 아주 어려웠던 일을 성취했을때 온 짜릿함이 온몸에 느껴졌다. 아주 오랫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창업해서 제품을 출시할 당시에는 거의 매일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소위 그런 adrenaline 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전부터 계속 나에게 데이팅 관련 앱을 만들자고 설득하던 후배에게 연락을 하고 역시 창업경험이 있는 그 후배와 나는 거의 매일 만나면서 제품을 다시 만들고 얼마전에 '퍼스트 클래스' 라는 이름으로 출시를 하였다. 참고로 데이팅앱에 썩 어울리는 firstclass.love 란 도메인을 얻은것은 꽤 큰 행운이었다. 또한 같이 일하는 이 후배를 만난것이 전에 사업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학교 졸업후에 나는 꽤 외롭게 주로 혼자서 생활하는 타입이였는데 왠지 모르게 그 당시에 누군가를 친구로 다시 사귄다는게 나에게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닮은듯 다른 그 후배를 전에 사업을 통하여 만날수 있었고 우리는 같이 제품을 만들고 회사를 설립하기에 앞서 인생에서 몇명 없을 친한 친구를 얻었다.

전에 한번씩 창업을 해본 경험들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둘은 제품개발의 과정에서 손발이 꽤 척척 맞았다. 서로 중요한게 무엇이고 버려도 되는것들이 무엇인지 생각들이 꽤 비슷했고 우리는 물리적으로 투자할수 있는 시간이 극도로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에서 출시까지 불과 몇달만에 그리고 유료고객들도 출시 며칠안에 생기게 되어 아주 기분좋은 시작을 하고 있다.

['도전'은 아름다운 여정]

이제 이렇게 나는 다시 시험대 위에 서게 되었다. 내가 만든 제품이 괜찮은 것인지, 과연 이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다 틀리고 옳지 않을수도 있고 혹은 비판을 받을수도 있지만 내가 어떠한 도전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가져왔던 그 꿈을 이룰 확률은 0% 라는것이다. 하지만 미약하고 힘들지라도 이렇게라도 도전을 한다면 그 확률이 1% 일지언정 이 길을 가는것이 맞는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우리는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