쟌 스티븐스, 단 리드 - 한국전 기념비 재단 (KWMF.org)

쟌 스티븐스 미 해병대 장교 (John F. Stevens, Lt. Col. USMC) 한국전 기념비 재단 (KWMF.org) 부회장

쟌 스티븐스 중령은 1921년 4월 몬타나주 버트시에서 태어나 현재 96세로 평생 부지런히 살아왔듯 매일 샌프란시스코 반네스에 있는 오피스에 출근한다.

그가 18세일때 미 해병대에 입대해 1962년까지 23년간 해병대 군복무를 했다. 그가 29세때 해병대 부대 지휘관으로 한국전이 한창인 1950년 7월 한국전에 투입되어 부산, 원산, 조선 저수지, 인천 상륙작전등에 투입되 서울수복과 한국을 위해 최전방 격전지에서 사활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

당시 중공군이 몰려오기 전에 정탐을 하러 한국으로 내려온 중공군을 잡기도 했었고, 수많은 전우들이 바로 곁에서 전사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 던 모습과 온 천지가 핏빛으로 물들여졌던 격투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40도의 추운 겨울 2만명의 미 해병대원이 10만명이 넘는 중공군에 둘러싸여 밤낮으로 전투를 할때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이었다. 그때 그도 발에 심각한 동상등 각종 상해를 입었다. 3,000 명의 해병대원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6,000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현재 100여명만이 생존해있다. 한국 전 뿐 만 아니라 그는 세계 제 2 차 대전시 진주만에서도 전투에 임했으며, 13개의 주요 메달과 훈장등 수여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해군 기념 협회 식당의 바에 "마지막 사람을 위한 술" 이란 술병이 하나 유리관안에 보관되어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는 단 한 사람을 위해 그 술병이 보관되어있다.

그는 그 술을 받아 마실 사람은 굉장히 슬플 것 이라고 한다. 함께 전투했던 모든 이들이 다 스러지고, 이 세상에 오로지 홀로 남는 다는 것이 참으로 외롭고 적막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는 전쟁 후 1980년도에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고 잿더미에서 최신식 지하철, 잘 포장된 도로, 많은 차량, 높은 빌딩, 아파트등으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기뻤고 무척 감회가 깊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전 기념비 재단을 설립해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에 한국전 기념비 준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기념비 준공에 필요한 $3.5밀리언의 기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 준 한국 정부에 감사하다고 전한다. 쟌 스티븐스는 개인적으로 약 9만불을 기부했고, 7년간 매일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며 앞으로도 한국전의 교훈을 후세에 기리 남기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전한다.

미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IBM 에서 근무했고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두었고, 현재 7명의 손자 손녀, 9명의 증손자 증손녀를 두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있다.

우리 고국을 도와준 한국전 참전국가들, 참전 용사들, 그의 가족과 후손들에게 잊지 않고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인터뷰 : 발행인 아이린 서.


단 리드 미 해병대 부사관 (Donald R. Reid, Sergeant USMC) 한국전 기념비 재단 (KWMF.org) 재무이사

단 리드 중사는 1932년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현재 84세로 수영을 즐기며 아직도 일도 하고 여러 봉사활동을 하며 성실히 살고 있다.

그가 18세 되던 1951년 2월 23일 뉴저지주에서 미 해병대에 입대해 3년간 군 복무를 했다. 군복무 시절 1951년 8월 치열한 한국전에 투입되어 인제 펀치볼 전투 최 전방에서 싸웠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무섭지 않았었는지 물었더니 정의를 지키기 위해 옳은 싸움에서 이겨야 하다고 사기가 충천해 있었기에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한다. 기관총과 각종 무기를 가지고 싸웠기에 무거운 무기를 항상 메고 있었고, 곁에서 크게 부상당한 전우를 부축하고 한쪽에는 무기를 메고 헬리콥터로 이송하며 저리 뛰어 다녔다고 회상한다. 그는 한국전에서 1952년 9월까지 12개월 17일간 한국전에 임했다고 정확히 일자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며, 수 많은 전쟁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한다.

1980년에 한국을 방문했었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그후 십여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2년전에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 사람들과 한국 음식, 한국 문화가 참 정겹고 좋다고 기회가 되는 데로 계속 방문하겠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로 입항한 날 로 부터 정확히 40년이 흐른 1992년 9월 17일 골든 게이트 다리 밑을 수영으로 횡단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60이었다. 그는 돌핀 수영 클럽에 가입해 골든게이트 횡단 뿐 아니라 알카트라즈 섬 횡단을 하기도 하며 수영을 취미로 하게 되었고 84세인 지금도 수영을 즐기고, 한국계 아내와 여행과 산책을 즐기며 살고 있다.

군 복무 후 그는 법대에 입학해 변호사로 웰스파고에서 25년간 근무하고, 다른 은행에 8년간 근무했으며, 굉장히 성공적인 사업을 지속 하고 있고, 한국전 기념비 재단에서 재무 이사로 지난 7년간 성실히 노력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27만불을 기념비 재단에 기부하며 개인으로는 가장 큰 기부자로 기록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기념비 동산 옆 기부자들 명패가 새겨진 돌판 옆에 골든 게이트 브릿지가 잘 바라다 보이는 곳에 벤치 하나가 있는데, 이 벤치가 단 리드의 기부로 조성 된 것이다.

이 벤치에 앉아 왼쪽으로 고귀한 피를 흘려준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수 많은 하얀 묘비를 한번 바라보고, 오른쪽의 기부자들의 명단, 과거 한국의 모습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한국전 기념비, 그리고 앞에 탁트인 바다와 골든게이트 브릿지를 바라보며 이 세상엔 참으로 고귀한 삶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간 흙에 뭍혀, 바닷물따라, 상쾌한 바람결따라 떠나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들처럼 무엇인가 작은 소중한 씨앗들을 이 세상에 심어 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방문을 할 기회가 있다면 꼭 자녀들과 함께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둘러보고 벤치에 앉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이 겪었던 전쟁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감사와 도전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쉼없이 노력해 가도록 자신을 돌아보며 자녀들과 의미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 뜻깊을 것이다.

인터뷰 : 발행인 아이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