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식, 미국 양궁 국가 대표팀 감독

한국 양궁계 1호 선수 및 1호 감독
올림픽 메달을 이끌어내는 천재 감독

산타클라라 사무실에서 미국 양궁 국가대표팀 이기식 감독을 만나 그의 삶과 양궁에 대한 열정, 한국, 호주, 미국을 넘나드는 국제적 양궁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제 1호 양궁 국가대표선수를 역임했으며, 제 1호 양궁 감독으로 16년간 한국의 양궁계를 이끌며 수 많은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했고, 호주 감독으로 세계 하위권에 머물던 호주 양궁의 실력을 올림픽 금메달, 동메달을 거머쥐도록 단 몇 년만에 폭풍 성장시켰고, 미국 감독으로 미국이 단체전에서 놀랍게도 올림픽 2연속 은메달을 받을 수 있도록 그의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이제 전세계 양궁계를 이끌 훌륭한 후학 양성을 위해 남가주 네 곳과 북가주 두 곳에 '조이 양궁 클럽(Joy Archery Club)'을 설립해 그만의 특별한 정신력이 깃든 과학적인 방법의 양궁을 많은 학생들에게 전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양궁에 대한 그의 순수한열 정을 강하게 느꼈다. 한국인의 정적인 문화와 아주 잘 맞는 양궁에 많은 우리 청소년들이 입문해 잠재되어있는 놀라운 재능을 개발해 나가거나, 일탈하기 쉬운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심신을 수련하는 궁도에 대해 배워 몸과 마음이 잘 수련되길 희망한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이기식 감독, 학창 시절

1957년 경남 화동에서 출생해 순천 고등학교로 유학을 하게됐다. 어느날 선생님이 각 반의 반장 부반장 들을 모두 모아 양궁을 배우겠냐고 물었는데, 모든 학생들이 처음 접하는 새로운 것이라서 좋다고 모두 시작했으나, 하나 둘 곧 포기했고, 결국 끝까지 양궁을 계속 했던 학생은 이 감독 포함 단 2명이었다. 이 감독의 부모도 공부에 전념하라고 많이 만류했으나 이 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즈음 아내와 열차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되어 친구로 사귀기 시작했고, 1980년 2월 대학 졸업 후 4월에 바로 결혼했다. 결혼 후 장인이 친 아들처럼 너무 예뻐하셨다. 이감독은 완고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장인을 만나고 그의 따뜻한 사랑을 많이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이해 하기 시작할 때 장인어른의 사랑이 떠올라 신의 사랑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감독의 자녀로는 딸 그리고 아들이 있는데, 둘 다 결혼해 딸은 호주 캠베라에, 아들을 멜보른에 거주하고 있다. 딸, 아들, 그리고 사위가 치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고 총 5명의 손주들과 오손 도손 잘 지내고 있다. 현재 아내는 부코치로 이 감독을 도와 양궁 선수팀들의 어머니같은 역할을 담당해오며 이 감독과 선수들과 함께 가족처럼 보살피며 어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한국 프로 양궁 선수 및 코치 생활

이 감독이 처음 양궁을 배울때 신체적 운동이란 생각 보다 정신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궁을 무예(Martial Art)라고 느꼈고 '궁도' 라고 생각했고 그 매력에 빠졌다. 그렇게 순천 고등학교에서 양궁을 계속한 후, 동아대학교 체육학과에 스카웃되어 양궁 선수로 활약을 시작했다. 그가 대학 시절 한국 남자 양궁 국가 대표팀이 생겼고 제 1기에 총 4명이 선발되었는데 그가 그중 한명 이었다. 한국 대표 선수로 모스코바 올림픽에 나가려 연습했으나, 미국및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이 1980년 모스코바 올림픽을 인권 문제로 보이콧 하게 되어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잃었다.
'현대'에서 한국 양궁을 체계적으로 키우기 시작해 양궁 프로 팀을 만들고 코치를 찾고 있었는데, 양궁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또 양궁 선수로 활약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두가지 조건에 맞는 사람은 당시 한국에 이 감독밖에 없었고, 전격 스카웃되어 16년간 코치 및 감독을 맡아 맹 활약했다.

한국 프로 양궁 선수로 여성 80명 남성 65명이 활약하고 있는 등 양궁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은 올림픽에서 양궁 금메달을 받으면 현대에서 5억원을 수여해 줄 뿐 아니라 각종 상금이 있어 약 10억원정도 받는다, 그리고 여러 수상기록에 따라 연금 지원 공단에서 연금 받을 기회를 얻을수 있다.상대적으로 미국은 전미에서 1명 정도가 프로라기 보다는 스폰서로 양궁을 하고 있고, 호주는 프로 선수가 전무한 실정이다. 미국은 양궁에 금메달을 따면 이만 오천불정도의 상금만 수여되기에 명예로 양궁을 하는 것이다.

기억나는 선수들과 기뻣던 순간들

이기식 감독이 이화여대에서 서향순 선수가 포함된 양궁팀을 조직해 약 4년간 코치를 해주었고, 서향순 선수가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뤄주어 무척 기뻤었다. 김경욱 선수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너무 착해서 팀 뒷바라지를 아주 열심히 하느라 후배들은 올림픽에 나가 메달도 많이 따는 상황에서 실적을 남기지 못했었다. 또 한번은 선수 선발전에서 김 선수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활을 잘 쏘았음에도, 마지막에 심판이 화살을 점검하기 전에 잘 쏜 세발의 화살을 무심코 뽑았다. 화살 꼽혔던 자리가 다 눈에 선명히 보였지만 양궁 규정상 안타깝게 탈락 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 착한 탓에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이 감독이 김경욱 선수에게 마음 독하게 먹고 자신을 좀 먼저 챙기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 후 김경욱 선수가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2관왕이 되는 등 좋은 실적을 올려 많이 기뻤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양궁 선수들이 모두 기억나고 함께 했던 많은 한국의 훌륭한 선수들이 전세계 곳곳으로 나가 각나라 양궁계의 명 감독들이 되었기에 많은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호주 양궁 국가대표 감독

한국에서 감독으로 생활하며, 당시 이 감독의 꿈은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양궁 최강의 나라로 인정받는 한국에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크게 실력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양궁은 지속적인 고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년 한국팀을 데리고 호주로 전지 훈련을 5년간 지속했다. 호주는 워낙 양궁 순위가 저조해 한국을 따라오기 어렵기에, 전지 훈련시 노출 되더라도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맘편히 선수들과 한뜻으로 전지 훈련에 임했었다. 그러던 중 호주에서 국가대표 감독 제의를 받게 되었고 몇년을 고심하다 호주 국가대표팀을 맡게 되었다. 당시 호주 선수들은 레크레이셔널 선수들만 있었다. 그가 1997년 호주 감독으로 이주했을 때 호주의 실력은 세계 랭킹 하위권이었는데, 2000년 올림픽에서 호주 양궁의 최초메달로 금메달을 받았고, 2004 년에는 동메달을 또 받아 이례적인 큰 성과를 올렸다. 호주 선수들이 양궁 최강국인 한국에서 새로 온 감독이어서 더욱 정신적으로 완전히 믿고 잘 따라줘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호주에 있을때 골프를 배우게 되었는데 무척 재미있었고, 이에 교포들사회에 골프회를 만들어 4년정도 회장으로 이끌었었다. 골프를 시작한 시기는 얼마 안되었지만 즐겁게 하며 호주 핸디캡 12정도로 간혹 싱글을 치기도하며 많이 즐겼다. 당시 호주 수도인 캔베라에 한인회가 17년간 없었는데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골프회 회장 퇴임 후 한인회를 발족해 한인회장으로 교민들을 섬기며 다양한 사회 활동을 경험했다. 다양한 행사와 청소년 교육, 교민 봉사등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행복감을 안겨주고 즐거운 일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는 한국에 불어닥친 IMF의 여파로 가지고 있던 빌딩과 아파트등을 하루 아침에 모두 잃는 어려움도 겪었고, 낮에는 코치로 밤에는 수퍼마켓이나 빌딩의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가족이 더욱 위하고 단합했고, 타인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신앙이 깊어질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미국 양궁 국가대표 감독

미국에서 2002년에 감독으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으나 호주 선수들을 조금더 키우겠다고 하고 몇 년간을 더 호주에 머물다 2006년에 미국 감독으로 도미했다. 2008년 미국이 올림픽에 나가서 참패를 당했다. 물론 이 감독이 도미한지 약 1년여 정도로 훈련 기간이 무척 짧기도 했지만 당시 뉴욕타임즈에서 그의 훈련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크게 게재했다. 한국인 감독이 미국에 와서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하나님을 믿도록 종교적인 압박을 행사했다는 취지였다. 즉, 올림픽 선수촌에서 선수들에게 신앙적인 생활 태도를 강요했으며, 찬송가를 부르고 교회에 다니도록 조언하고, 성경 공부를 주관했으며, 최소 4명의 선수에게 세례를 받도록 주선을 했다고 전했다. 모두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올림픽 커미티에서 2번의 경고를 받게 되었고 현재는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어떤 종교적인 언행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되었다. 미국은 양궁 훈련이 체계적 시스템으로 나뉘어있다. 즉, 양궁 1 ~ 5급으로 구성되어있다. 2009년 부터 국가 훈련 시스템 (National Training System) 이 도입되면서 4급 이상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 5급 1호인 이기식 감독의 인정사인을 받아야 진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내에 총 12명이 5급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이감독의 인정사인으로 5급이 된 것이다. 한국이란 조그마한 나라에서 미국에 들어와 미 전체의 양궁 전문인을 키워내는데 가장 큰 권한을 대행 할 수 있다는것이 무척 감사하고 벅차다.

저서 "토탈 아처리(Total Archery)"

전세계에 양궁에 대한 체계적인 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었고, 이 감독이 양궁에 대해 체계적이고 정신적수양이 겸비된 저서 'Total Archery' 1권을 집필 후 8개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에서 양궁 교육의 주요한 교재로 쓰이고 있다. 도미후 'Total Archery' 2권을 집필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또 4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파되었다. 즉, 제 1 권은 양궁의 기본 개념, 2권은 선수가 양궁을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주요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현재 3권을 집필하고 있는데, 이는 양궁 코치의 입장에서 양궁의 교육에 대한 개념이 포함될 것이다. 'KSL Shot Cycle'이란 이름으로 양궁을 쏘는 방법에 대해 심리와 역학이 다 포함되어 있다. 양궁의 암(Archery Cancer) 라고도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이는 예측할 수도 또 고칠 수도 없는 '타겟 패닉'이라는 증상이 그것 이다. 선수가 이 패닉에 걸리면 갑자기 활을 전혀 쏘지 못하거나 그냥 막 쏴버리는등 전혀 경기에 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런 증상으로 양궁을 하던 사람들이 양궁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어왔다. 한 예로, 김진호 선수가 LA 올림픽에서 100 점이상의 훌륭한 성적을 계속 잇다가 갑자기 빵점을 4개쏘고 동메달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암과 같이 고치기 힘들다는 타겟 패닉을 이 감독은 한시간 이내에 멘탈과 역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해준적이 많다. 타겟 패닉으로 혹은 어깨 부상으로 양궁을 그만 두는 선수들이 종종 있는데 많은 경우에 이는 잘못된 훈련방식에서 연유한 경우가 많다. 양궁을 처음에 배우고 계속 훈련할때 좋은 방법으로 훈련을 하는것이 무척 중요하다.

조이 리 양궁 아카데미(Joy Lee Archery Academy), 후학 양성의 보고

이 감독은 2006년 조이 리 양궁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는 보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양궁을 훈련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였고, 현재 샌디에고, 롱비치, 애나하임, LA, 트라이 벨리 지역에 각각 오픈되어있고, 10월 15일에 산호세 지역에 하나 더 오픈 할 예정이다. 처음 양궁을 시작하려면 한두달 클럽의 장비로 활용하고, 향후 자신의 장비가 필요하면 장비의 가격은 약 $500 부터 선수용으로 $3,000정도 한다. 연습을 집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고 골프나 다른 경기에 비해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부모님과 함께 가족 스포츠로 할 수 도 있고, 함께 많이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또한, 흔히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 불리는 주위 결핍 과잉 행동장애 증세가 있는 학생들이나 사춘기의 반항적인 학생들이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미국에서는 총기 사냥은 일정기간만 허용되나, 활로는 연중 무휴로 사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냥꾼은 많아도 양궁선수로 활약할 선수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감독은 아무리 양궁에 소질이 있고 천재라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그리고 양궁을 아주 좋아하는 선수들이 롱런하고 잘 할수 있다고 조언한다. 남들의 추천이나 인정보다는 선수 스스로 즐기며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미국내에서 양궁 올림픽 선수로 나가려면 선발전이 있는데 약 5개월여 동안 3차전에 걸쳐 약 1,000발 정도의 활을 쏘아 성적순으로 선발된다. 2020년에는 그가 발굴한 한국계 양궁선수가 올림픽에 나갈 수 있고 선전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 기식 감독은 전세계 각나라에서 많은 한국계 후세들이 양궁에 두각을 보이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올림픽에 나가서도 각각의 국적으로 출전을 해도 많은 이들이 한국계면 무척 기쁘겠다고 가슴 속 깊이 박힌 모국의 사랑을 표현하며 후학 양성을 위해 열정을 바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양궁 국가대표 이 기식 감독이 전미의 양궁계를 휘어잡고 있는 모습이 한 없이 감격스럽고 뿌듯하다. 그와 함께 노력하고 있는 우리 양궁계의 샛별들이 조만간 큰 두각을 나타내 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