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 강영우 박사의 아내 - 석은옥

김혜수, 안재욱 주연 '눈먼 새의 노래' 및 '빛은 내 가슴에'영화 실제 주인공
숙명여대 졸업후, 시각장애 분야 특수 교사 자격증 취득 석 은옥 여사를 산타클라라 오피스에서 만났다. 그녀는 단아한 모습에 여성스럽고도 조리있는 말솜씨로 그녀의 인생과 남편 강영우 박사, 그리고 아들, 폴과 크리스토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숙명여대의 꿈 많은 미모의 여대생이었던 시절 우연히 만난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던 맹인 소년과의 운명적인 만남 후, 흘러간 40여년의 세월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도전감을 일으켜주는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영화같은 삶이었다. 그녀의 저서 '그대는 나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 제목과 같이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 서로의 등대가 되어 두손을 꼭 잡고 외롭지만 용기있게 걸어온 인생길에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남편 고 강영우 박사의 뜻을 이어 세계를 비추는 작은 불빛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인 여성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내조를 해 온 그녀는 사회와 시대의 냉대 속에서 도 그녀 특유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있는 행동으로 당당히 자신의 사랑과 가정,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훌륭한 동반자, 존경스러운 어머니로 묵묵히 걸어왔다. 그녀와의 오랜 시간 대화 후, 가슴이 뭉클했다. 마음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을 담아 그녀의 삶에 존경과 찬사의 기립박수를 보낸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석 은옥 여사는 남편 강영우 박사를 평생 존경했다고 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는 강한 끈기로 일생의 하루 일분까지도 최선을 다해왔다고 밝힌다. 또한, 그는 고통이었던 실명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도와줄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디딤돌이 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남을 가족들을 위해 축복과 감사의 편지를 타자로 쳐 주었고, '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는 책의 집필을 지속했기에 아내로서 마지막에 더욱 큰 존경심이 생겼다고 전한다.

남편 강영우 박사에 관하여

석은옥 여사가 밝히는 남편 강영우 박사의 인생은 다음과 같다. 고 강영우(姜永祐, 1944년 1월 6일 ~ 2012년 2월 23일) 박사는 대한민국의 전 외국공무원이자 교수이며, 장애인 인권에 관한 연설 및 작품을 저술했다. 2002년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2011년부터 췌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향년 69세로 2012년 2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경기도 양평에서 1944년 1월 16일 태어났다. 단란한 가정에 4 형제 자매가 행복하게 살았다. 그가 14세 중학교 재학중 축구를 하다 축구공에 얼굴을 맞아 외상에 의한 망막 박리로 실명의 위기에 처했고, 이에 당시 홀 어머니는 가진 모든 재산을 다 쓰며 치료하기 위해 애쓰셨다. 그러나, 의사가 실명이 영구적이라고 결과를 알려준후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하루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큰 누나가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공장에 들어갔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남은 3명의 어린 형제 자매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영우는 어린 나이에 맹인으로 홀로 살아나가야 했다.
공부도 잘했었고, 단란한 가정에서 행복했던 영우는 갑작스럽게 닥쳐 온 감당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시련에, 죽음까지 생각했고, 한 기독교 방송국의 상담 프로그램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상담 전화를 걸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목사님께서 영우의 괴로운 상황을 들으시고,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먼저 해 주시고, 다시 시각 청각 중복장애로, 언어도 구사하지 못했던 헬렌 켈러의 삶에 대해 다정하게 말씀하시며, 영우는 건강한 신체와, 팔과, 다리, 귀, 언어구사등 모든 부문이 다 건강한데, 눈 하나만 안보이는것 아니냐며, 영우의 장애가 오히려 기독교인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귀히 쓰일것이라고 희망을 주고, 최선을 다해서 살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었고, 이에 당시 죽음을 생각하던 마음을 돌이키게 되었다.
그는 고아로 맹학교를 다니던시절 숙명여대 재학중이던 석은옥 여사와 만나게 되었고 그후 1968년 서울 맹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육과에 입학, 1972년 문과대학 전체 차석으로 졸업, 그해 2월 결혼후 8월 한국 장애인 최초 정규 유학생 으로 아내와 도미 후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 전공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 1976년 한국 최초 맹인 박사가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실명과 가난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성공의 디딤돌이었습니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등이 있다. 특히, 강영우 박사는 세상을 떠날때 정말 아름답게 마감을 한 사람이다. 시각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우수한 성적으로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라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고, 은퇴 후에도 전 세계 장애인들 가슴에 품고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69세의 젊은 나이에 췌장암 말기로 한 두달여 밖에 살수 없다는 의사의 청청벽력같은 진단 앞에서도 그는 결코 하나님을 향해, 생애에 대해 아쉬움이나 미련을 보이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 3장을 타자로 쳤고,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라는 유고작의 집필에 주력했다.

그는 유고작에 '장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하지만 장애라는 것이 인생의 걸림돌, 그야말로 장애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나에게 장애는 축복이었다. 나는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책으로 쓸 수 있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를 통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유엔과 백악관을 무대로 종횡무진 활동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고, 65세 이상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다. 사회의 고령화와 빠른 산업 발달로 사고, 재해로 인한 장애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그것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 늦은 밤 이렇게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나의 삶이 여러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바뀌어 간다면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곧 오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그러한 바람을 간직한 채 책을 쓰며 나의 소중한 또 하루의 시간을 보낸다.'는 가슴에 남는 훌륭한 글을 남겼다.

석은옥 여사에 관하여

석은옥 여사는 단란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외동딸로 모범적으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당에 다니시던 사랑많으신 부모에게 어려운 이를 돕는 삶을 석은옥 여사는 숙명여대 재학 시절, 걸스카우트 봉사활동을 통해 시각장애인 중학생 강영우와 처음 만났다. 그녀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던 영우를 처음 보고는, 고아에 실명을 한 어린 가엾은 동생이라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날 프로그램이 끝나고 걸스카우트 선생님이 버스 정류소에 영우를 데려다 주고 오겠다고 하셨는데, 그녀가 데려다 주겠다고 자청했다. 불쌍한 남동생의 손을 잡고 버스 정류소로 데려다 주러 걷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대로에 왜 맹인이 걸어다니냐고 혼내기도 하고, 재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영우를 보고 침을 뱉는 모습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 오히려 이런 가엾은 아이를 그녀가 돌봐줘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고, 영우가 어디에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데려다주고, 또 그녀의 집에 데리고 와서, 부모님께 동생으로 돌봐주는 아이라고 소개시키고 함께 밥도 먹고 친동생같이 아껴주었다. 동생을 꼭 돌봐주고 싶어, 숙명 여대 졸업후, 미국에 유학을 와서 시각 장애인교육을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가 그와 만나 여러가지 대화를 하는중, 그가 그녀의 본명인 석경숙 대신 '석은옥'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하며, 돌 같이 척박한 '석'의 시기를 지나 함께 '은'으로 거듭나고 함께 '옥'으로 삶을 마감하자고 말했고, 너무 아름다운 그의 말에 그녀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특수 교육까지 마는 그녀가 그와 인생을 함께 하는것이 정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누나로서 봉사자로서 그를 돕고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두 사람은 결혼으로 한가정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무남독녀로 곱게 자란 그녀가 시각장애인에 두 동생까지 딸린 고아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그의 지팡이'가 되는 삶을 시작했다. 유학을 꿈꾸던 남편을 도왔는데, 당시 한국의 법에 장애인은 유학을 못간다는 규정이 있어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러나, 꿈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했고, 당시 교육부 장관이 그 규정을 삭제해 유학길에 올랐다.
남편의 미국 유학에 동행해 그를 강의실에 데려다주고,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일일이 녹음해 들려주고, 부족한 살림을 꾸려가는 등 앞 못보는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도 없는 최선을 다했다.그러면서도, 그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그녀는"병이 나를 무서워해서 침범하지 못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맡은 일을 감당하며 매일매일 열심히 살았다. 때때로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신바람이 난 사람 같았다. 두 아들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나고, 남편이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1 인 3역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역할도 감당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과 소명의식이 가슴 가득 차올라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아내의 역할과 두 아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내며 자신의 꿈인 미 공립학교 교사로 28년간 성실히 근무하며 자신의 꿈을 지켜나갔다.
석은옥 여사는 남편의 내조자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헬렌켈러에게 앤 설리번이라는 선생님이 없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강영우 박사가 그의 그림자같은 지팡이 석은옥 여사를 동반자로 만나 그와 그의 가정이 더욱 빛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녀 양육에 관하여

그렇게 남편이 한발한발 전진하는 것을 돕는 한편, 낯선 타국에서 낳은 두 아들을 훌륭하게 양육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우선 석은옥 여사는 두 아이에게 일을 똑같이 배분해주고, 칭찬을 많이 해줌으로써 자긍심을 갖게 함과 동시에 근면 정신, 팀워크, 협동 정신, 준법 정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게 했다.'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원해서 여러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했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웃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게끔 이끌었다. 그녀는 아이가 꿈을 정해 그것을 이뤄나갈 수 있게 돕는 한편, 항상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신앙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도왔다.

무작정 아이를 교회에 보내고 여러 활동을 시키는 것, 혹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한다'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야 한다'는 것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따라하게끔 이끌었다. 신앙 교육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두 아들이 부모를 롤모델로 하여 좋은 것만을 본받으며 자라게 이끌었다. 두 아이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석은옥 여사는 그런 매 순간순간이 자신에게는 행복이고 기쁨이었노라고 말한다.

강영우 박사와 석은옥 여사의 큰 아들 폴(진석)은 안과의로 워싱턴에서 가장 권위있는 안과 교수 연합(UOCW)멤버 8명중 한 명이며, 둘째 크리스토퍼(진영)은 민주당 상원 본회의장내 최고 법률 보좌관인 선임 법률 보좌관을 역임했다. 바락 오바마와 미셀 여사가 공식 행사에서 자주 한국의 좋은 점들을 설명하고 본 받자고 연설 한 것은 둘째 아들인 크리스토퍼가 주변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상에 관하여

그녀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 있게 되면서 아침저녁으로 기도로 생활하고있다. 그녀가 혼자남아 이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하는 기도를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가 결혼했을 때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소서'액자를 선물로 받아 머리맡에 두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장애인을 위한 평화의 도구로서 삶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게되었다. 특히,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한국에 가서 사회복지법인에 '강영우 장학 재단'을 만들어서 한국에 있는 시각 장애인을 우수한 인재로 양성하는 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도 남편도 어린 시절부터 좋은 기독교인들, 좋은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 미국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기르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그런 일이겠다고 밝힌다. 그중에서도 시각 장애로 인해서 오는 어려움을 겪는 그런 사람 중에서 인재를 도와주고 싶다고 한다. 1년에 몇명씩을 자비로 초청해 교육을 받게 해주는등 다양한 장애인 인재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아침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란 찬양을 부른다. 그녀의 얼굴은 정말 마음고생 한 번 한것 같지 않은 화사한 미소와 행복의 빛이 감돈다. 사소한 작은 일에 불평하기도 하는 우리들의 삶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며 석은옥 여사에게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