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대위로 명예전역한 베테랑 - 조세핀 페트로프스키 (조정아)

미 해군 대위로 명예전역한 베테랑 - 조세핀 페트로프스키 (조정아)
미 해군 대위로 명예 전역한 베테랑 47살 테솔 석사 과정중인 4살 딸의 엄마

조세핀 페트로프스키, 그녀를 산타클라라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녀를 만나는 순간 그녀의 긍정 에너지와 큰 웃음소리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듯 매료됨을 느꼈다. 석사공부를 하며 4살된 어린 딸을 돌보면서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추수감사절이 가까와 호박 케잌을 구워 왔다며 내미는 그녀의 정성가득한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한입 먹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5피트도 채 안 되는 아주 조그마한 한국 부산에서 온 여인이 장신의 해군들 사이에서 10여년 이상 복무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진다. 그녀와 한 시간 남짓 대화를 하며 그녀의 삶을 알아가면 알아 갈 수록 더욱 그녀가 한인 여성인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고마왔다, 열심히 살아온 그녀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기립박수를 보낸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Q. 간단한 본인소개
A. 저는 조세핀 샬롯 페트로프스키(Josephine Charlotte Petkovski, 조 정아)이고요, 보통 저를 조시(Josie) 가고 부릅니다. 고향은 부산이구요. 22살에 결혼해 미국으로 왔어요. 전 8년의 미 육군 예비역을 마치고 10년동안 미 해군 대위로 근무하다 근무 중 부상으로 2010년 명예전역했습니다. 전역 후 새로운 일을 하려고 2014년 산타크루즈 주립대학(UCSC-Extension in Santa Clara) 에서 테솔(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TESOL) 과정을 마친후, 샌프란시스코 대학(Univ. of S.F.) 에서 테솔과정 석사를 내년 5월 마칠 예정입니다. 나이 마흔 일곱에 넷살 반 된 딸, 쥴리아나가 있어요. 어린 딸 쥴리아나를 키우며, 풀 타임 대학원생으로 바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인생에 주요한 에피소드는?
A.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세가지 사건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짼, 멋모르고 22살이라는 나이에 서울에서 일하던 미공군과 결혼해서 1990년 10월에 미국을 온 거구요. 두번짼, 1997년도에 테네시주립대학 캠퍼스에서 리베리아 피난민 학생인 하와(Hawa)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된거예요. 제가 3년간의 유럽생활을 마치고 전 남편과 함께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사를 막 오고 난 직후, 전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할때였어요. 그후 한 서너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윤 그 때부터 알게 된 하나님 덕분이예요.

마지막 세번짼 제가 해군에서 받았던 생존 극기 훈련(Survival, Evasion, Resistance, and Evasion) 이 아니었나 싶어요. "SERE" 라고 부르는 이 훈련은 미군이 전쟁포로로 잡히면 적군이 생각할수 있는 모든 고문과 또 그외 미국방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실전의 전쟁포로들이 겪는 일들을 받게 되는 훈련인데, 이 훈련에서 제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던 극심한 고통으로 영혼육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나 싶어요. 참 힘들었거든요. 이 훈련 이후 제가 조금이나마, 미 전쟁 포로들이 겪어야만 했던 많은 경험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맘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최근 안젤리나 졸리가 만든 영화 언브로큰의 주인공인 미 전쟁포로의 이야기를 제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Q. 현재 하는 일의 힘든점과 좋은점은?
A. 지금 저는 전업 엄마이며, 전업 테솔 대학원생입니다. 힘든 점은 네살된 애기를 47살에 키워보신 분들은 아마 알거에요. 4살 반된 활발한 유치원생 딸을 돌보려면 여러가지 면에서 힘이 딸려요. 저녁에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쥴리아나 우리 책 그만읽고 자자. 이게 마지막 책이야." 근데 제 딸보다 제가 먼저 지쳐 잘 때가 많아요. 왜냐면, 딸이 유치원 가고 없을 때랑 아님 낮잠을 자거나 또 자는 시간에 짬을 낸 새벽이나 밤 늦을 때 만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쥴리아나 스케쥴에 맞춰 학교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학교가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라, 통학하는게 정말 힘들어요.

근데 좋은 점은 저에게 이런 힘든 과정속에서도 공부할 수 있게 힘 주시고, 지혜 주시고, 건강 주시는 하나님께 넘 감사해요. 저같은 사람이 뭐라고 제 2의 기회를 주셔서 세상 공부를 하게 하시는지…. 사실 해군에서 다치고 난 후 기억력이 꽝이에요. 몸도 전에 같지 않구요. 적어놓고도 잊어버리고, 교수님 강의 녹음을 해 놔도 잊어버리고, 근데 참 이상하게도 잊지 말아야 할 건 또 꼭 기억나게 해 주셔서 넘 감사해요. 제가 지금 이렇게 뭔가를 위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넘 좋아요. 저보다 훨씬 어린 동기들이랑 같은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저에겐 넘 행복하고, 꿈을 가지게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박사과정도 생각하고 있구요. 그리고 더불어 저랑 싸우고, 울고, 웃고, 같이 친구처럼 지내는 네살박이 딸이 있어 좋구요.

Q. 인생에 중요한 점은?
A.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읽었던 글중에 "From Madness to Consciousness" 에 나오는 푸에르토리카 여성 교수인 닥터 다더(Dr. Darder)의 인터뷰 글에 나온 "사랑" 이 아닌가 싶어요. 이 글을 읽었을 때가 이번 학기 시작한 후 가장 힘들 때 였기도 했구요. 12-14살까지 언니랑 같이 엄마 남자친구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16살 강제로 결혼해 세 아이를 낳고, 네 번의 결혼을 통해 정말 제가 생각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금의 라티노 정치 운동가로 그리고 대학교수로 그 자리까지 오신 그 분의 삶에 마지막 말은 "사랑(love)"였어요. 사랑!! 근데 그분같이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해도 당연할 수 있는 상황에 있던분이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전 넘 존경스러웠어요. 그래서 저에게도 그 사랑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거 같고, 왜냐면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그 순간엔 아무것도 준비해 가지고 갈 게 없으니깐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가 그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거, "아버지, 제가 영어로 읽고 이해해 그녀의 그 아픔과 어려움과 슬픔을 공감하게 해 주시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했어요. 한번도 영어를 읽을 수 있어 영어라는 언어로 공부할 수 있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고백한 적은 없었거든요.

Q. 행복하다고 느낀 때는?
A. 제가 행복하다고 느낀 건, Pensacola , Florida에서 3개월간의 호된 해군 장교 훈련을 마치고 임관식 한 후 저에게 고함을 지르고 달달 볶던 미 해병대 교관의 첫 경례를 받을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만 특별히 힘들게 한 건 아닌데, 당연히 그게 그 분의 직업 이니깐, 암튼 그 사람에게서 첫 경례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구요.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시작한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학사 졸업장을 손에 쥐었을때 저 나름대로의 뿌듯함이 있었어요. 물론 졸업장으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랐지만요.

힘들고 제가 어려울때, 정말 맘의 여유가 없어 쪼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나가다 홈리스에게 돈과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그 맘, 맛있게 케잌이랑 먹거리를 만들어 학생들과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 맘의 여유, 사람들이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시는 베풀 수 있는 사소한 일들로 인해 제가 누릴 수 있는 그 하나하나가 아마 제가 어려울 때 힘들 때 삶을 그만 살고 싶을 때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누굴 돌볼 수 없을 제 상황에서 누구에게 내 손을 내밀어 나눌 수 있는 그 작은 여유로운 맘, 그 맘의 믿음과 또 사랑이 저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Q. 여가시간에 하는 취미는? 스트레스푸는 본인 만 의 방법은?
A. 별다른 취미는 없고요 달리기가 저의 스트레스 푸는 유일한 방법이예요. 두려움과 화, 희망과 저의 비젼을 이루는데 달리기가 정말 효과적이예요. 키는 작지만, 한번도 군대 훈련에서 밀리거나 테스트에서 떨어졌던 적이 없어요. 또 지금도 시간이 있음 꼭 한 시간 정도 뛰죠. 1991년 군을 지원하겠다고 시작한 달리기가 25년이 지난 지금도 정말 저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고 또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죠. 이제 관절 때문에 좀 통증이 있긴 하지만, 지금도 일주일 서너번은 꼭 뛰어요. 한 번 일본에서 하프 마라톤을 한 적이 있어, 다음에 마라톤 완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한가지 더 취미생활을 들자면, 차안에서 혼자 찬양을 들으며 열심히 소리 질러 부르는 걸 즐겨하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 음식먹는 건 별론데, 만들어 나누는 건 참 좋아해요.

Q. 같은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혹은 독자에게 전하고싶은 말은?
A. 사람들이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랑'을 계속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배우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 배워야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배운다는 건 참 중요하고 좋은 거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배움의 기회가 적절한 시기에 맞게 주어져 배우는 사람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특히 제가 바로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니깐요. 나이가 들수록 일상적인 일만 하게 되는데 뭔가 활력소가 되는 꿈을 찾아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자에 일생, 한 번 사는 삶,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의 삶,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삶, 후회와, 원망과, 아쉬움과, 불평이 있어도 삶 그 자체가 좋은 거 같아요. 믿을 수 있고 나를 믿어주는 진실한 친구들이 제 주변에 있어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것 또한 하나님께 감사 드려요.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