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 아주 대학교 산업 공학과 교수

이주연 교수를 산호세 산타나로 LB steak에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글로벌 기업에 최연소 임원으로 발탁되었고, 현재 산업통상 자원부 옴부즈만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아주 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필자는 그와 1990년대 한국 오라클에서 함께 근무하며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했기에, 그의 훌륭한 인품과 절대적 능력을 익히 알고 있다. 최근 10 여년간 그는 주요 기업과 기관에서 놀라운 성과를 일구어 냈다. 이는 필자가 보기엔 그의 업무에 대한 열정, 성실한 근면성, 뛰어난 지혜의 산물이며 당연한 결실이라 생각한다. 그는 어떠한 환경에서나, 특히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며,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진실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항상 주변사람들을 돕고 배려하는 바른 생활 교과서의 전형인 그가 그의 꿈을 이루고 성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주연 교수로 인해 그가 몸담고 있는 정부기관과, 기업과, 교육계에 지속적으로 괄목할 성장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 그가 걸어가는 반듯한 발자취를 보며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낀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Q : 간단한 본인소개를 한다면?
A : 제2의 인생으로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차관급)을 겸직하고 있다.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 제도는 2011년 [산업융합촉진법]이 발효되면서 국가산업융합을 촉진하기 위하여 신설된 법적기구로서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

제1의 인생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산업계에 다년간(27년) 근무를 하였고, 글로벌 대기업에 36세에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하여 17년동안 임원으로 근무하였다.

주요한 산업계 경력으로 Oracle에서 이사(Director)로서 전략솔루션실장•공공서비스실장, SK C&C에서 상무(Vice President)로서 전략마케팅본부장, 공공전략사업본부장, 포스코ICT에서 전무(Executive Vice President)로서 그린사업부문장(환경에너지 사업본부,건설SOC사업본부,철도교통사업본부,컨버전스사업본부), 한국스마트융합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업무를 수행했다.

제2의 인생은 지난해 하반기(9월)에 아주대학교 공과대학에 초빙되어 산업공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대학교에 융합기술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스마트 핀테크(Smart Fin-Tech)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올해 2월에 국가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차관급)으로 임명이 되어 일주일에 3일은 대학에 근무하고, 2일은 정부에 근무를 하고 있다.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은 융합기술 제품개발과 시장출시를 국가적으로 촉진하기 위하여 산업계를 대변하여 산업융합 촉진을 저해하는 애로사항, 제도개선, 규제개혁등 이슈를 해결해 주는 고충처리위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 실리콘벨리를 찾은 것은 국가 산업융합 선도기업들이 글로벌 거대시장에 진출을 할수 있게 글로벌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다. 구글(Google),애플(Apple),오라클(Oracle),테슬라(Tesla)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할수 있게 기반을 마련해 주고, 정부에서 실리콘벨리에 설립한 KIC-실리콘벨리, 실리콘벨리 무역관, KITECH USA등과의 협업을 강화하여 교두보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실리콘벨리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 버클리 대학, 산호세 대학 연구소와의 연구협력도 협의를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중국, 일본뿐 아니라 중동시장의 거점인 두바이가 계획되어 있다.

Q : 어린시절의꿈, 기억나는 추억?
A : 충청북도의 전형적인 시골인 중원군(현,충주시)의 주덕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주덕에서 졸업을 했고, 고등학교는 청주에 있는 청주신흥고등학교를 3년 장학생으로 다녔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 직장을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학위를 수료 하였다. 주위에서 농담으로 법대 출신이 공대 교수가 된 것이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한다.

가족간의 우애를 중시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인지 형제들간의 우애가 좋은편이다. 큰형님은 한국교통대학교에서 교수로 계시고, 둘째 형님은 현대라이프생명 대표이사로 계시고, 여동생은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집안에는 교직자 집안으로 교직자가 나를 포함하여 4명이다.

아버지께서 교직에 계시면서 고향인 주덕에 "우리식물 자연농원"을 오랫동안 준비하시고, 퇴직 하신후에 우리식물 자연농원을 경영하고 계신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우리식물 자연농원을 개방하여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봉사 활동을 하고 계신다. 명절때마다 정기적으로 우리형제들은 고향인 우리식물 자연농원에 모여서 우애를 나눈다.

Q : 지금 직업을 갖게 된 계기,주요멘토나 에피소드는?
A : 나의 인생신조는 "기업을 경영하듯이 인생을 경영하라"이다. 산업계에서 다양한 업종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였고, 새로운 신규사업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도전을 하며 바쁘게 살아 온 것 같다. 첫 번째 회사는 자동제어 일본합작 회사인 PCC에 3년간 근무를 했었는데, 경영기획, 원가분석, 인사기획, 경영혁신등 업무를 수행하였고 2년만에 최연소로 특진하여 경영기획팀장을 맡아 경영혁신을 주도하였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주관한 경영혁신 대회에서 사례발표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컨설턴트로 스카웃 되어 이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회사는 컨설팅 전문회사인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9년간 근무를 하였는데, 수석컨설턴트로서 국내 대기업 경영컨설팅을 7년동안 하였고, 경영컨설팅본부장을 2년동안 하였다. 본부장을 맡게 된 것이 회사에서 본부단위로 사업본부제로 운영하다 보니, 구성원들은 본부를 책임질 적임자로 나를 만장일치로 본부장으로 추대를 하여 30대 중반에 본부장을 맡게 되었다. 본부장을 맡아서 특히 공공 및 금융컨설팅의 경영실적을 획기적으로 키워 좋아 본부의 경영실적이 1년만에 4배정도 향상이 되어, 본부 구성원들이 억대 고액연봉자가 많이 탄생이 되었다. 사업본부제로 운영하다보니 타본부와의 연봉이 50%이상 차이가 나면서 노조에서 CEO에게 연봉평준화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국내기업의 한계점을 절감 하던 시점에 글로벌 기업인 Oracle에서 임원(Director)으로 스카웃 제의가 와서 이직하게 되었다.

세 번째 회사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인 Oracle에 임원급으로서 6년동안 근무를 하면서 공공서비스실장, 전략솔루션실장, Asia Pacific Architecture그룹장을 맡게 되었다. 공공서비스실장을 맡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재는 Application팀을 맡고 있던 서인원(Irene Suh) 팀장이다. 국내에서만 묶어두기 아까운 글로벌 인재라 본사(HQ)근무를 추천을 했었고, 미국 오라클 본사로 스카웃되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저널 대표를 맡고 있는 서인원 대표는 다양한 분야에 활약상이 크기에 앞으로의 행보에 많은 기대가 된다. Oracle 공공서비스실장을 맡으면서 Public Application은 SAP을 뛰어넘어 90%이상의 M/S를 차지(서인원팀장이 기반을 마련해 놓은 덕분)하였고, Public Platform중 DB의 M/S는 Worldwide Oracle중 TOP수준이었다. 이것이 인정이 되어 SK C&C에서 공공전략사업을 총괄하는 상무급으로 스카웃 되었다.

네 번째 회사는 SK C&C에서 상무급(Vice President)으로 7년동안 공공전략사업본부장, 전략마케팅본부장을 맡게 되었다. 공공전략사업본부장을 하면서 공공사업의 경영실적이 3배이상 획기적으로 향상이 되었다. 회사의 가장 핵심조직인 전략마케팅본부장을 맡으면서 기존조직인 사업기획팀, 사업개발팀외에 전략마케팅팀, 전략제안팀, 품질관리팀, Delivery Center를 신설하여 회사의 기틀을 세웠다. 중요한 성과로서는 만성적자인 외부사업(공공, 금융)을 2009년부터 흑자로 전환시켰고, 후발주자였던 금융사업과 외부 OS(Outoourcing)사업을 국내 M/S 1위로 만드는데 기여를 하였다. 그 당시 4명의 팀장중 3명(정풍욱 상무, 도지헌 상무, 이기훈 상무)이 임원으로 승진하여 현재 SK C&C를 이끌어 가고있다. 현재 SK C&C주가(26만원/액면가 200원)를 똑 같은 액면가로 기준으로 할 경우 삼성전자주가(113만원/액면가 5000원)보다 6배 정도 높다.

2011년 하반기에 포스코ICT에 허남석 사장님께서 삼고초려를 하여 스카웃 제의를 하셔서 포스코ICT 전무인 그린사업부문장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을 결심한 것은 포스코ICT는 ICT회사인 포스데이터와 엔지니어링 회사인 포스콘이 통합이 되어서 융합신사업의 새로운 도전에 매력을 느꼈고, SK C&C에서의 나의 역할을 다하였고 부하직원인 팀장들을 임원으로 승진할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 회사는 포스코ICT에서 전무급(Executive Vice President) 부임하여 3년간 그린사업부문장(컨버전스사업본부, 건설 SOC사업본부, 환경에너지사업본부, 철도교통사업본부)을 맡게 되었다. 새로운 먹거리 사업을 발굴하는데 주력하여 에너지효율화 사업(FEMS/BEMS/HEMS), 마이크로그리드(ESS)사업, 전기자동차 인프라사업, 신재생에너지사업, Smart ID Card사업등... 최근에 융합신사업으로 부각이 되는 신규사업을 5년전에 사업개발을 하여왔다.

Q : 인생에 중요한 점은?
A : 나의 인생신조인 "기업을 경영하듯이 인생을 경영하라"이다. 우리는 기업을 경영하는데 조직적으로 경영비전, 경영전략, 경영계획, 경영관리를 하는데 반해, 개인의 인생설계를 위하여 대부분이 체계적으로 인생비전, 인생전략, 인생계획, 인생관리를 하지 않는다. 개인의 인생도 체계적으로 인생을 경영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본다.

Q :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어떻게 극복했는지?
A :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인생비전을 설정하며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95년에 효성그룹에 경영전략 컨설팅을 일본의 "야하기 세이찌로" 컨설턴트와 공동으로 컨설팅을 하면서 인생경영에 대하여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인생비전, 인생전략, 인생계획, 인생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며 살게 되었다. 그 당시 인생의 비전은 제1의 인생은 산업계에서 50대 중반까지 열심히 뛰고, 제2의 인생은 대학에서 50대 중반 이후부터 후학을 양성하는데 주력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인생에 있어서 20권의 저서를 남기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까지 11권의 저서를 남겼으니까 앞으로 9권의 저서를 더 남겨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직장을 이직할때에 항상 스카웃 되어서 옮기게 되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포스코ICT 주주총회에서 재연임이 되지 않아 퇴직을 하였을 때이다. 대기업 임원을 맡고 있다가 갑자기 퇴직을 하면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분노를 없애는데 1년 이상이 걸리지만, 나는 3일만 집에서 쉬고, 여의도에 한국스마트융합연구원을 설립하여 일에 몰입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었다. 산업계에서 17년동안 임원을 하면서 비서, 운전기사의 지원을 받으며 편하게 살다가, 몇개월간 직접 모든 것을 셀프로 하면서 속도위반 딱지를 끊기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오랜만에 타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중요한 인생경험을 하게 되었다. 현직에 있다가 퇴직을 하면은 90%이상이 떨어져 나가는데, 퇴직을 했어도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재기 할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 동안 인생을 헛살지 않았구나 느끼고, 주위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Q : 여가시간에 하는 취미는? 스트레스 푸는 본인만의 방법은?
A : 아침마다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한 후에 출근하고, 휴일에는 등산과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자연속에 흠뻑 빠져들면 피로가 풀린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일외에 독서, 운동, SNS등 다른쪽으로 몰입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Q : 같은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그리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말은?
A : 아직은 50대 중반이라 100세까지 갈길이 멀지만, 산업계에서 27년동안 제1의 인생을 살면서 경험상 성공요인과 아쉬운점을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나의 인생 경험상 성공요인으로 첫 번째는 "전략적 인생"을 삶으로서 개인의 상품가치를 높여 회사 이직시마다 스카웃 되어 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도전"을 즐김으로써 신규업무(회사내에 해본 사람이 없고, 힘든일을 적극적으로 대응)를 완벽하게 완수하여 경영자에게 인정을 받았다. 세 번째는 "열정적 자세"로 작품을 남긴다는 자세로 일을 재미있게, 신나게하고, 경험을 책으로 남기었다. 따라서, 이직할때마다 새로운 회사에서 획기적인 경영실적을 기록하였다. 네 번째는 "윤리적 경영"의 정도경영으로 소신껏 업무를 함으로써, 다섯 번의 인생의 위기를 정도경영으로 극복할수 있었다.

나의 인생 경험상 아쉬운 점으로 첫 번째는 "내부 정치력" 상사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내부 정치력을 무시하여 손해를 많이 보았다. 두 번째로 "교감 리더쉽"으로 조직내 반대세력도 포용할수 있는 가슴이 필요하다. 반대세력은 무능해도 되게하기 힘들어도 않되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로 "적응 문화력"으로 조직문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혁신에도 기존문화를 절대로 무시해서는 않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