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 사무총장

정직 과 성실로 솔선수범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의 별명 '반반' 의 의미는? 반기문 총장의 반만 따라해도 성공한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스탠포드 대학에서 만났다. 연간 지구를 수십바퀴 돌아야 하는 극한 스케쥴을 소화해 내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유머와, 특유의 차분함,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그의 친절한 태도가 인상깊었다. 그는 외교관 역임 후 외무부 장관에 올랐고, 2006년 제 8대 UN 사무총장에 선출된후 2012년 만장일치로 재임되었다. 필자는 그의 UN 사무국의 모든 구성원 및 회원국들과의 편안한 소통방법, 한국인 특유의 근면하고 끈기있는 모범적인 행보가 인상깊었다. 또한 그가 세계 곳곳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깊은 자비심을 갖고 분명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펼치며 세계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참된 리더임에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반기문 총장은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하버드에서 석사를 마쳤고, 2008년 서울대학교 명예외교학박사, 페어리디킨슨 대학교 명예박사를, 2010년 난징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및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 대학교 외교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때 부터 미군부대에서 나온 타임(Time)지를 보며 영어를 익혔다. 충주고 2학년 때 미국 적십자사에서 주최하는 영어경시대회에서 최고점수를 받았다. 부상으로 비스타(VISTA, Visit of International Student to America)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미국에 가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고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 깊이 감동받은 것을 계기로 외교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후 외무부(현 외교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그는 녹조근정 훈장, 홍조 근정훈장, 무궁화 훈장을 받았고, 오스트리아, 페루, 브라질, 필리핀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훈장 및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2013년 포브스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에서 한국인들 중에 가장 높은 전세계 32번째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다.

그는 정직과 성실을 평생 신조로 살아가고 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에 유창하다. 그는 온화하고 넉넉한 기품으로 인정받는 아내 유순택씨와 결혼해 아들 반우현과 딸 반선용, 반현희를 자녀로 두고 있다. 현재뉴욕 맨해튼 이스트 허드슨 강변의 조용한 주택가인 '서톤 플레이스'의 관저에 가족과 거주하고있다.

2006년 그가 UN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그의 당선을 예상한 외신은 거의 없었다. 7명의 강력한 후보들과 겨뤄, 1, 2, 3차 투표를 거쳐, 마지막 4차 투표에서 15개국중 14개 개국의 지지를 받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2007년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그는 비대해진 유엔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엔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하며 UN의 활동의 도약을 시작했고, 2011년 6월 반 총장은 인류평화를 위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상 이례적으로 유엔 총회에서 192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UN사무총장직에 재선되었다. 전세계 UN 평화군은 11만 5천명에 이르며, 193개의 회원국, 73개의 사무국, 산하기구등이 있고, 6만 3,000여명이상의 직원이 있으며, 본부에만 거의 8,000여명 이상의 근무자가 있으며, 매년 5조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한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솔선수범이다. 사무총장이 된 직후 UN 직원들과 회원국에 던진 첫 마디도 본인부터 모범을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나를 주시하라. 만일 내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내게 그 부분에 대해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한다."고 항상 자신있게 강조한다. 그는 유엔에 윤리국을 신설해 유엔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과 기금을 윤리국에서 감독하고 검토하게 했다. 회원국들의 자금 조달 부분을 훨씬 더 철저하고 정밀하게 조사하도록 해 투명하고 청렴한 운영으로 신뢰받고 있다.

반기문 총장의 집은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자 서예 실력이 뛰어난 너그럽고 융통성있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엄격했다. 청렴했던 아버지는 그에게 온당한 일을 하도록 끊임없이 가르쳐주었다. 혹여 잘못을 하면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곤 하셨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때 겨우 여섯살이었고 학교 건물이 다 부서져서 땅바닥이나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공부를 했었다.

그는 영특하게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에게 헝가리 국민봉기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소련군이 헝가리를 무력으로 침공했기 때문이었다.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유엔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며 UN과 첫 관계를 맺었다.

1971년 결혼한 아내 또한 아주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그의 아내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와 아내는 충주고와 충주여고간 학생회장단 간부 교류로 처음 만났고 결혼 당시 가진 것이 없어 생활비 걱정이 많았다.

그는 하버드에서 공부하며 업무태도와 외교정책을 새롭게 다듬었다고 밝힌다. 하버드의 교육방법은 한국에서 접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보다 미래 지향적이고 분석적이며 현실적인 주제나 주요 시사문제등을 놓고 토론을 많이 했다. 기억나는 주제로는 대통령에게 딱 2페이지로 뭐라고 충고하겠는가? 등이었다. 길게 10페이지를 쓰는것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요점정리 방법으로 UN에서도 회원국들이 두꺼운 보고서를 제출하면 최대 13장 이하로 요약 정리해, 공식 공용어인 아랍어, 중국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로 번역해 업무를 처리한다.

한국에서 근무할때 그는 '기름장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날선 기자들의 질문을 요리 조리 잘 피해가며 꼬투리 잡힐 일을 전혀 만들지 않아서 붙은 별명이다. 한국에선 기름장어로 통했지만 뉴욕에선 테플론 외교관(Teflon Diplomat-프라이팬의 코팅시 사용되는 특수 물질)이란 새로운 별명으로 불리며, 그는 어떠한 질문과 공격도 잘 피하는 능력자 였다. 이제 사람들은 반기문 총장의 별명을 '반반' 이라고 한다. '반기문 총장의 반만 따라해도 성공한다'는 의미다.

지난번 스탠포드대학에서 있었던 UN 70주년 기념 강연에서, 한국에 미 대사로 부임했었던, 캐슬린 스테븐스는 반기문 총장이 세계의 자유와 평등에 촛점을 맞춘 탁월한 지도력으로, 지구온도 변화, 인권문제, 각종 분쟁의 해소, 재난지역 구제활동등 수많은 활동에 숨돌릴 틈없이 발벗고 뛰며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전하며, 반총장은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일제 침략과 전쟁을 겪었기에 누구보다 강한 인내력과 추진력으로 전세계 도움이 필요한곳마다 최선을 다해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모습에 감동받았고 깊이 존경한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총장은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가난을 극복할수 있도록, 성차별이 없어지도록, 어린 아이들이 말라리아등 예방가능한 질병으로 죽음을 맞는것을 줄여 갈수 있도록, 여성들이 임신관련하여 치료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것을 줄이고, 각종 분쟁과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UN뿐 아니라 각국의 지도자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할 수 있도록 불철주야 뛰고있다.

그는 "Eighty percent of success is showing up."란 말을 믿으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자제를 해야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끊임없이 전진해야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힘든 과정이기에 성공을 위한 방법이라고 하면 누구나 관심을 보이는 것이겠죠? 하지만 성공의 8할은 일단 출석하는데서 온다고해요. 성공을 꿈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움직이라는 것이겠죠?"

자랑스러운 한인 반기문 UN총장이 남은 임기를 더욱 훌륭하게 수행해 나갈것을 믿으며, 우리 한인 후세들이 반기문 총장의 삶에 도전 받아 그의 모범적인 솔선수범의 정신과 불철주야 불사하는 성실한 행동을 반 만 이라도 따라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