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엔지니어, K-Group 공동 회장 양세영 박사

겸손히 주변을 섬기는 피스메이커 양세영 박사 애플 엔지니어, K-Group 공동 회장

양세영 박사를 그의 직장인 쿠퍼티노 애플사 근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평안한 얼굴과 서두르지 않는 차분한 태도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보통 엔지니어에 특히 이공계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에 대한 선입관중의 하나가 남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무척 부족하다는 것인데, 양 박사는 엔지니어계통의 박사임에도 무슨 모임이나 어떤일에도 차분히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항상 고개를 끄덕이며, 겸손한 자세와 활짝 열린 마음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의 나이에 걸 맞지 않게 여유있고 유유자적하는듯한 아름다운 품성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사뭇 궁금했었다. 양 박사와 차를 나누며 그와 그의 가족들과 그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양세영 박사는 서울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여장부 스타일의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 3째로 태어났다. 큰 야망이나 욕심이 없이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아버지께서는 자녀들 교육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으셨고, 학업을 스스로 하게 방임하셨다. 양박사는 과외과목이나 특별 레슨등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고, 한국식으로 정형화된 틀 안에서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고, 착실히 살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3년정도 부모님과 브라질에서 거주하게되었는데 그때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를 조금 익혔다. 그후 한국에서 모든 학업을 마쳤다. KAIST에서 기계공학과 학부, 석사, 박사를 모두 마치고, 도미해 MIT 에서 포스닥을 마쳤다.

양 박사가 어릴때 뚱뚱해서 친구들이 '뚱세영'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 그 별명에 반감을 갖지 않고 같이 웃으며 즐겼더니 친구들이 쉽게 다가오고 좋은 관계를 많이 맺을수 있었다. 그때 그는 본인을 낮춰야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때 수학과 물리가 재미있어서 별 생각 없이 공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KAIST 에서 기계공학과가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워서 아침잠을 15분 정도 더 잘수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는데, 다보니 재미가 있고 열심히 하다보니 지금은 아주 만족하고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어떤 결정을 내리던 즐기고 최선을 다하면 만족과 기쁨을 얻을수 있다고 한다.

석사과정에 있을때 메릴랜드 대학으로 4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오게되었는데, 그때 우물안의 개구리가 넓은 세상에 튀어나온듯한 느낌을 확 받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로 살아가며, 가치관과 이념이 한국내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것을 깨닫게되었다.

한국에서는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가는것을 당연시 여기며 앞만보고 미래에 대해 특별한 고민과 구상이 없이 다음 단계로 다음단계로 이동을 하곤 했는데, 메릴랜드 대학교수들과 다른 학생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직장은 남을위해 일을 해주는 것이니, 너를 위해 무슨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였으며, 스타트업을 지속적으로 구상하는것을 독려하는 분위기 였다.

결혼후 아내의 가정분위기가 양박사의 가정분위기와 사뭇 다른점에 놀랐다. 뭐든지 스스로 해야 했던 양박사의 가정과는 달리, 아내의 가정은 부모님이 한시간 반이 걸리는 대학에 자가용으로 아내를 매일 통학을 시켜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실 정도로 자녀들에 대한 희생과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시다. 결혼후 6개월정도 대전에서 거주하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버스를 타고 고속전철을 타고 가려고 했는데, 새벽 6시마다 장인어른이 고속전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태워다주셨다. 처음에는 너무 죄송하고 낯설고 어렵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고 좋은 가정분위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양세영 박사가 KAIST 박사학위를 마치고 삼성에 취업해 4년간 근무했다. 당시 신입사원 교육자료내용에 미래의 비지니스중 특허 비지니스가 아주 유망하며, 좋은 사례로 테세라(Tessera)가 소개되어있었다.
미국에가서 일을 하고 싶어 아내와 의논했는데, 별로 외국에 대한 환상이 없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왜 꼭 미국에 가서 살아야 하는지 목표가 뭔지 잘 정리해서 알려달라'고 했고, 그때 비로서 구체적으로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왜 미국으로 와야 하는지 머리속으로 정리를 해서 10가지의 이유와 목표를 정하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그때의 계획과 목표대로 살아가고 있다. 첫번째 목표는 한국에는 없는 특수 분야에서 일하며 배우고 싶다 는 것이었고, 두번째 목포는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일하며 배우고 싶다는것 이었다. 먼저 MIT 에서 포스닥과정을 밟게되었다.
박봉에 학교 의료보험을 들 수 없었고, 극빈자 무료 의료보험 승인을 기다리던 와중에 하필이면 첫째 아이가 3살때 발에 금이가게 되었다. 병원에서 석고붕대를 하면 아이가 편하게 나을수 있는데, 병원에 갈 여력이 없었고 다. 한국에서 석고 붕대를 우편으로 긴급히 공수해와 응급처치를 하며 아내와 많이 속상해 했던 기억이 인생중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MIT 에서 포스닥을 마치고 산호세에 있는 원하던 테세라에 입사를 했다. 테세라에는 특허관련하여 특허 변호사와 또 관련된 엔지니어들도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그가 대학원때 4개월 정도 미국의 대학에 있어본 경험만으로, 회사에 바로 적응하는것이 쉽지는 않았다. 미팅때 마다 백인직원들이 만나 업무이야기에 앞서 스포츠 이야기나, 각종 다양한 쟝르의 잡담들을 하며 유쾌하게 다들 웃는데, 알아 듣기도 힘들고 별로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모두 웃으니 안 웃을수도 없고 난감한 적이 많았다. 함께 일하는 팀원 뿐 아니라 회사 전체를 보면 거의 백인이어서 김치나 마늘등은 주말에만 먹고, 주중에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몇년간 힘들게 적응했던것이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후 그는 두번째 목표였던 세계 최고의 기업, 애플 사에 입사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며 배우고 있다.

양박사가 새로운 미국의 문화에 접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졌듯이, 그의 초등학생 딸과, 3살된 아들에게도 두개의 문화를 모두 접하게 하고 싶어서, 매년 여름방학 2개월은 아내와 자녀를 한국에 거주하도록 한다. 딸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또한 한국의 문화를 어느정도 깨우치는것 같아 좋은 반면,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떠난뒤 한 1주일 정도는 혼자만의 자유가 편안하고 좋다고 생각이 되다가도 나머지 7주간은 정말 외롭고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그리고 한국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그가 배려를 하고 있다.

양박사는 카이스트 동문회 총무를 수년간 하면서 각종 행정적인 일들을 잘 진행했었고, 요즘은 미주 한인 엔지니어그룹인, K-Group에서 구글의 전지운씨와 함께 제 8기 공동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K-Group은 2010년경에 약 1,000여명정도 등록되었었는데, 2015년 현재 약 3,200 여명의 회원이 있다. 매년 컨퍼런스, 세미나, 피크닉, 소 그룹별 모임등이 약 170여회 정도 개최되고 있다. 특별 스폰서를 거의 받지 않고, 자발적인 회비로 모든 경비들을 충당하는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발적 참여와, 봉사로 모든 행사들을 치룬다. 공학에 입문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이 있는지 묻자, 양세영 박사는 공학은 글로벌 유니버설한 분야로 적극추천한다고 말한다. 또한, 공학도는 시야를 넓히고 세계로 나가고, 다른 문화에 접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엔지니어로서 힘든점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 변화나 트랜드를 공부해야 한다는점인데, 지속적으로 공부하면 자연스레 기술 리더십이 생겨, 엔지니어로서 비교적 쉽게 본인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될수 있다 .

양세영 박사는 인생에 있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현재는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많이 형성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여 커뮤니티 봉사를 많이 하고 최대한 베풀고자노력한다. 사람을 만나는게 재미있고, 새로운 또는 친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과 의견을 나누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고 한다. 여러 대인관계중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바빠도 가족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개인적인 꿈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후회없게 사는것인데, 좋아하는 사람은 가족으로 찾았는데, 좋아하는 일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후회를 안하기 위해, 호기심이 생기는 일,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것은 참지 않고 나중에라도 꼭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전 아내와 국제시장 영화를 보며 눈물이 났다고 하는 순수하며 감성이 풍부한 공학자 양세영 박사와 초 긍정적 마인드로 씩씩하고 용감하며 유쾌하게 생활하는 그의 똑순이 같은 아내 이소희, 그리고 깜찍한 독서왕 딸 서연, 의젓한 아가 정욱 그의 가정에 언제나 웃음꽃이 만발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