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벌 (Carpenter Bee) 처럼 살고 싶은 꿈나무 양 유진(Cabee Yang)

샌프란 시스코 저널 스튜디오에서 양유진 (Cabee Yang)씨를 만났다. 화사한 외모에 쾌활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누구에게나 깊은 호감을 줄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현재 모습은 이제 막 피어나려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의 작은 꽃봉오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기 발랄하며 두려움 없이 꿈을 향해 돌진하는 열정과 포부에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소중한 지난 삶과 그녀의 마음가짐과 생각을 알아갈 수록 나의 얼굴에 미소와 함께 멋진 무대의 커튼이 막 올라가려는 찰라에 느끼는 충만한 기대감이 가슴속에 무한히 번졌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양유진(Cabee, 이하 '카비')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와 전형적인 가정주부인 어머니사이에 1남 1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해외파견 근무가 많으셔서 어릴때는 자주 뵙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남매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고등학교 하교때면 어머니께서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밥을 정성껏 준비해 학원으로 차로 데려다 주시며, 매일 따뜻한 식사를 할수 있게 저녁밥을 정성껏 준비해 해주셨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파견지였던 홍콩의 마카오에서 가족과 함께 몇년간 살았는데, 친구들과 정말 즐겁고 좋은 추억들이 었었던 경험으로 한국이외의 국가에 관심이 많아졌고 타국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세화여고 2학년 시절 서초구청의 청소년 리더쉽프로그램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3학년때는 서초구청 청소년 리더쉽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소년 리더로 발탁되어 서초구청의 모든 지원을 받아 필리핀의 수많은 섬중에 하나인 '나보따스'라는 섬에서 10일간 봉사활동을 가는등, 한국의 교육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파격적인 경험에 도전을 많이 하며 적극적으로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때, 우연히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한 '모발 기부'에 대한 소식을 접한뒤, 모발이 다른 어린이에게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미장원에 가서 모발 기부용으로 머리를 잘랐다.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길게 머리카락을 잘라내어야 하므로, 귀 위 쪽으로 모든 머리를 싹뚝 잘라야 했다. 머리카락을 협회에 기증하고 기쁜 마음에 학교에 간후, 다른 학생들이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학교에서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카비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할수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친구들도 많이 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기부를 하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다.

수능에서 실패를 했고, 재수하기 보다는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고자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남가주 얼바인 지역에서 컬리지에 바로 들어갔고, 1년 반 후에 UC 버클리로 편입했다. 컬리지에 있을때, 영어를 익히기 위해 시간이 남으면 버스 정류소로 갔다. 대부분 버스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앉아들 있는데,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사람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영어도 익히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도 있었다. 또한, 컬리지를 다니는 1년 반 동안 5개의 동아리 활동에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UC 버클리로 편입한뒤에도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하고, 무슨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했고, 가능한 아끼며 살고 있다. 학생들간에 재활용품을 서로 나누는데서 $2~$5 정도의 옷을 주로 사입는다. 학교 혹은 지역에서 행사 혹은 장학금 혹은 컨테스트 등이 열리면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참여하여 장학금도 많이 받고, 자원봉사 활동도 많이 했다. 또한 한 학기 마다 댄스 과목을 하나씩 수강했다. 살사, 스윙, 탱고등등을 학교에서 배우며 운동효과 뿐 아니라 즐거움과 사교와 매너등을 함께 익혔다. 탱고를 추다보면 발이 엉키게 되는데, 인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엉킬수 있지만 서로 이해하고 배우고 연습하고 다시 추면 더 멋지게 출수 있는점이 닮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최근에 있었던 그녀의 23번째 생일에 특별한 이벤트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졌다. "Free Hug to exchange a good life advise" 그녀의 생일에 그녀에게 삶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주고 그녀는 감사의 마음으로 따뜻이 안아주는 행사였다. 많은 좋은 조언을 얻었고, 혹시라도 마음에 힘든일이 있었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었다.

그녀가 스스로 이야기 하는 그녀의 세상 바라보는법을 아래에 이어지는 그녀의 글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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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 사람이 부자일까?" "자동차를 탄 사람이 부자일까?" 라는 질문에 스쳐 지나가는 실바람도 즐길 줄 아는 자전거 탄 사람이 부자라고 대답하는 UC버클리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있는 재학생 양유진이 세상 바라보는 법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 - 나 자신을 먼저 아름답게 가꾸기

브랜드 좋아하시죠? 셀프브랜딩을 해봐요! 같은 종목도 다양한 브랜드로 판매되어있어 고민될 때, 잘 알려진 브랜드에 눈길이 가기기 마련이다. 하물며 별 차이 없어보이는 재질도, 이름에 따라서 더 특별하게 보이는 효과도 있다. 비단, 물건에서만 이름이 중요하게 작용되는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김없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처럼, 상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만큼, 이름은 그 사람의 전부를 의미한다. 하물며, 김춘추의 시 <꽃>에서 그대의 이름을 불러 준 순간, 나는 하나의 꽃이 되었다고 표현 할 만큼, 이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기능을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중추 역할을 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부모님의 바람과 뜻을 담아 내게 "양유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스무 살 까지 부모님이 지어주신 아름다운 한글이름을 갖고서 살아왔다. 그런 내게 새 출발을 앞두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나의 영어이름을 짓는 것이였다. 부모님의 바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바람과 뜻을 담은 내 이름을 짓는 것이 내겐 어떤사람이 되어야하는지 목표의식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지은 영어이름이 페이스북에 치면 단 하나의 이름이 나오는 Cabee 이다. Carpenter Bee/호박벌의 약자를 따서 내마음대로 지은 내 이름. 몸통에 비해 날개가 작은 호박벌은 과학적으로 날 수 없는 날개 구조를 가졌다고한다. 그런 호박벌이 일주일에 1600 km날아다니며 꿀을 모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호박벌 스스로 자신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게 때문이다. 이 짧은 설명이,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유학준비를 하던 내게 하나의 강렬한 빛으로 다가왔다.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실패할거라고 위협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의 호박벌이 되고싶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제약에 스스로를 제한하고싶지 않았다. 호박벌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않은 채 도전하고 싶었다. 내것이지만 남이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내가 초심을 잃을 때마다, 뜻도 모른채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위로받으며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않게 된 이유는 스스로를 호박벌로 정했기에 끊임없이 날갯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의 가치는 명품가방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가치관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법 - 상대방을 통해서 내 자신을 찾기

"이정도 까지"가 아니라 "이렇게 까지"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았을 때가 있다. (물론 현재진행형-) 가만히 숨만 쉬고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빠져나가는, 학비, 방값, 통신비에 머리가 아찔해지며 내가 지금 위치에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경험해봐야겠다는 의지로 불탔었다. 일상에 안주하지 않기위해 매 달 스스로한테 미션을 주고, 쉬운 수업이 아니라 듣고싶은 수업을 찾아듣고, 안된다는 거절을 받고서도 과감히 찾아가서 대학원 수업을 듣고야 말고, 남들보다 두배로 많은 수업을 들으면서 일을하고, 리서치를 하고, 그리고 하나의 팀을 이뤄 아이디어를 짜내며 한 학기동안 수업을 준비하고 가르치면서 늘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장기적인 일 뿐 아니라, 단기적인 봉사활동이나 아르바이트도 기회가 주어지면 닥치는 대로 했었다. 자갈퍼기, 집 공사하기, 베이비시터, 통역 등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자산은 바로 "사람"이였다.
새로운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로부터 영향받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였다. 나는 아주 어릴 때 부터 사람이 좋았다. 낯가림이 전혀 없었던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거에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고, 금새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료되고만다. 어릴 적 날아다니는 슈퍼맨이나 아무거나 변신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나오는 책들을 보며 사람들이 지나가다 앉아서 쉬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벤치가 되고싶어했을 만큼 나는사람들의 이야기에 호기심 넘쳤고 늘 세상과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싶어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힘이 있었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나의 추억이되고 평생의 기억으로 남곤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새로운 여행지에서 만날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기 때문이다.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라는 말 처럼, 친구없이 혼자 여행을 가보면,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주려고한다. 최고의 동기부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생겨난다.

나 자신과 맺는 건강한 관계 - 절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단 한가지.

학교를 다니다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재밌어요?" 연애하는 친구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사랑이 뭘까?" 내 대답은 간단하다. "재미는 만드는거고, 사랑도 너가 정의하기 나름이야"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성공이 뭐에요?" 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내가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다. 나 역시 다른사람들과 사회의 잣대로 인해 내 기준이 모호해 질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 다운 나라는 게 뭔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이력서를 쓸 때, 취미생활은 자기계발, 특기는 미소짓기 라고 쓴 적이 있다. 한치의 거짓도 없이 고민없이 당당하게 쓴 것이였다. 눈 앞에 지나가는 수많은 자동차의 종류에는 무관심하지만 발길에 닿는 풀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그맣게 피어난 꽃들의 꽃말에 관심이 많은 나. 나를 위해서 하기 보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 더욱 효율이 높고, 사람 속에서 사람을 위해서 사람과 함께할 때 활력이 생기는 나를 보고나면, 내가 어떤사람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다른 사람과 연애하듯 나 자신을 알아가보고 사랑해주고 나 자신과의 연애 역시 중요하다. 사랑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크게 더 많이 나눠줄 수 있듯이, 스스로를 아껴야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된다.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졸업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만의 분야의 길로 걸어갈 때 잊지않아야 할 한가지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한다는 것. 우왕좌왕하고 혼란스럽고 실패해도 괜찮다. 그 것 역시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나의 이상형 - 나와 또다른 누군가의 연장선,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른사람의 꿈이 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다음으로 곤혹스러웠던 질문은, "이상형이 뭐야?"라는 질문이였다. 어떤 유형의 남자가 좋아? 라는 질문임에도 나는 항상 내가 만나고싶은 남자보다 내가 되고싶은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이전에 나부터 좋은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하고싶은 일도 배우고싶은 것도 너무 많아 무엇을 해야할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 와중에도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는 확실했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인성과 자질을 평가해야하는 인터뷰 자리가 있다면 얼마큼 성공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질문을 생각해냈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기회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가 아닌,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는가? 처음 대학교를 들어와서 연합동아리에서 막내였던 내가 팀장을 맡아서 한 학기동안 팀원들을 이끌어 갔던 경험이있다. 여섯 살이 훌쩍 차이나는 선배님들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의견이 귀 기울여 주셨고 응원해주시고 잘한다고 계속 칭찬해주셨다. 덕분에 한 학기동안 우리팀은 가장 많은 참여율을 보여줬고 좋은 성과로 마칠 수 있었으며, 타 그룹의 부러움을 받는 그룹이 되었다. 늘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응원해주셨기에 나는 학기가 끝나가도록 내가 정말 잘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고 더이상의 팀장과 팀원의 관계가 아닌 선후배로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 하나같이 다들 훌륭한 리더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누가 맡아도 나 만큼 잘 할 수 있었지만, 막내였던 나에게 성장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였다. 그 후로, 성공의 기준이 바꼈다. 나 혼자 주목받고 빛을 발휘하는 거에서 그치지않고 누군가에게도 기회를 제공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성공의 기준이 확장된 것 이다. 나 역시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맡은 자리에 누군가를 추천해주는 자리가 생길 때가있다. 누군가를 추천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그 첫 순간의 짜릿함이 아직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나서서 다 해결하기보다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후배가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볼 때마다, 그 친구의 열정 속에서 과거의 내가 보이고, 현재의 내 모습에서 그때 나를 든든히 지켜봐주시던 선배들의 모습이 떠오르게된다. 살면서 어떤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어떻게 잘 살렸는지 보다는, 다른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줬는지를 물어본다면 자신이 얼마만큼 노력해왔는지 뿐 아니라 성공을 나눌 줄 아는 성품도 겸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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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를 직접 만나야만 확실히 느낄수 있는 생생한 활력의 에너지를 그녀의 글을 읽는 모든 분 들이 조금이나마 느끼며 새로운 열정을 우리의 삶에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