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40개국을 여행한 여의사의 색다른 삶 내과 전문의, 김 소라

밝은 성격에 몸에 깊이 배인 겸손함과, 서글서글한 외모를 가진 김소라씨를 샌프란시스코 저널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화여대 의대 졸업후 병원에서 근무하다 도미했고, 계속 내과의로 근무하다, 현재 한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많이 논리적이고 조금은 냉정하며, 자신의 커리어에 몰입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며 살아왔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그녀를 마주했는데, 의외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돈키호테 같은 성격으로 다양하고 색다른 많은 경험과, 반듯하고 바람직한 정신자세로 무장되어있어 인터뷰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녀를 인터뷰하며 나의 삶의 자세를 다시한번 가다듬을 수 있는 훌륭한 도전을 받았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김 소라는 서울 대치동에서 사업을 하는 자상한 아버지와 전통적인 따뜻한 어머니의 무남 독녀로 태어나 자랐다. 학창시절에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주는 도시락에 매일 매일 아버지가 손편지를 써서 넣어주시며, 아침저녁으로 포옹해주셨다. 편지에는 "아빠는 우리 소라가 사과를 먹는게 무서워, 백설공주처럼 쓰러질까봐" 등등의 다정하고 재미있는 편지를 매일 써주셨다. 어머니와 그녀는 정말 친한 친구처럼 대화도 끊임없이 많이하고, 쇼핑도 즐겁게 다니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많이 먹으러 다녔다.

그녀가 대학때 한 고등학생을 위해 입시과외를 했는데, 몇개월 만에 이 학생의 성적이 치솟아 좋은 대학에 합격 한 것을 계기로 인기 과외선생이 되어, 경제적으로는 넉넉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간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학생이 훌륭했기에 가능했었다고 강조하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의대 공부라는것이 그녀에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매 학기초 비행기표를 미리 구매해 품고 다니며, 이번 학기만 잘 해내면, 여유롭게 여행을 하리라는 꿈을 갖고 공부를 지속했다. 처음으로 떠났던 여행은 대학 1학년때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대학을 갖 졸업하고 병원에 근무할때 지인의 소개로 라스베가스에사는 남편을 만났고, 라스베가스에 방문했을때 남편과 재회했는데, 그녀와 남편은 20대 중반이었는데, 둘의 사랑이 절실했기에 만난지 두번만에 둘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밤 11시에 미국 유명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결혼식을 올렸던 라스베가스의 "리틀 와잇 웨딩 채플"에서 단둘이 결혼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똑같이 분장한 기사의 리무진을 타고 시내야경을 보며 행복함을 만끽했다. 향후 양가 축복속에 한국에서 한번 더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후 내과의로 근무하며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어느날 남편은 "의사는 정말 좋은 일을 하는것 같아, 당신이 환자를 치료해주면 환자들이 모두들 감사하다고 연신 말하는것을 보니 정말 좋다"라고 말을 하며,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했고, 함께 북가주로 이주해 남편이 한의학을 마쳤고, 그녀는 기초의학등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린나이에 문화가 다른 미국으로 이주해 시부모님과 함께 살때 힘든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전혀 힘들지 않고 너무 좋고 행복했다고 하며, 과테말라에서 온 친구가 알려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과테말라는 멕시코 남쪽에 위치한 나라인데, 그곳에서 출발해 미국의 텍사스까지 이어지는 기차가 있는데 "짐승열차"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기차에 정말 가난해 먹을것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몸을 싣는 사람들이 짐승처럼 가득차기 때문인데, 기차안에도 빽빽히 사람들이 들어차지만, 기차의 지붕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게 올라탄다.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타는 엄마를 비롯해 노약자들도 많이타고, 몇일에 걸쳐서 달리는 그 열차의 지붕에서 사람들이 떨어져 죽기도 하고, 더운 날씨에 돈한푼이 없어 물도 음식도 못먹고 가다가 엄마 품에서 죽는 아이들도 수시로 있다.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다음 정차역에서 뭍고 부모는 울면서 다시 기차에 올라탄다.

이 기차가 지나는 마을중에 "수호천사"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이른 아침부터 콩과 물등 음식을 많이 준비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음식을 모두 들고 기찻길로 간다. 기차가 정차를 하지 않고 그 마을을 지나 달리게 되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음식과 물을 기차 지붕위로, 기차 창문안으로 마구 던져준다. 기차가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주민들도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모두 함께 달리면서 음식과 물들을 기차가 떠날때 까지 기차의 가난한 승객들을 위해 던져준다. 몇일동안 물한모금 못마시는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조건없는 사랑을 던져준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몇일동안 눈물이 나서 음식도 못먹었고 한가지 결심을 했다. 수호천사 마을 주민들은 모르는 남을 위해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해 달리면서 짐승열차에 탄 평생 만날일도 없는 남들을 위해 음식을 아낌없이 던져주는데, 그녀는 적어도 가족들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나마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전기 밥솥을 사지 않았다. 언제나 냄비밥을 새로 지어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린다. 집안의 모든 일은 혼자 다 하고 있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때도, 의사로 근무하면서도 매일 저녁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고, 퇴근후 돌아오신 시아버지가 솥뚜껑을 열며 "오늘은 메뉴가 뭐야" 라며 항상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많이 그립다고한다.

그녀는 결혼초반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께서 돈을 주셔서 주식투자도 많이 하고, 쇼핑도 다니며 쉽게 쓰면서 3년정도 살다보니, 돈에 치중하게 되고, 더욱 욕심이 생기게 되는등 마음이 병드는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과 진지하게 의논한뒤, 부모님과 시부모님께 정중하게 앞으로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고, 언제나 가진돈에 만족하고 지나친 투자는 피하면서 감사하며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

그녀는 서유럽, 지중해, 동유럽, 터키, 중국, 인도, 네팔, 히말라야, 미국전국, 동남아시아등등 40개국을 홀로 다녔는데, 초기에는 유명한 곳들을 다녔지만, 나중에는 동남아를 가더라도 오지의 작은 섬등을 여행하며 언어가 하나도 안통하는 그곳의 사람들과 음식, 신기한 문화를 즐겼다.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지가 어디였는지 물었다. 인도의 "자이살 메르"라는 곳에 남편과 둘이 갔었는데, 낙타를 타고 몇일을 사막을 지나며, 밤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별들이 바로 눈앞에 다 쏟아질듯 가득하고, 따뜻한 모래와, 열대 바람, 토속음식, 인적 없는 적막함이 정말 로맨틱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한번은, 마드리드에 배낭여행으로 홀로 도착해 식당에 막 들어섰는데, 열쇠 하나가 딸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한현지 남자가 영어로 "이 열쇠 니꺼니?" 라고 물어서 "아니"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순간 그 남자와 다른 남자 두명이 어느틈에 식당문밖으로 걸어나가는것을 보았고, 정말 눈 깜짝할 순간에 마술과 같이 메고있던 배낭과, 쓰고 있던 모자, 메고 있던 카메라등이 모두 연기같이 사라진것을 깨달았다. 지갑과 한달동안 사용할 모든 현금, 여권, 비행기표, 카메라등을 모두 여행 첫날 어이없이 잃고는 대사관에 전화하고 부모님께 전화로 알려드린뒤, 어렵게 연결된 현지 지인이 데리러 왔는데, 너무 놀랐겠다며 몇일 동안 배낭여행으로는 갈수 없는 곳곳의 왕궁과 왕실이 이용하는 식당등 국빈들이 방문하는 곳들을 몇일동안 구경시켜주고, 현금도 마련해줘서 더욱 멋진 여행을 모두 마칠수 있었다. 그후 부모님과 한번더 이곳을 여행했었다.

한의학공부를 착실히 마친 남편과 이번달 말에 35일간 유럽여행을 함께 떠난다며 즐거운 표정으로 그녀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여운이 깊이 남는다. 용감하고, 독립적이며,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며, 따뜻하게 가족을 포용하는 작은 거인, 김소라. 점차 나약해져가고 부모 의존적이 되기 쉬운 한인 후세들이 많이 그녀를 본 받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