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고 싶은 국민가수 '음악계의 어린왕자', '아기공룡 둘리', '발라드의 전설' 변진섭
변 진섭, 오랜세월 우리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사랑스런 곡들을 안겨준 그를 오클랜드 퀸즈 라이트하우스(Quinn's Lighthouse)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정감있는 외모에 잘 어울리게 그는 진솔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이 오랜세월 그의 상징이었는데 약간 그을린 듯한 얼굴이 오히려 건강미 넘치고 더욱 젊어 보였다. 요즘 골프를 즐겨치느라 많이 탔다고 하며, 보통 싱글정도 친다고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건강하고 오히려 젊어져가는 그와, 커다란 유리창밖에 가지런히 정박된 요트가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변진섭은 1966년 서울 상도동에서 출생해, 경희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했고, 재학시절 보컬그룹 '탈무드'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1987년 '우리의 사랑 이야기'로 MBC 신인가요제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대중 앞에 첫 모습을 드러내며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1988년 데뷔곡 '홀로 된다는 것' 이 히트 하면서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휘 데뷔1년만인 89년 발표한 2집 앨범에서 '너에게로 또 다시'를 비롯해 무려 10곡의 주옥같은 곡들이 모두 정상에 오르면서대한민국 가요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 백만장의 음반을 판매한 가수이자 단기간에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로 기록되었다. 90년에는 '가수왕'을 차지했다.
90년에는 영화배우 최수종과 함께 영화 <너에게로 또다시>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도 데뷔했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주제곡이 인기를 끌었다. 2008년에 SBS 러브 FM <변진섭의 기분 좋은 밤> 의 DJ 로 활약을 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OST 작업 외에도 TV 음악 토크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등을 통해 8090세대 뿐 아니라 젊은 팬들에게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는 총 11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으며, 가요사에 수많은 기록을 남긴 국민가수다.
돌이켜보면 1988년 여름부터 1990년 겨울까지 적어도 2년 반 동안 한국 사람들은 음악매체를 통해 오로지 변진섭의 노래들만을 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파는 그의 데뷔작이자 상징인 '홀로된다는 것'을 위시해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너에게로 또다시',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숙녀에게',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로라', '희망사항' 등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그의 곡들이 16주간 연이어 가요차트 1위를 기록하는 전무 후무한 기록도 세웠다.
이 시기에 방송사와 신문사가 주는 최고가수상은 모조리 그가 독식했다. 귀엽고 사람 좋은 외모는 대중적 인기를 한층 부채질했다. 심지어 별명이 '아기 공룡 둘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국민적 사랑을 만끽했다.
국민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그를 가수로 만든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학창시절에는 팝송을 많이 들었고, 결정타는 중3때 들은 엘튼 존(Elton John)의 '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였다. 멜로디에 포로가 돼버렸고, 빌리 조엘(Billy Joel)의 'Honesty'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음악에 빠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것들이 다 무의미해졌고, 음악에 마취된것처럼, 고등학교 2학년때 음악에 몰두하게됐다. 고교시절에도 나이를 밝히지 않고 라이브 무대에 서기도 하면서 가수의 길을 향했다고 한다.
변진섭 하면 누구나 그의 1집 앨범에 수록된 '홀로된다는 것'을 가장 먼저 꼽기에, 그는 이 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당시 20대인 그가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하고 주저되는 단조의 우울해지는 성인 트로트 스타일의 곡 이었지만, 기획자, 작곡자, 제작자 모두가 좋아했기에 그 역시 열심히 소화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던 곡이고 발표후에 일약 히트곡으로 발돋움했기에 참 놀랐고 기뻤다고 한다. 2집 앨범의 결정적인 곡 ' 희망사항'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희망사항'을 부록처럼 여겨서 그래서 앨범 마지막 곡으로 수록했고, 콘서트에서 재미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애초 관련자들은 발라드가수로 유지하고 이런 곡은 나중에 라이브에서 재미삼아 하라고 앨범수록을 반대했었다. 그런데, 그가 앨범에 넣자고 고집을 피워 수록되었고, 공존의 히트를 쳤지만, 발라드 가수로서의 그의 색깔이 코믹한 분위기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가장 큰 이유는 좋은 곡을 받아서 부른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대중적인 지점을 딱 짚어낸 곡들인 것 같다. 질리지 않는다는 말들을 많이 듣고 있으며, 옷으로 비유하자면 화려한 파티 복이나 멋진 유니폼은 아니지만, 소박하게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와 같은 느낌이랄까. 몸에 착 달라붙는 옷처럼 편안한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수 초창기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물었다. 그의 아버님이 건물을 하나 지어서 맨위층에 살았는데, 집 바로 앞에 여자 중학교가 있었고, 변진섭이 그 건물에 산다고 소문이 나자, 쉬는 시간마다 여학생들이 몰려오고, 집앞에 항상 학생들이 북적였다. 어느날 교감선생님이 찾아와서 면학 분위기가 조성이 안된다고 간곡히 말씀 하셨고, 아버님께서 건물을 내놓자 일주일만에 팔렸다고 한다.
여학생들이 많이 실망 했었겠다고 하자, 그는 여학생들보다 그가 더 슬펐다고 한다. 왜냐면 자신의 방에 거금을 투자해 마음에드는 인테리어를 다 갖춘후였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 때부터 교복차림의 팬들과 여름캠프를 가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20년 넘게 이제는 모두들 중년이 되어서도 반가운 모습으로 변진섭 여름 캠프에 변함없이 참석해 고마운 마음이라고 한다.
이제 가수로서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미 가수로 많은 것을 이뤘는데, 새로운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10주년이나 20주년이나 항상 목표가 '지금처럼'이었다. 무조건 위를 바라보고 올라가는 화살표와 같은 음악인생도 의미가 있겠지만, 난 수평으로 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늘 팬들 옆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노래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이게 쉬운 것은 아니다. 이 수평을 지키기 위해서도 가수로서 쉼 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만하지 말고, 나태하지 말아야 한다.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가수로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밝힌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공연에 참석하신 팬들에 대한 고마움, 초심을 잃지않으려 노력한다. 타성에 젖지 말고, 노래도 처음처럼, 신인가수처럼 열심히 음정 박자 정확히 맞춰서 마음을 다해 성실히 임하자 다짐한다고 전한다.
그의 노래 '희망사항' 가사같은 청바지가 잘 어울리고, 김치 볶음밥을 잘만들고, 그저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그런 여성과 결혼을 했는지 물었다. 그는 그 질문의 정답은 맞다고 해야되지 다른 답은 없다고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싱크로나이즈 수영선수였던 미모의 이주영씨와 우연히 만나 2000년도에 결혼후, 아들 두명(재성, 재준)을 낳고 가족과 여행을 즐기며 꾸준히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고참으로서 요즘 후배가수들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뭔가 단언할 만큼 내가 도가 트지 않았다'며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뗐다. "후배들이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앨범을 만드는것 같습니다. 하나의 스케줄을 이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면 음악에 입체감이나 혼이 깃들 수 없죠."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해 온 변진섭은 올해로 데뷔 28주년을 맞았고, 미주투어를 하며 헤이워드의 샤봇칼리지에서 라이브 밴드의 선율에 맞추어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 진한 향수와 추억의 음악을 선물해주고 고국으로 떠났지만, 그의 아름다운 곡들은 북가주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항상 소중히 간직될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