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가 들려주는 미국 여행 L.A에서 샌프란시스코 중(3편)

L.A에서 샌프란시스코 중(3편)
Morro bay/Harmony/Cambria/Hearst Castle/Paso Robles

코로나 19가 장기화될수록 여행의 욕구는 더욱 커진다.
어느 신문을 보니 요즈음은 코로나 시대라고 글을 썼던데 왠지 거슬린다. 언제까지 이런 시대를 지내야 되나...
코로나 19 땜 시 여행업은 거의 Close가 되어 필자 역시 근 9개월이나 집콕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집콕도 하루 이틀이지 하도 지겨워서 머리나 식힐 겸 큰 마음먹고 며칠 전 캘리포니아 북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근데 아니 이건 뭐야!

의외로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은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웠다.
모두 다 마스크로 무장들 하고 안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리 무서운 코로나도 여행의 욕구는 막지 못 하는 것 같다. 그래 누가 그랬지 인생에 있어 여행은 삶에 종합 비타민이라고!
미래를 위해 앞으로 코로나가 잠잠 해지면 떠날 곳을 미리 계획을 가져 보자.

1870년에 소를 싣던 항구 도시 Morro bay

이번 호는 샌 루이스 오피스포에서 Morro bay, 하모니 시티, 허스트캐슬, 파소 로블레스까지 달려 보도록 한다. 아름다운 대학과 전통의 도시 샌 루이스 오피스포에서는 1번과 101번 Fwy 나누어 진다. 이번에는 내륙 쪽인101번 보다는 바다가 보이는1번 퍼시픽 하이웨이 쪽으로 나가기로 한다. SLO TOWN을 벗어나자 바로 우측으로 는 Cal Polytechnic State University 라는 사인 판이 보인다. 이 대학의 캠퍼스는 언덕 위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01년 설립한 캘리포니아 주립 공대로서 유명한 대학이다. 이 대학은 공과 대학과 농과 대학도 좋지만 이 중 건축 & 디자인 대학은 5개 학과로 특히 건축공학은 미국 아카데미 랭킹에서 Top을 놓치지 않은 대학이라 알려져 있다. 65개의 학사 과정과39개의 석사 코스 과정으로 6개의 단과 대학으로 중가주의 최고의 대학이라 자부한다. 이론과 실습으로 직업 중심의 교육을 목적으로 여겨이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실무에 들어갈 수 있다. 학생 수는 학부가 22,000 대학원생이 800명이 재학하고 있고 학비도 저렴한 편에 속한다. 최근 들어 한국에도 알려 지기 시작하면서 한국 유학생도 제법 있다고 한다. 동반한 자녀가 있으면 캠퍼스도 들러 보면 좋을 듯. 그림 같은 대학 캠퍼스를 떠나 본격적인 1번 도로의 Main으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왼쪽에는 Beach 오른쪽에는 Mountain으로 길로 넓지 않은 길로 120마일의 절경이 시작된다. 샌 루이스 오피스포 카운티 중 제일 넓은 해변 공원(8,000에이커)과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완벽한 캠프장, surfing의 최적지, 탐험용 코스,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Morro bay로 들어선다. 저 바위가 유명한 Morro bay Rock인가?

아니! 그런데 바다에 망부석 같은 바위와 웬 굴뚝 3개가!!!

왠지 저 바위에는 무언가 숨겨진 명소가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료를 보니 처음 이 섬의 발견은 스페인 Portola 탐험대 인 Alta California 에 대한 유럽 최초의 땅 탐사로 Los Osos Valley를 내려와서 1769 년 9 월 8 일 오늘날의 Morro Bay 근처에 야영을 했다고 한다. 야영을 했던 프란체스코 선교사인 후안 크레스 피는 자신의 일기에서 "우리는 둥근 모로(차돌) 모양의 큰 바위를 보았다"고 썼다. 그래서 Morro Rock은 나중에 그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 Morro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및 이탈리아어 언어에 공통적인 언어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독특하고 눈에 띄는 언덕 모양의 암석이 있는 많은 지명의 일부로 쓴다. 유사한 스페인어 설명 어인 "Moro"는 모양이 아닌 푸른 색을 나타낸다. 이 지역의 주 사업은 전복 사업으로 1940 년대에 어업 산업이 발전 되였다.

1957 년에는 미국에서 제일 큰 전복 사업지가 되였지만 많은 채취로 전복이 감소되자 사향 사업으로 들어선다.

그 대신 바다에는 넙치 , 가자미 , 볼락 , albacore 등 많이 나와 바다 낚시로 유명하다. 많은 한국 분들도 낚시 배를 렌트 해 만선의 즐거움을 찾는 곳이다. Morro Bay의 일부는 주 와 국가 조류의 해양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여러 규제가 엄격 하다. 그런데 우리는 하지 말라는 것은 왠지 더 해보고 싶은 게 우리 아닌가. 여기 우리가 좋아하는 전복과 여러 회감 종류 생선이 많다고 하던데 그냥 지나가기에는 조금 그렇죠. ㅎㅎ 그렇죠 하는 말이 요리사 백종원씨의 말투같다. TV에서 만남의 광장이란 프로를 보니까 이 분이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맛있는 새로운 요리가 탄생하던데 언제 한번 이 분을 모셔오면 대박 날 Sea Food음식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바다 근처에 굴뚝 3개는 왜 있는 거야?

이 굴뚝은 Dynegy 발전소로 1950년에 지어진 발전소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2016년에 폐쇄되었다. 최근 2018년 독일 에너지 회사 EnBW와 시애틀 소재 Trident Wind의 합작으로 최대 100개의 부유식 풍력 터빈과 30개의 변전소로 다시 시작된다고 발표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 근처의 주민들은 근간에 굴뚝에서 연기나는 것을 한번도 없다고 한다. Morro Rock

이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항구 입구에 서있는 274M 높이 (576피트)화산 섬으로 Morro Rock이다. 원래는 이 바위가 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육군 군인들이 육지를 연결하는 항구로 만들면서 북쪽 끝을 가로 질러 대형 인공 방파제 와 도로를 건설했다. 인공 방파제에 사용된 암석 중 일부는 Morro Rock 자체에서 채석되었다. 다른 암석들은 카탈리나 섬 에서 바지선으로 공수했으며 6.4km (4 마일)떨어진 해안과 이어지는 평지의 도로을 건설하게 되였다. 진입로가 좋아 주차하기 편하며 방문객은 가까이 섬을 볼 수 있어 좋다. Morro 바위는 안전 문제로 암석 등반 절대 금지로 허가 없이 할 수 없으며 바위 주변에는 다양한 조류와 특히 송골매가 많이 서식한다.

항구 주변은 많은 선박이 있기에 배경으로 인증 샷 하고 출발하면 Good.

주변의 조그만 호텔들이 보이는데 바다 뷰가 좋기에 아마도 1박에 150불 이하에 호텔을 찾기 힘들 정도로 높다. 이 곳에 숙박을 잡으면 요금은 대 도시에 고급 호텔 값을 지불하고 허름한 모텔에서 숙박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같은 요금이라면 여기보다 조금 더 위에 위치한 샌 시미언의 호텔을 추천한다. 출발하면서 그냥 갈 수 없지. 여기와 어울리는 옛날 노래 송골매의 "연"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면 분위기 UP.

지금부터는 왼쪽에는 파도치는 바다의 경치와 오른쪽에는 높지 않은 구릉진 목장이 있는 그야 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1번 도로를 달려본다. 야! 이런 곳은 뚜껑 없는 오픈카로 달려야 제격이 아닐까!!
바다의 파도치는 경치를 감상하고 15마일 정도 달리면 미국에서 가 장 작은 도시 Harmony City라는 사인판이 나온다.

미국에서 제일 쪼끄만 도시 Harmony와 용감한 시민들이 사는 Cambria

도시 간판에 인구 18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22 명의 주민이 있다고 한다. 우체국도 있고 예전의 작은 예배당 유리 공예 공장, 엔틱의 선물 가게도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안 보인다. 가게 문이 거의 문이 Close 되어 있어 마치 유령의 도시 같은 스산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뭘 해 먹고 살지.

재미 나는 것은 여기 주민은 마을 자치를 위해 한 사람씩 굵직한 굵직한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뒤 산을 보니 어마 어마한 목장의 많은 소를 보며 의문 점이 해소된다. 아 그래서 들어오는 입구에 소를 그려 놨구나. 이들의 주업의 목축업에 종사하며 예 서부의 전통 방법으로 목장을 경영한다고 한다. 이곳의 모습 그대로 볼수 있는 곳은 웹 사이트에 올려 있기에 한번쯤 방문해 볼 만하다 (harmonytown.com)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이 마을은 원래 Harmony Cellars, Glassworks, Pottery 및 1955 년에 문을 닫은 낙농 조합으로 명성을 얻은 유명한 Valley Creamery를 포함한 몇 가지 사업체로 유명하다고 나온다.

하지만 물 하나 살 곳이 없는 곳, 하모니란 도시 이름이랑 다른 느낌. 쪼끄만 도시 하모니에서 약 10분만 더 가면 Cambria 왠지 유럽 이름 같다.

Cambria는 1867 년과 1870 년 사이에 San Simeon에서 28 만달러 상당의 수은이 채굴되어 선적된 호황의 도시였다. 그 당시 Cambria는 부유한 광산 마을이었고 세계에서 6번째로 큰 광산 마을이었다. 하지만 수은 값이 폭락으로 광부 들이 떠나면서 서서히 주 산업이 목재 생산과 목축업으로 바뀌었다. 그후 대 공황으로 불황으로 아주 힘들 때 근처에 Hearst Castle이 건축이 시작 되였다. 이에 주민 대부분이 건설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도시에 활력소가 되였고 또한 Cambria는 허스트 성을 짓기 위해 온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자재 공급, 서비스 및 숙박 시설을 제공하여 10년 동안 번창에 계기를 갖게 된다.

제 2차 세계 전쟁 때 8,000 톤의 유니온 유조선 SS Montebello 가 1941 년 12 월 23 일 이른 아침 일본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던 적이 있다. 이때 Cambria 시민들이 6 명의 승무원을 죽음을 무릅쓰고 모두 구조시킨 적이 있다. 그때 이 들 도움에 생존한 선장 Olaf Eckstrom에 따르면 Cambria의 시민들은 진정한 영웅에 고마움을 각 언론에 발표했다. 그래서 용감한 시민이 사는 Cambria로 알려 졌다. 먹거리 추천은 예전에 손님을 모시고 가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곳 Railroad BBQ 레스토랑이 생각이 난다. 큰 철판에 숯불로 구워주는 스테이크와 잘 익은 소시지에 수제 생맥주는 일품이다. 그런데 스테이크가 조금 타게 나와서 당황했지만 먹어보니 고기가 아주 부드러 와 입에서 살살 녹는다.

Cambria에서 바다쪽 으로 나가면 보석류의 돌이 널려져 있는 Moonstone Beach 나온다.1.6K의 해변에 약40분 정도 바다쪽으로 트레킹 할 수 있는 Board Walk의 시설이 있다. 바다 전망과 해안의 야생 동물을 보며 트레킹 하면 캘리포니아 바다 경치에 다시 한번 감탄 한다. 여기 해변의 모레는 백색이 아님 갈색으로 갈색의 모레 사이에 조그만 돌들이 널려져 있다. 이 돌이 Moonstone(월장석)으로 보석류에 속하며 스리랑카, 인도에 많다고 한다. 그리고 돌의 색이 달과 같다고 해서 Moonstone이라 부른다. 주변에 선물 가계에 가면 Moonstone을 잘 가공한 목걸이와 반지 등을 판매한다. 나도 예쁜 조약 돌 Moonstone을 하나 찾아볼까?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와의 딱 중간 "San Simeon"

여기서 부터 San Simeon으로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와의 거의 중간지점이라 할 수 있다. 바다를 끼고 조금 만 달리면 또 아름다운 그림 같은 도시가 나온다. 특히 오후에 태양이 넘어가는 석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바다에는 조그만 모텔과 호텔이 즐비 해 있다. 최고급의 호텔은 아니지만 바다의 전망은 최고라 본다. 꼭 오셔서 확인 하시길.

저 태평양 바다 넘어 쭉 가면 우리의 고국 한국이 있겠지…

샌 시미언은 예전에 고래를 잡던 곳의 포경선들이 많았던 도시로 주변에 소들을 실어 날랐던 도시였다. San Simeon (성자 시몬의 이름)에서 Santa Lucia 산맥 중턱을 보자면 하얀 스페인의 중세기 성곽이 희미만 멋진 성이 보인다. 저게 뭐 지! 저 백색의 거대한 저택이 바로 허스트 캐슬 (Hearst Castle)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역사적인 성이다. 일반적으로 허스트 캔슬이라고 불리지만 정식명칭은 'Hearst San Simeon State Historical Monument'이다.

신문 왕, 출판 왕 William Randolph 허스트 캐슬

이 성을 지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William Randolph Hearst) 미국 전역에 26개의 신문사, 13개의 잡지사, 8개의 라디오 방송국의 소유주 미국 최대의 출판사를 함께 경영했으며 또한 백여편의 장편 영화를 제작, 그 후에는 정치계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그가 왜 여기 저런 멋진 성을 만들었을까?

그는 1863년, 부유한 광산업자 조지 허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2년 후인 1865년에 성공한 광산업자인 그의 아버지 조지 허스트는 당시 목장이었던 Hearst castle의 대지를 구입하였고 그 산으로 Hearst 가족들은 자주 캠핑을 다녔다고 한다. 윌리엄 허스트의 어머니는 초등 학교 교사였는데 자녀 교육을 위해 아들을 데리고 자주 여행을 다녔다.

허스트가 8세때 유럽 여행중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을때 그때 어머니 치마 자락 잡고 박물관의 미술 작품을 사달라고 졸라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후 유럽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미국 속에 유럽을 만들고 싶어서 많은 미술품과 골동품들을 수집하게 되였다. 그래서 아버지 한테 상속받은 137에이커에 유럽에서 가져온 많은 미술품과 골동품들 보관할 유럽풍의 대 저택을 건축하게 되였다. 건축은 이탈리아에서 건축과 미술을 전공 한 유명한 여성 건축가 쥴리안 몰간에서 설계와 시공을 맡겼다. 허스트의 생각은 유럽의 각 나라의 좋은 성들의 장점만 취합하여 미국에 새로운 유럽 역사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공사기간은 1919년 부터1947년까지 28년 동안 궁전안에 다섯채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50에이커의 대지에 허스트 궁전의 저택들은 거의 유럽의 지중해 식으로 건축되었고 인테리어는 스페인, 멕시코 식으로 감미한 장식으로 설계 되였다. 또 유럽에서 중세의 한 고성을 통째로 구입하여 그 건축물들을 분해하여 배에 실어 가져와서 만들었고 그 때에 도착한 중세의 천장과 벽화와 벽난로, 창문 등이 유럽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허스트 궁전에서 재 탄생되어 만들어 졌다.

La Cuesta Enchanted(손님맞이 언덕)이라고 불리는 3개의 건물과 접대용 저택을 시작으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Casa del Sol (태양의 집)에는 18개의 객실이 있고 casa de Monte(산의 집)에는 19개의 객실이 있다. Casa Grande(대 저택)에는 119개의 객실이 있어 총 146개의 방이 있다.

그냥 와서 거저 살라고 해도 방 청소하기도 만만치 않을 듯!!

1마일이 넘는 담쟁으로 덮은 정자, 정교한 동상들과 섬세한 방주, 유럽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만든 장미 가든, 35만갤론의 물이 담아있는 수영장 등 Wow.

지금 만든다고 해도 건축비만 6,000만불이상 든다고 하니 상상 초월의 저택이다. 이 저택을 보며 난 언제 이런 데서 살아보나 생각 해보며 집이 크다고 행복이 큰 것은 아닐 꺼야! 이렇게 스스로 위안해 본다.

윌리엄 허스트 가족 관계는 본처와의 사이에 다섯아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관계는 조금 애매 하였고 정작 이 거대한 저택의 안 주인은 그의 첩인 마리온 데이비스가 이곳을 차지 하게 된다. 마리온은 본래 지그팰트 폴리의 댄서였고 허스트의 후원 속에 영화배우로 활약했지만 끝내 배우로 서는 성공은 얻지 못했다. 그 당시 마리온 데이비스는 허스트의 절친인 찰리 채플린의 옛 애인이자 공연 파트너였다고 한다. 찰리 채플린이 허스트를 만날 때 우연히 마리온과 동행을 했는데 그때 허스트 반한 마리온은 찰리 채플린을 과감히 버리고 재벌인 허스트 한테 마음 주었다고 한다. 볼품없는 찰리 채플린은 삼각관계로 허스트 한테 자기 애인을 뺏기고 난 후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가 연예 활동을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가 있다. 사랑보다 돈을 선택한 마리온.

허스트 캐슬이 완성된 후 이 성은 영화 촬영소로 또 최고의 연회 장소등으로 이름 났기에 유명인은 거의 이 곳을 다 다녀 갔다. 신문 왕답게 허스트는 신문을 매일 비행기로 공수하여 배달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 차원이 다른 배달 문화가 있다니...그 후 허스트는 재력을 바탕으로 1904년 미국 대통령까지 출마했지만 미 국민들은 언론과 재력 보다는 올바른 정치인을 선택해 낙마한 적이 있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1951년 88세에 사망한 뒤 이 성을 유족들이 주 정부에 기증하여 지금은 주정부에서 관리하고 일반인에게도 개방이 시작 되었다. 이 성에 대해 할말은 많지만 이 성의 자세한 역사는 입구에 있는 영화관에서 만들어진 비하인드 건축사를 볼 수 있다. 입구 건물안에는 조그마한 박물관도 잘 만들어져 한 눈에 이 성을 이해 할 수 있게 꾸며 놨다.

이 성을 관광하려면 입구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산 중턱의 성에 올라가 이 지역에 사는 봉사자들의 안내로 대략 약2시간 코스로 성을 둘러볼 수 있지만 요즈음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Close.빨리 오픈 할거야, 기 둘려 봐.

허스트 캐슬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46번 East로 30분 산길을 달리면 파소 로블레스. 가는 길이 마치 유럽의 알프스 골짜기 같은 시골 풍경과 주변의 많은 포도밭의 와인너리가 보인다. 미국 속의 유럽의 시골 동네를 지나면 101번 Fwy와 만나는 곳이 바로 파소 로블레스, 도시 이름 자체가 와인 이름 같다.

중 가주 최고의 와인 도시 "Paso Robles"

스페인어로 "참나무 길"이라는 뜻으로 이 도시는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알려진 도시다. 와인이외에 온천 물과 아몬드로 유명 했던 한동안 Paso Robles는 원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몬드 과수원이 많았기에 "아몬드 시티"로 알려졌다. 또 이쪽 지역이 예전부터 물이 유황 성분이 있기에 인디언들이 볌을 치료하러 왔던 곳이다. 지금도 4개의 온천지가 운영하고 있다.

그 후 이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오면서 와인의 도시로 바뀌어 져 갔다. 다른 것보다 이 지역의 와인이 유명하여 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인의 우유" 라 불리는 Wine. "좋은 포도는 좋은 포도주를 만든다".

와인은 각 나라의 언어로는 라틴어로"비넘"(Vinum) 이태리어로 비노(Vino) 독일어로 바인(Wein) 프랑스어로 방 or 뱅(vin) 영어로 와인(Wine)으로 불린다. 와인은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음료이다. 와인이 좋은 이유는 제조 과정에 물이 전혀 첨가하지 않고 포도 성분 그대로 살아 있는 좋은 보약 같은 술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와인 하면 프랑스가 최고라 한다. 1976년까지는…

프랑스에서 미국이 독립한지 200주년 기념으로 와인 시음 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그런데 예상을 뒤집고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카베르네 쇼비뇽이 1등

샤르도네 품종이 2등으로 와인의 자존심 프랑스 와인을 제치고 1등에서 5등까지 미국의 캘리포니아 산 와인이 차지하면서 유명해졌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태평양 연안과 서부 해안의 지형적인 특성으로 적당한 일조량과 기후, 토양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아쉽게도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최악이 될 거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캘리포니아는 2020년 최악의 악재 해로 시름하고 있다. 코로나19, 지진, 산불로 재난의 연속이기에 아름다운 캘리포니아가 시련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 속상하기 그지없다. 서울에 약40배 정도가 산불로 불 태워져 가고 있다니…그 중 캘리포니아 최고의 와인산지 나파밸리, 소노마가 많은 면적의 포도밭이 쑥대 밭이 됐다고 하니 마음 아프다. 그래도 다행히 남가주 테미큘라와 중 가주 이쪽 샌 루이스 오프스포 카운티, 파소 로블레스는 산불의 피해가 적어 다행이라고 한다.

처음 캘리포니아 와인은 200년전에 프란체스카 수도원의 니페라 세라 신부가 수도원을 세우면서 처음에는 미사주를 목적으로 포도밭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 지역은 북부에 나파 카운티, 소노마. 중부에 산타 크루즈, 파소 로블레스, 샌 루이스 오피스포 남부는 테미큘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이번에는 파소 로블레스 와인은 1797년에 처음 와인너리가 생겼다. 파소 로블레스의 역사를 찾아보니 폴란드가 공화국이 되고 나서 첫 총리였던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860-1941)는 파소 로블레스에 처음으로 '쁘띠 시라'라고 불리우는 품종을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그는 불멸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 당시 그는 이곳에 연주 여행을 왔다가 심한 관절염 때문에 투어를 못하게 되자 이곳에서 요양하며 지냈다. 후에 병이 호전되어 연주 여행을 다 마치고 나서 나중에 이 곳에 다시 와서 목장 두 곳을 사고 포도를 심은 것이 처음 이곳은 와인 역사가 시작된다. 그 후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카버네 소비뇽과 피노 느와가 심겨진 것은 1960년대 말부터 이 지역의 와인너리가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인 UC 데이비스에는 특별히 와인 양조학과 있다. 그 학교 교수인 호프만 박사가 처음으로 전설적인 양조 전문가 앙드레 첼리스체프의 도움을 받아 이 지역에 카버네 소비뇽과 피노느와를 심었다. 첼리스체프는 나중에 워싱턴주로 가서 초기의 와인, 샤토 생 미셸을 성공시켰다. 현재 파소 로블레스에서 생산되는 80% 이상은 카베르네 쇼비뇽과 진판델등 레드 와인의 품종이 대부분을 차지 한다.

나파와 소노마가 본격적인 고급와인 생산지로 자리잡을 때, 파소 로블레스는 그저 오래된 와인 생산 지역 중 하나로만 인식되었다. 워낙 나파와 소노마가 ' 유명 하다 보니, 와인 초보들에게 이 지역 와인들은 그저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대중적으로 시장을 잠식했다. 그래서 와인의 대중화 발 맞추어 저렴한 와인 생산 지역으로 지리 잡아 성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8,000헥타르에 80개의 양조장이 있다. 인근의 로다이나 파소 로블레스 지역이 속해 있는 캘리포니아의 샌 루이스 오비스포 카운티 등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지역들의 와인도 급속한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다.

상식으로 알아 두면 좋을 와인의 종류
- 비 발포 성 와인/거품 없는 와인: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로제 와인
- 발포 성 와인/거품 와인: 샹파뉴, 뱅 무소, 크레망, 샤움바인, 스푸만테, 카바
- 주정 강화 :포트, 셰리, 마데이라
- 향미 첨가 와인 : 베르무트

우리가 레스토랑 가서 식사를 시키면서 어떤 와인을 주문할까 고민 할 때가 있다.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와인 몇 개를 추천한다면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진판델(Zintandel)은 그릴 요리와 느끼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진판델의 품종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있고 당도도 조금 있어 더운 여름날 즐기면 더욱 좋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e)은 풀과 과일 냄새의 향이 있어 생선과 초밥, 특히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마시면 좋다.

피노 그리(Pinut Gris)는 산도가 낮고 부드러움에 사과와 아몬드 향이 나서 파스타나 조류, 송아지요리, 치즈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세비용(Semillon)은 열대 과일 향이 나서 고급 드라이 와인으로 생산하고 있기에 귀족 와인으로 불린다. 고급 레스토랑의 여러 음식과 잘 어울리며 예전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좋아했던 와인이라고 한다

이왕 마시는 것 음식과 조화 롭게 맞는 것과 함께 드시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머리 아픈 와인 역사와 종류도 좋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자기 입에 맞는 와인이 최고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중세부터 전해오는 유럽의 와인 권주가를 하나 소개한다.

Gaudeamus igitur
Iuvenes dum sumus
Post iucundam juwentutes
Post molestam senectutem
Nos babebit bumus.
Let us than rejoice
While we are young
After the happinces of youth
And annoyances of age
The earth will claim us
젊을 때 즐기세
젊음의 행복이 지나가고
나이가 쌓이면
흙 속에 묻히리니

우리 옛 노래 노세 젊어서 노세랑 비슷 한 것 같다.

필자가 만든 말이 있다. "아쉬움은 미래가 있다"

이 지겨운 코로나로 모두 다 힘들어 하는 지옥의 재앙이 하루 빨리 없어지길 간곡히 바라며 희망찬 내일이 빨리 와서 가고 싶은 곳 자유롭게 떠날 날을 기약한다. 갈 곳은 너무도 많다. 자유롭게 여행할 날을 기약하며 미리 여행 계획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삶의 소중 함을 깨닫는 장소는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이다.

(스티브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