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칭찬에 인색한 사회

얼마전 본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공식 방문하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고, 같이 백두산 천지를 등반하여 양국의 화해분위기를 조성하고 돌아왔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는 국민들도 많았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관광만 하고 돌아다녔다고 폄하하는 언론과 야당위원들도 있었다. 본인들과 사상이나 노선이 맞지않는다고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사람들의 속성은 무엇일까?

미국에 살면서 누구나 다 느끼는 것이 있다면 미국사람들은 참 칭찬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새로 사입은 티셔츠와 헤어스타일 조금 바뀐것도 멋있다고 칭찬한다. 애들이 야구경기에 졌어도 열심히 뛰었다고 칭찬하고, 맛없는 요리를 했어도 음식모양이 이쁘다고 칭찬을 한다. 칭찬이 몸에 배어있는 듯 뭘해도 칭찬을 하니 상대방은 기분이 좋고 더 잘 하려고 노력을 하게된다.

유독 칭찬에 인색한 한국사람들을 보며 과연 왜 그럴까를 생각해본다. 많은 학자들은 엄격한 유교문화권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부모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자식사랑은 속으로 하는거지 겉으로 표현하면 자녀를 망친다는 잘못된 교육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자녀들에게도 칭찬을 해줄수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남들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칭찬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칭찬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들 수 있다. 칭찬을 하게 되면 마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웃는 것도 아부를 하는 듯 하여 항상 위축이 되어있다. 따라서 열등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칭찬에 인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하겠다. 이런 사람이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공동체의 리더일 경우 칭찬과 격려가 없는 삭막한 조직이 되기 쉽다.

얼마나 칭찬이 없는 사회였으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아이러니 하다. 일본의 유명한 저자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이런 말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보는 드라마에서도 남녀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서 서로 고비를 넘기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워 한다.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쑥스러움을 버려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요즘 본 기자도 칭찬하는 법을 훈련중이다. 확실히 바뀐것이 있다면 아내가 잘 하는 요리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